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3일 (일)

여성이 자가면역질환에 더 취약한 이유…1000개 넘는 ‘유전자 스위치’ 찾았다

성인 약 1000명의 면역세포 125만 개 분석…여성이 염증 경로 활성 높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여성은 감염에 더 강한 면역 반응을 보이지만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에는 남성보다 훨씬 취약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외부 바이러스와 싸울 때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면역체계가 때로는 자신의 몸을 적으로 착각한다. 여성은 감염에 더 강한 면역 반응을 보이지만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에는 남성보다 훨씬 취약하다. 이런 차이를 설명할 ‘유전자 스위치’가 1000개 넘게 발견됐다.

호주 가반 의학연구소와 뉴사우스웨일스대 시드니 공동 연구진은 남성과 여성의 면역세포에서 서로 다르게 작동하는 유전자 조절 요소를 대규모로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미국인간유전학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에 발표했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체계가 자신의 건강한 조직을 외부 침입자로 잘못 인식해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인 전신홍반루푸스는 남성 1명당 여성 환자가 최대 9명에 이를 만큼 성별 격차가 크다. 그동안 호르몬과 성염색체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면역세포의 유전자 조절 단계에서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면역세포 125만 개 들여다보니…남녀의 ‘유전자 스위치’ 달
기존 연구는 여러 종류의 세포가 섞인 혈액을 한꺼번에 분석해 평균적인 유전자 활성을 측정했다. 이 방식으로는 특정 면역세포에서 나타나는 작은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단일세포 분석 기술을 이용해 개별 면역세포를 하나씩 살폈다. 연구진에 따르면 남녀 면역체계의 차이를 이처럼 큰 규모에서 단일세포 수준으로 조사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호주의 대규모 면역유전체 연구인 ‘OneK1K 코호트’에 참여한 건강한 성인 약 1000명의 말초혈액단핵세포를 분석했다. 말초혈액단핵세포는 혈액 속을 순환하는 면역세포다. 분석 대상은 모두 125만 개가 넘었다.

분석 결과, 남성은 외부 위협에 초기 대응하는 단핵구 비율이 더 높았다. 남성 면역세포의 유전자 활동은 세포를 유지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기본 기능에 더 집중돼 있었다.

여성은 항체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B세포와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조절 T세포가 더 많았다. 여성의 면역세포에서는 염증 반응과 관련된 유전자 경로도 훨씬 활발하게 작동했다.

공동 수석저자인 뉴사우스웨일스대 컴퓨터과학 공학부 세라 발루즈 선임강사는 “반응성이 높은 면역 특성은 여성이 바이러스 감염과 싸우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자가면역질환에 더 쉽게 노출되는 생물학적 대가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면역세포는 염증 반응을 일으킬 준비가 상대적으로 덜 돼 있어 감염과 생식기관 이외의 암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이어 한쪽 성별에서는 작동하지만 다른 성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발현 정량적 형질 유전자좌(eQTL)’를 조사했다. eQTL은 특정 유전자가 얼마나 강하게 활성화되거나 억제되는지를 조절한다. 연구진은 이를 유전자 작동 강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음량 조절 장치’에 비유했다.

연구 전에는 남녀 면역체계의 차이를 만드는 유전자 조절 요소가 X·Y 성염색체에 주로 몰려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결과는 달랐다.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유전자 스위치 대부분은 남녀가 공통으로 가진 상염색체에서 발견됐다. 연구팀이 확인한 성별 특이적 유전자 스위치는 1000개가 넘었다.

전신홍반루푸스 유전자 2개, 여성에게 더 많이 발현
이 가운데 일부는 자가면역질환과 직접 연관돼 있었다. 연구진은 전신홍반루푸스와 관련된 유전자 2개가 여성에게 더 많이 발현되도록 조절하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다. 루푸스가 여성에게 약 9배 더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유전자 조절 차원에서 설명할 단서다.

연구 제1저자인 가반 의학연구소 세이한 야자르 박사는 “남성과 여성의 면역체계가 다르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많은 연구가 여전히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이는 질병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만들고 치료 선택에도 편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유전적 차이만으로 여성의 자가면역질환 위험을 모두 설명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호르몬을 비롯한 여러 요인도 자가면역질환 발생에 영향을 준다. 연구에서 발견된 유전자 스위치는 남성과 여성의 면역체계가 서로 다른 생물학적 출발점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현재 여러 치료제는 몸 전체의 면역 활성을 광범위하게 억제하지만 환자마다 효과가 다르다. 남녀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유전 경로가 다르다면 같은 질환이라도 성별과 개인의 기본 면역 특성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 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공동 수석저자인 가반 의학연구소 중개유전체학 프로그램 책임자이자 뉴사우스웨일스대 유전체학 보건연구소 소장인 조지프 파월 교수는 “정밀의학을 실현하려면 이러한 기본적인 생물학적 변수를 이해해야 한다”며 “치료는 질병명뿐 아니라 환자의 면역체계가 기본적인 유전 수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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