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8일 (금)

“친구가 말이 없네, 나 싫어하나?”…우울할 때 나쁜 생각만 드는 이유 찾았다

우울증 환자 뇌세포 50만 개 분석…새 신경세포 생성 막혀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주요우울장애를 앓은 사람들의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친구와 점심을 먹는데 평소보다 말이 없다. 단순히 피곤한 것일 수 있지만, 우울한 사람은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과거에 거절당했던 기억이 현재 상황과 겹치면서 부정적인 해석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반응에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드는 능력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 어빙의료센터와 뉴욕주 정신의학연구소 소속 마우라 뒤퐁 교수 연구진은 주요우울장애를 앓은 사람들의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해 지난 2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우울증 환자와 우울증이 없는 대조군이 사망한 직후 채취한 뇌세포 약 50만 개를 분석했다. 개별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활성화됐는지 살피고, 세포 단백질의 변화도 함께 조사했다. 이를 통해 문제가 생긴 세포가 뇌의 어느 지점에 있으며 어떤 기능에 관여하는지 확인했다.

분석 대상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해마였다. 뇌의 신경세포 대부분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지지만, 해마에서는 성인이 된 뒤에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일부 생성된다. 연구팀은 주요우울장애를 앓은 사람들의 해마에서 이러한 신경세포 생성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신경세포가 중요한 이유는 현재 겪는 일을 과거의 기억과 구분하는 데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를 ‘패턴 분리’라고 한다. 비슷해 보이는 상황도 서로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현재의 일에 그대로 덧씌우지 않도록 돕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피곤해서 말수가 줄었다면, 패턴 분리가 잘 이뤄지는 사람은 그날의 상황을 독립된 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이 기능이 약해지면 친구의 침묵이 과거에 누군가에게 외면당했던 기억과 뒤섞인다. 그러면서 “친구가 나를 싫어한다”는 식으로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뒤퐁 교수는 “새롭게 만들어진 신경세포는 새로운 경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기억 회로에 쉽게 들어가 오래된 기억과 분리된 형태로 저장되도록 돕는 것으로 보인다”며 “진료 현장에서 우울증 환자는 이런 경향이 덜하고, 기억 속에서 부정적인 정보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존 생쥐 연구에서도 성인의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돼야 패턴 분리가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해마에 방사선 치료를 받아 신경세포 생성이 사라진 뇌종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사람에게 비슷한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사람의 뇌에서 이러한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우울증 환자의 해마에서는 신경세포 생성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신경세포끼리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거나 세포 안에서 필요한 물질을 이동시키는 유전자도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해마의 주요 경로인 삼시냅스 회로에서는 염증과 세포 스트레스의 흔적도 확인됐다. 우울증이 뇌의 특정 기능 하나만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처리하는 여러 과정과 함께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주요우울장애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들의 활성도 변화도 발견했다. 일부 유전자에서는 DNA 염기서열 자체는 바뀌지 않으면서 유전자의 활동 정도가 달라지는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나타났다. 뒤퐁 교수는 이를 “밝기를 조절하는 스위치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스트레스, 학습, 노화, 화학물질 노출 같은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면 우울증 역시 하나의 질환으로 여기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앞으로 환자의 세포와 분자 특성을 바탕으로 우울증의 유형을 구분하면 더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뒤퐁 교수는 “과거에는 우울증을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설명했지만, 이제는 신경세포가 스트레스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여러 문제가 생긴 결과로 보고 있다”며 “신경세포 생성 과정을 다시 활성화해 해마 회로를 재구성하는 방법이 일부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 0
댓글 쓰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