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복혈당 126mg/dL 이상, 식후 2시간 혈당 200mg/dL 이상을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영국의 60세 여성이 유방암 치료를 위해 면역항암제 주사를 맞은 뒤 혈당이 900mg/dL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은 사례가 최근 학계에 보고됐다.
영국 퍼니스 종합병원 연구팀에 의하면 유방암 진단을 받은 이 60세 환자는 면역항암제 중 면역관문억제제인 펨브롤리주맙을 13번째 투여받은 직후 몸에 이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환자는 갑자기 눈앞이 희미해지고 시야가 점차 흐릿해지더니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타는 듯한 갈증이 이어졌고 소변을 보는 횟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환자는 16개월에 걸쳐 체중이 10kg이나 빠졌고, 온몸을 짓누르는 극심한 피로감이 지속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병원 응급실을 찾은 이 환자의 혈당 수치는 900mg/dL(50mmol/L)까지 치솟아 있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자가혈당측정기(손끝 채혈용)의 측정 한계치는 대부분 600mg/dL까지로 설정돼 있다. 그 이상의 고혈당이 나오면 측정기 모니터에 숫자 대신 'HI'라는 경고 문구가 표시되기도 한다.
환자가 기록한 900mg/dL(50mmol/L)라는 놀라운 혈당 수치는 정밀 검사에서 확인됐다. 피 속에 케톤체가 쌓이는 케톤증까지 동반된 심각한 고혈당 상태였다. 평소 당뇨병 가족력이 전혀 없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 혈당 수치가 정상이었던 그녀에게 갑자기 ‘인슐린 결핍성 당뇨병’이 찾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정맥 인슐린 응급 치료로 혈당을 조절한 뒤, 피하 인슐린 주사 요법으로 바꿨다. 자가면역 당뇨병에서 나타나는 췌장 관련 항체 검사(글루탐산 탈카르복실라제, 췌도 자가항체 등)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하지만 혈중 C-펩타이드(인슐린 분비 능력 지표) 수치가 크게 떨어져 있었다. 췌장의 베타(β) 세포가 많이 손상된 것이다.
환자는 퇴원 후에도 혈당이 들쑥날쑥하게 변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돼, 지속적인 인슐린 투여와 모니터링을 받고 있다.
이 사례 연구 결과(Pembrolizumab-Induced Checkpoint Inhibitor-Associated Diabetes Mellitus in Triple-Negative Breast Cancer: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면역항암제에는 면역관문억제제, 면역세포치료제, 항암바이러스치료제, 사이토카인 및 면역조절제 등이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이 사례 속 환자가 치료받던 ‘삼중음성유방암’을 비롯해 각종 암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면역항암제는 면역세포(T세포)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PD-1 수용체를 차단해 인체 면역계가 암세포를 다시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혁신적인 약이다. 그러나 면역세포의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장기까지 공격하는 부작용(면역 관련 이상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
면역세포가 이 과정에서 췌장의 베타 세포를 공격해 인슐린 분비 기능을 마비시키는 병을 ‘면역관문억제제 관련 당뇨병’이라고 한다. 면역항암제 투여 환자의 1% 미만에서 발생하는 드문 부작용이다. 하지만 발병하면 수일에서 수주 사이에 췌장 세포가 급격히 파괴되며 당뇨병성 케톤산증 등 치명적인 대사 이상을 일으킨다.
대한당뇨병학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세 이상 성인의 당뇨병 유병률은 약 15%(환자 수 약 600만 명)다. 대부분 인슐린 저항성과 분비 감소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제2형당뇨병이다. 반면 면역항암제 부작용으로 생기는 당뇨병은 발병 속도가 매우 급격하고, 자가항체가 검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인 당뇨병과 구별된다.
이 사례가 주는 명확한 교훈이 있다.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는 환자와 보호자는 치료 기간은 물론 치료 후에도 몸의 미세한 변화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눈 흐림, 극심한 갈증, 빈뇨, 체중 감소 같은 증상을 단순한 항암 치료 피로감이나 당연한 과정쯤으로 여겨 방치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즉시 혈당을 측정하고 종양학과와 내분비내과 의료진의 협진을 받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받는 중인데 혈당 검사를 얼마나 자주 받아야 하나요?
A1. 면역관문억제제 관련 당뇨병은 언제든 갑작스럽게 발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항암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정기적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평소 집에서도 시야 장애나 갈증 등 이상 징후가 느껴진다면 즉시 간이 혈당측정기로 수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Q2. 면역항암제로 당뇨병이 생기면 항암 치료를 완전히 중단해야 하나요?
A2. 반드시 항암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슐린 주사 치료로 혈당이 안정적으로 조절된다면, 담당 종양학 의료진과 내분비내과 의료진의 협진으로 면역항암제 투여를 계속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Q3. 자가항체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일반 당뇨병인가요?
A3. 아닙니다. 면역항암제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당뇨병 환자의 50% 이상은 자가항체 검사에서 음성 반응을 보입니다. 항체 검사 결과가 음성이더라도 면역항암제 투여 중 급격한 고혈당이 나타났다면 면역 관련 당뇨병으로 진단하고, 즉시 인슐린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