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췌장암은 원인을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암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폐경 전 여성 93만 명 넘게 추적한 연구에서,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 없는 여성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30% 가까이 낮게 나타났다. 다만 이같은 결과를 출산이 암을 막아준다는 뜻으로 읽기엔 이르다.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박주현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홍정용 교수 연구팀은 폐경 전 여성 93만5345명을 대상으로 출산 경험과 췌장암 발생 위험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5일 발표했다. 연구는 국제학술지 《Mayo Clinic Proceedings》에 실렸다.
췌장암, 20여 년 새 3.7배로 증가
췌장암은 한국에서 5년 상대생존율이 17.0%(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진단받은 환자 기준)로, 주요 암 가운데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난치성 암이다.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고, 진단 당시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전 연령대를 합치면 남성에서 더 많이 발생하지만, 젊은 층에서는 증가세가 여성에서 더 뚜렷하다는 보고가 영국, 미국, 한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암등록통계를 보면 한국 췌장암 신규 발생자는 1999년 2614명에서 2023년 9748명으로 약 3.7배 늘었다. 연간 신규 환자 1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출산과 무슨 관계가 있었나
흡연·비만·당뇨병은 이미 잘 알려진 췌장암 위험 요인이다. 그러나 출산 같은 여성의 생식 관련 요인이 췌장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췌장암은 세계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췌장 조직에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어, 여성호르몬이 이 격차의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그동안 관련 연구들은 결과가 들쭉날쭉해 뚜렷한 근거로 이어지진 못했다.

연구팀은 2009년 국가암검진을 받은 40~55세 폐경 전 여성 93만5345명을 평균 9.3년간 추적했다. 이 기간 2065명이 췌장암을 진단받았다. 폐경 전 여성에서는 췌장암 자체가 드물어, 추적 기간 중 발생 위험은 1000명당 2~3명 수준으로 낮았다.
나이·체질량지수·흡연·음주·운동·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췌장염 등 다른 위험 요인을 보정한 뒤에도,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의 췌장암 발생 위험은 낮게 유지됐다.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을 기준으로, 1명을 출산한 여성은 28%, 2명 이상 출산한 여성은 30% 낮았다. 반면 초경 연령, 모유 수유 기간, 경구피임약 복용 기간은 위험과 뚜렷한 관련이 없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방향의 보고가 나왔다. 기존 메타분석들은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의 췌장암 위험이 없는 여성보다 9~14%가량 낮다고 봤다.
이번 한국 연구가 보고한 28~30%는 그보다 큰 폭이다.
출산 때문이라 말하긴 이르다
연구팀은 임신 중 늘어나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영향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면서도, 정확한 기전을 밝히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박주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저출산 시대에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의 췌장암 발생 위험을 이해하고, 이들을 위한 맞춤형 암 예방 전략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며 "다만 출산 경험과 췌장암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한 관찰연구인 만큼 출산이 췌장암을 직접적으로 예방한다고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췌장암 예방을 위해서는 금연과 적정 체중 유지, 규칙적인 운동, 당뇨병 관리 등 잘 알려진 위험 요인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연과 체중·혈당 관리는 출산 경험과 무관하게 췌장암 위험을 낮추는 데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