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타구니에 바늘을 직접 찔러 넣지 않고 팔 정맥에 조영제만 주사해도 림프관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MRI 검사법이 한국 연구진 손에서 나왔다. 특히 기존 검사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간과 장간막의 림프관까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허세범 교수, 의생명연구원 윤성환 교수, 한림대병원 영상의학과 권려민 교수 연구팀은 '정맥 내 조영증강 MR 림프관 조영술(IV-MRL)'이라는 새 영상기법을 개발, 효과를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래디올로지(Radiology)》 최신호에 실렸다.
림프계는 몸속 면역과 체액 균형을 지키는 통로다. 암 수술 등으로 이 통로가 손상되면 림프액이 새어 나온다. 영양 부족과 면역력 저하를 부르고, 심하면 복수까지 찬다. 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장암 수술 후에도 100명 중 6~7명꼴로 이런 누출이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새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표준 검사였던 '사타구니 림프절 내 주사 기반 림프관 조영술'과 '동적 조영증강 MR 림프관 조영술(DCMRL)'은 사타구니 림프절에 바늘을 정확히 찔러야 해 시술 난도가 높았다. 게다가 전체 림프액 생성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간·장간막 림프관은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도 이 방식의 성공률이 원인 질환에 따라 94%대에서 82%대까지 들쭉날쭉하게 나타난 바 있다. 장간막 림프관이 손상돼 지방질 림프액이 뱃속에 우유처럼 뿌옇게 고이는 유미복수(乳糜腹水) 환자는 사정이 더 나빠서, 누출 부위를 찾아내는 비율이 약 55%에 그쳤다.

연구팀은 먼저 돼지에게 정맥으로 조영제를 주입하고 혈액과 림프액 속 농도 변화를 시간별로 비교했다. 그 결과 주사 20~30분 후부터 혈액보다 림프액에서 조영제 농도가 더 높아지는 '림프기'가 나타났다. 같은 시점 MRI 영상에서는 유미조(가슴 림프관 아래 주머니 모양 조직)의 신호강도가 등근육보다 약 5.5배까지 올라가며 림프관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어 2024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림프 누출이 의심돼 IV-MRL 검사를 받은 환자 16명(평균 만 56.6세)을 대상으로 파일럿 임상연구도 진행했다. 여기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주사 1분 시점에는 정맥보다 림프관 신호 비율이 0.49에 그쳤지만, 20분 시점에는 1.47로 유의하게 높아졌다. 기존 사타구니 주사 방식도 흉관·후복막 림프관은 확인했지만, 간·장간막 림프관까지 담아낸 건 정맥 주사 방식이 유일했다.

허세범 교수는 "정맥 주사 방식의 IV-MRL은 기존의 림프절 주사와 달리 혈관 주사만으로 시행할 수 있어 시술 난도와 환자의 통증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향후 림프 누출 질환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외 유수 병원들도 간·장간막까지 보려면 그 장기에 직접 바늘을 넣어야 했다. 정맥주사 한 번으로 그 자리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앞으로는 사타구니든 간이든 바늘 없이 몸속 어디서 새는지 확인할 길이 열린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