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선진국에선 의사의 고의에 가까운 중대한 과실이나 무지에 의한 과실만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는 민사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과실의 중대성과 상관없이 진료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혹은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의료진을 형사 고소하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 이런 현실이 의과대학생이나 새내기 의사들이 고위험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번에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위험 필수의료에서 사망 등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료진이 환자 측에 설명을 하고, 의료사고 책임보험에 가입한 상태에서 조정이 성립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해도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해당 의료사고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인지, 또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지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서 판단하기로 하였다.
12대 중과실은 의료사고에 대한 판례를 기초로 해서 정했다. 1, 2) 의료행위에 대하여 설명을 하지 않거나 설명과 다른 의료행위를 한 경우, 3) 사망이나 중대손상 등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한 필수 진단·처치·모니터링·전원을 소홀히 한 경우, 4) 기본적 안전관리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4) 수술이나 시술 과정에 의료기구나 이물질이 체내에 잔존한 경우, 5) 의료행위를 지시한 후 감독하지 않는 경우, 6) 의학적 진료 지침을 현저히 벗어난 경우, 7) 1회용 의료기구를 재사용하거나 유통기간이 경과하거나 변질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8) 다른 환자에게 의약품을 투여하거나 약품의 종류, 용량, 경로 또는 시기를 잘못 사용한 경우, 9) 약제 투여 전 과민반응검사를 하지 아니한 경우, 11) 잘못 혈액을 수혈한 경우, 12) 다른 환자나 다른 부위를 수술한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셋째, 의료진은 의료사고 발생 사실을 안 날부터 7일 이내에 환자 측에 설명해야 한다. 다만 설명과정에서 이뤄진 위로나 유감 표명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했다.
넷째, 의료사고심의위원회는 법조계, 의료계, 환자단체, 정부/공공기관 관계자 각 5명씩 총 20명으로 구성된다.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하여 의사단체는 물론 환자단체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사망사고에서 형사면제특례를 주는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환자의 동의가 없어도 12대 중과실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손해배상금만 지급하면 검사가 의사를 기소할 수 없게 한 부분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반면 의사단체는 12대 중과실 중에서 ‘사망이나 중대손상 등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한 필수 진단·처치·모니터링·전원 소홀한 경우’ 조항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진료 전반에 대한 해석이 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의사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진단은 의사가 자신의 지식과 의료기기를 통해 증상의 원인을 찾는 의사의 고유한 의료 행위다. 그러나 의료기기의 한계나 의사 개인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 긴급한 응급 상황 등 다양한 진료 환경으로 인하여 진단이 어렵거나 놓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후에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중과실이란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주의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다. 앞서의 경우처럼 사후적으로 평가해 중과실로 판단한다면 사실상 진단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경우에 중과실로 판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처치나 모니터링, 환자 전원도 마찬가지이다.
의료사고 심의위원회에 대한 우려도 있다.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르면 의료사고 심의위원회는 기재된 12대 중과실 기준으로 의사의 행위가 고위험 필수의료에 해당하는지, 또 중과실이 있었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 의료를 충분히 이애하지 못한 비의료인이 다수 포함될 경우 실제 진료 과정과 사후 평가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새로이 신설된 심의제도로 인해 의료사고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장에선 환자 측은 필수의료인지 비필수의료인지 상관없이 무조건 심의위원회로 보내 판단을 받아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과거에는 민사적 분쟁으로 마무리됐을 사안들조차 심의를 통해 ‘중과실’이라는 낙인이 찍혀 경찰이나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개정법률을 통해 형사면책이 줄 것을 기대하였지만 오히려 공식적인 ‘중과실 인증’을 받고 기소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저위험 필수의료나 비필수의료 사고도 일단 형사고소를 해서 심의위의 판단을 끌어내는 방식이 성행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개인적으로는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형사처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하고 대신 민사보상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앞으로 의료현장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필수의료진에게는 허울뿐인 법적 면책이 아니라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진료 환경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