2026년 09월 01일 (화)

"피를 빼야 적혈구 줄던 혈액암"⋯'철 공급' 막는 신약 나왔다

FDA, 다케다 '밈라이로' 승인⋯293명 3상서 76.9%가 12주간 사혈 필요 수준 넘지 않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적혈구가 혈관 속을 지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3D 렌더링 이미지다. 진성적혈구증가증은 이 적혈구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져 혈액이 진해지고, 혈전이 생길 위험이 커지는 혈액암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몸에서 적혈구가 너무 많이 만들어지는 혈액암이 있다. 피가 지나치게 진해지면 혈전 위험이 커져, 치료를 위해 일정량의 피를 반복해서 빼기도 한다.

그런데 '사혈(phlebotomy)' 부담을 크게 줄여줄 신약이 미국에서 나왔다. 이미 생성된 적혈구를 피와 함께 빼내는 대신, 적혈구 생산에 필요한 철의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8월 28일 다케다의 '밈라이로(MIMRYLO·성분명 루스퍼타이드)'를 성인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의 과도한 적혈구 증가를 치료하는 신약으로 승인했다. 올해 FDA가 승인한 36번째 신규 성분 신약이다.

한국 도입을 위한 절차도 밟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6월 10일 한국다케다제약이 신청한 이 약을 '밈라이로주'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제71호 품목으로 지정했다. 지정 사유는 '기존 치료법 없음'이었다. 다만 아직 한국에서 품목허가를 받지는 않았다. GIFT 지정은 혁신성이 인정된 의약품을 일반 절차보다 신속하게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피가 너무 진해지는 혈액암⋯왜 일부러 피를 뺄까

진성적혈구증가증(polycythemia vera·PV)은 혈액암의 한 종류다. 피를 만드는 골수에서 적혈구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기는 만성 골수증식성 종양이다. 미국에서 약 9만 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적혈구가 많아지면 혈액에서 적혈구가 차지하는 비율인 '적혈구용적률(헤마토크릿)'도 올라간다. 적혈구용적률이 높아질수록 피가 진해져 혈관이 막히기 쉬워지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치료에서는 적혈구용적률을 45% 아래로 유지해야 한다. 헤마토크릿 통제에 실패한 환자는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심혈관 합병증을 겪을 위험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4배 높다.

가장 먼저 쓰인 치료법은 '치료적 사혈'이다. 헌혈하듯 정맥에서 일정량의 피를 뽑아 적혈구 양을 직접 줄인다. 하이드록시유레아나 인터페론, 룩소리티닙처럼 혈구 생성을 줄이는 약도 사용하지만, 이런 표준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중에서도 78%는 여전히 헤마토크릿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다만 사혈은 적혈구를 빠르게 줄일 수 있지만 환자에게는 부담이다. 병원을 찾아 반복해서 피를 빼야 하고, 이 과정에서 몸속 철이 더 부족해질 수 있다. 철결핍이 심해지면 피로나 집중력 저하도 커진다.

의료진이 채혈을 준비하고 있다.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들은 적혈구를 줄이기 위해 '치료적 사혈'을 반복해야 하지만 8월 28일 FDA가 승인한 밈라이로는 사혈 대신 철 공급을 조절해 같은 효과를 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 만든 적혈구 빼는 대신, 만드는 데 필요한 철 제한

밈라이로가 기존 치료와 다른 지점은 '철'이다.

적혈구를 새로 만들려면 철이 필요하다. 우리 몸에는 음식으로 들어온 철을 얼마나 흡수할지, 저장된 철을 얼마나 혈액으로 내보낼지를 조절하는 '헵시딘(hepcidin)'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루스퍼타이드는 이 헵시딘의 작용을 흉내 내도록 만든 펩타이드 치료제다. 장에서 철이 흡수되고 저장된 철이 혈액으로 풀려나오는 과정을 억제해, 골수가 적혈구 생산에 이용할 수 있는 철을 줄인다.

사혈이 이미 만들어진 적혈구를 몸 밖으로 빼는 방법이라면, 밈라이로는 적혈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인 철의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FDA가 진성적혈구증가증 치료제로 허가한 첫 '헵시딘 모방 치료제'라는 점에서도 기존 약과 차이가 있다.

사혈 필요했던 293명 비교⋯10명 중 7명 이상 수치 조절

허가의 핵심 근거는 글로벌 3상 임상시험 'VERIFY'다.

연구에는 기존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도 사혈이 필요했던 성인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 293명이 참여했다. 147명은 기존 치료에 루스퍼타이드를 추가했고, 146명은 기존 치료에 위약을 더했다.

연구진은 치료 20주부터 32주까지 12주 동안 적혈구용적률이 '사혈이 필요한 수준'까지 올라갔는지를 살폈다.

연구에서는 사혈이 필요한 기준을 두 가지로 뒀다. 적혈구용적률이 48% 이상이거나, 45% 이상이면서 치료 시작 때보다 3%포인트 이상 높아지는 경우다.

12주 동안 이 기준에 도달하지 않은 환자는 루스퍼타이드군 76.9%, 위약군 32.9%였다. 루스퍼타이드를 맞은 환자 10명 중 7명 이상은 사혈 수준까지 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 사혈 횟수에서도 차이가 났다. 치료 시작부터 32주까지 받은 사혈은 루스퍼타이드군이 평균 0.5회, 위약군은 1.8회였다. 같은 기간 사혈이 아예 필요했던 환자 비율로 보면 루스퍼타이드군은 27%에 그쳤지만, 위약군은 78%에 달했다.

32주 동안 적혈구용적률을 45% 아래로 계속 유지한 환자도 루스퍼타이드군 62.6%, 위약군 14.4%였다. 환자가 직접 평가한 피로 등 질환 관련 증상 역시 루스퍼타이드군에서 더 개선됐다.

다만 76.9%를 완치율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일정 기간 적혈구용적률이 사혈이 필요할 정도까지 올라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진성적혈구증가증 자체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은 주 1회 피하주사⋯한국도 신속심사 대상

밈라이로는 피부 아래에 맞는 피하주사제다. 미국 허가 기준으로 시작 용량은 19mg이며 기본 투여 간격은 주 1회다. 이후 적혈구용적률과 치료 반응, 부작용 등을 보면서 용량을 조절한다. 교육을 받은 환자나 보호자가 직접 주사할 수도 있다.

흔한 이상반응으로 주사 부위 반응이 56%, 빈혈이 16%에서 나타났다. 일부 환자는 혈소판 수치가 새로 높아지거나 더 증가할 수 있어 치료를 시작하거나 용량을 조절할 때 혈액검사가 필요하다.

약을 처음 발굴한 곳은 미국 바이오기업 프로타고니스트 테라퓨틱스(Protagonist Therapeutics)다. 프로타고니스트가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 개발을 이끌었고, 다케다는 2024년 1월 계약을 통해 루스퍼타이드의 글로벌 개발·상용화 권리를 확보했다. 미국 FDA 허가는 다케다 파마슈티컬스 아메리카가 받았다.

한국에서는 한국다케다제약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식약처의 GIFT 지정이 곧 한국 허가 확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품목허가 심사를 거쳐 실제 사용할 수 있는지와 허가 범위가 결정된다.

이번 승인으로 사혈이 필요 없어졌다고 볼 수도 없다. VERIFY 역시 기존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사혈이 필요했던 환자에게 루스퍼타이드를 추가했을 때 효과를 살핀 연구다.

그럼에도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 방식이 하나 더 생겼다는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이미 늘어난 적혈구를 피와 함께 빼내는 데 크게 의존했다면, 이제는 적혈구가 만들어질 때 필요한 철의 공급을 조절하는 치료법이 처음 허가됐다.

한국에서도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된 만큼, 국내 환자가 이 선택지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댓글 0
댓글 쓰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