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신(Syncope)은 보이는 질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병은 외부에 보이지 않는다. 암,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 간의 지방 축적과 같은 질병들은 오랫동안 숨어서 진행한다. 이런 상태의 질병들을 “보이지 않는 적”이라 부른다.
암세포는 조용히 분열 증식하고, 암세포가 수십 번 분열하며 자라도 주변의 신경을 압박하지 않으면 자각 증상은 없다. 영상을 봐야 실체가 파악된다.
혈압은 180mmHg로 올라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고 남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혈압계를 들여다봐야 고혈압이 파악된다.
대사 질병에서 각종 수치의 변화도 천천히 바뀐다. 혈당이 300mg/dL로 올라도 아무 증상 없이 걷고 말하고 생활할 수 있다. 혈당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어야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쓰러지는 순간, 질병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실신’은 다르다. 몸이 균형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면 주위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목격된다.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능력인 의식이 갑자기 꺼져버리는 순간이 외부로 표출된다.
드라마처럼 보인다. 실신은 짧은 시간의 혈류 차단으로 몸 전체가 무너지고, 주위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몸이 주저앉고, 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그 순간은 환자 자신도 제어할 수 없고, 보는 이에게는 강렬하게 각인된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모든 경우를 흔히 ‘기절’이라 부른다. 기절에 가장 근접한 의학용어는 ‘실신’(Syncope)이다.
모든 기절이 실신은 아니다. 실신은 뇌 혈류가 순간적으로 줄어들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었다가 수 분 내 회복되는 상태를 뜻한다. 중독으로 인한 의식 소실, 저혈당 쇼크, 간질은 사람이 쓰러져도 실신은 아니다.
문학은 왜 사람을 쓰러뜨렸을까
문학 작품들에서는 실신은 의학적 사건이 아닌 다른 상징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샤를 로테와의 사랑이 좌절되는 순간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이 낭만주의 소설에서 괴테는 자신의 감정과 사회 제도가 충돌하는 상황에게 겪는 베르테르의 극단의 감정을 실신으로 표현하였다.
《죄와 벌》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 거리를 걷다가 열과 공포, 죄책감에 휩싸여 기절한다. 실신은 이처럼 도덕, 사랑, 긴장 상황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한국 문학 속에서는 실신이 주로 사회와 시대의 무게를 드러냈다. 여러 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가난, 식민지 현실, 사랑과 상실, 전쟁과 이념의 압박 등으로 무너진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는 식민지 시기, 도시 빈민 여성 복녀의 몰락을 그린다. 가난에 몰린 복녀는 감자를 훔치다 실패하고, 결국 몸을 팔며, 남편과의 갈등 끝에 살인에 이른다.
소설 후반부에서 복녀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 피로 속에서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여기서 실신은 단순한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가난이 한 여성의 몸을 무너뜨리는 장치다. 독자는 빈곤의 참혹함을 실신을 통해 체감한다.
박경리의 《토지》 초반부에 서희의 실신 장면이 나온다. 최참판댁의 몰락으로 어린 나이에 집안의 운명을 떠안게 된 서희에게 집안 어른인 홍씨 부인은 재산과 권세를 지닌 조병수와의 혼인 이야기를 꺼낸다.
개인의 의사보다는 가문 보존이라는 대의가 서희에게 거역할 수 없는 압력으로 다가온다. 사랑 없는 결혼, 그것도 조병수 같은 남자와의 혼인 소식은 견디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홍씨 말을 듣는 순간, 서희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 그녀는 눈앞이 아득해지며 몸이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여성의 몸이 가문의 희생 제물로 던져진다. 실신은 서희가 개인적 삶을 넘어 가문과 역사적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실신은 인간 존재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이성적 주체라 믿는 인간은 사회적·정서적 충격 앞에서 몸이 무너져 내린다.
이런 취약성은 그러나 인간의 단순한 약점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실신은 저항의 언어이기도 하다.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몸의 쓰러짐은 사회적 긴장과 불의에 대한 증언이다. 실신은 상황의 장벽 앞에서 인간이 부르짖는 몸짓이다.
김훈은 《화장》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기 병으로 쇠약해진 아내의 실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검불처럼 늘어져 있던 아내는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을까 싶게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 이런 극사실적인 묘사로 미루어 작가는 실신 사건을 실제 목격한 듯하다.
몸은 왜 갑자기 의식을 꺼버리는가
문학 작품과는 달리, 실신은 아주 담담하고 건조하게 생의학적 사건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실신은 일시적으로 뇌 혈류가 감소하여 갑작스럽게 의식이 소실되어 몸이 쓰러지는 사건이다. 수 분 이내에 자발적으로 회복된다.

자세 유지 능력이 상실되어 겁나게 쓰러지되 회복 후에는 신경학적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다. 수명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별다른 치료도 없다. 쓰러질 때 상처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는 정도의 조치를 한다. 드러나는 사건에 비해 조치는 싱겁다.
실신은 뇌혈류 부족으로 유도된다. 뇌는 체중의 2%이지만, 심박출량의 약 15%와 산소의 20%를 소비하는 만큼 혈액 공급이 중요한 장기이다. 정상일 때 뇌 혈류는 평균 동맥압과 뇌혈관 저항의 균형으로 세밀하게 유지된다. 그러나 뇌 혈류가 감소하여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의식 소실이 발생한다.
실신의 대부분은 ‘혈관 미주신경성’ 실신이다. 통증, 정서적 충격, 기립 등의 자극은 교감신경의 과흥분을 유도하고 심실은 과도하게 수축하게 된다.
심장 내 기계 수용기가 과도하게 자극되면 뇌(간)에서는 심장의 과도한 자극을 줄이기 위하여 미주신경이 활성화된다. 미주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심장은 억제되고 말초혈관은 확장된다. 그 결과,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박수가 저하되어 뇌 혈류가 감소하고 실신에 이른다.
혈관 미주신경성 실신은 신경 매개성 실신의 한 형태이다. 이 실신은 정서적 충격, 더운 환경, 장시간 기립 시 발생하며 주로 복부 통증이 선행하고 쓰러진다. 기침, 배변, 소변 등 특정 상황이나 경동맥동 과민 반사도 신경 매개성 실신을 유도한다.
‘심장성’ 혹은 ‘뇌혈관성’ 실신도 있다. 심장성 실신은 심장의 구조 이상이나 부정맥으로 인해 뇌로 가는 혈액이 부족하여 발생한다. 뇌혈관성 실신은 뇌로 가는 혈관이 막혀 일과성 허혈로 쓰러지는 경우로 드물다.
갑자기 일어설 때 혈압이 유지되지 않아 뇌 혈류가 줄어들어 유발되는 기립성 저혈압도 실신의 하나로 분류된다. 기립성 저혈압은 자율신경의 이상이나 탈수 혹은 고혈압 약물 등에 의하여 유발될 수 있다.
우롱차와 실신…결국 문제는 ‘과유불급’
[차 권하는 의사의 1+1 이야기]이니 마지막에 차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차가 실신에도 유익하다는 글을 기대하셨다면 오해다.
오히려 우롱차에 의한 실신 유도를 추측하는 논문 하나가 눈에 띈다. 1999년 일본 기타사토대학 연구진은 엄청난 양의 우롱차를 섭취한 환자에게서 실신이 유도되었다는 증례 보고 논문을 발표하였다.
해당 논문은 하루에 2~3 리터(L)되는 양의 우롱차를 마신 한 여성이 저칼륨증과 실신으로 입원하였음을 보고하였다. 의료진은 입원 직후 차 음용을 중단시켰고 환자는 저칼륨증에서 회복되었다.
연구진은 환자의 동의 아래 우롱차를 다시 섭취하는 놀라운 실험을 실시하였다. 5일 후 환자는 다시 저칼륨증에 빠졌다. 인체 실험은 여기서 중단되었다. 이때까지 실신은 유도되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면 이런 실험에 응할 환자는 없다. 임상실험심의위원회 통과도 불가능해 보인다. 의료진의 위험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우롱차 재섭취가 실신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우롱차가 실신을 일으켰다는 직접 증거는 얻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논문 저자들은 우롱차가 저칼륨증과 동반하는 실신을 일으켰다고 추측하였다.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논문 제목은 우롱차가 실신을 일으킨다고 해석하기 쉽다.
이 논문은 건강하지 않다. 우롱차를 재공급하는 인체 실험이 지나치고, 우롱차가 저칼륨증을 유도한다는 주장에서 그쳐야 했다. 실신을 유도한다는 주장은 과하다. 하루 2~3 리터의 우롱차를 음용한 주인공도 과하다. 차 마시기도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
따져보면 실신도 과해서 생겨난다. 실신은 뇌 혈류 부족으로 일어나지만, 그 배경에는 미주신경의 과도한 반응이 깔려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철학의 가치는 보편적이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