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약도 안 들으면 어떡하죠."
전이성 신장암 환자가 흔히 꺼내는 걱정이다.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를 맞고도 암이 진행된 환자에게, 다음 약이 통하는지는 그동안 몇 주씩 영상검사를 기다려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치료 중 혈액 속 호르몬 변화를 추적하면 영상검사보다 먼저 신호를 잡아낼 수 있다는 연구가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지난 1일 발표됐다.
신장암은 암이 신장 안에 머물러 있는 '국한 단계'(다른 장기로 퍼지지 않은 초기 상태)에서 발견하면 5년 상대생존율이 98.5%에 달하지만, 전이 상태로 진단되면 22.0%까지 떨어진다. 이번 연구는 그 격차가 가장 큰 전이 단계, 그중에서도 여러 치료가 듣지 않는 환자들을 다뤘다.
모든 암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신장암의 특수한 생물학적 조건 덕분에 가능했던 발견이다.
미국·호주·한국 3개국서 진행
연구를 이끈 사람들은 하버드 의대 토니 추에이리 교수(다나파버암연구소 비뇨생식기암센터 소장)와 UC샌디에이고 라나 매케이 교수다. 신약 개발사 아커스바이오사이언스가 연구비를 댔고, 회사 소속 연구자들도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시험 약물은 산소가 부족할 때 켜지는 스위치 단백질 'HIF-2알파'를 겨냥한 먹는 표적항암제인 카스다티판(casdatifan)이다. 안전성과 적정 용량을 살피는 임상 1상이다. 카스다티판은 건강한 참여자 대상 별도 1상을 먼저 거쳤고, 이번 연구에서 암 환자에게 처음 투여됐다. 미국·호주·한국 3개국에서 진행됐으며, 한국에서는 연세암병원 라선영 교수, 서울아산병원 이재련 교수, 삼성서울병원 박세훈 교수가 논문 공저자로 참여했다.
대상은 전이성 투명세포형 신세포암 환자들이다. 신세포암의 약 75%를 차지하는 유형으로, 흔히 그냥 신장암이라 하면 대부분 이 유형을 가리킨다. 표준치료를 거치고도 암이 진행되어 치료 선택지가 제한된 이들이다. 이전 치료는 중앙값 3차, 최대 11차였다.
HIF-2알파 스위치가 켜지면 암세포 증식이 빨라지는데, 카스다티판이 이 스위치를 겨눈다. 이 스위치는 온몸의 산소 감지 시스템과도 연결돼 있어, 약효가 혈액 속 호르몬 수치에도 나타난다.
영상보다 먼저 신호 보낸 혈액검사
연구팀은 혈중 적혈구생성인자(EPO) 수치에 주목했다. 산소 부족을 감지하면 신장에서 나와 적혈구 생산을 늘리는 호르몬인데, 공교롭게도 HIF-2알파 스위치와 같이 오르내린다. 연구팀은 치료 전과 치료 중 정해진 시점마다 EPO 수치를 반복 측정해, 가장 크게 떨어진 최대 감소폭을 치료 결과와 비교했다.
EPO 감소 자체는 HIF-2알파 억제제의 표적 작용을 보여주는 지표로 이미 쓰여왔다. 이번 연구는 한발 더 나아가 이 감소폭이 실제 종양 반응·무진행생존과도 연결되는지 봤다.
분석 결과 EPO 최대 감소폭이 10%포인트 커질 때마다 반응 오즈는 약 2.4배 높아졌고, 진행·사망 위험은 28% 낮아지는 쪽으로 연관됐다. 오즈는 확률과는 다른 개념이고, 인과관계가 아니라 통계적 연관성을 보여준다.
시점으로 보면, 환자 10명 중 7명(129명 중 92명)이 첫 투약 주기(3주) 안에 최대 감소폭에 도달했다. 반면 첫 영상검사는 6주째(3번째 주기 시작)에야 이뤄졌고, 실제 반응 확인까지는 중앙값 2.6~2.8개월이 걸렸다. EPO 변화가 첫 영상보다 3주, 반응 확인보다 두 달 가까이 앞선 신호였던 셈이다.
다만 진료 현장에서 영상검사를 대신하거나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할 단계는 아니다. 임상에서 쓸 기준값이나 민감도·특이도는 제시되지 않았고, 연구팀도 더 큰 연구로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효과는 얼마나 나타났나
권장 용량(하루 100㎎)을 투여받은 환자 31명 중에서는 35%에서 종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환자 비율을 '반응률'이라 부른다.
무진행 생존기간(암이 더 나빠지지 않고 버틴 기간) 중앙값은 아직 계산이 안 될 만큼 길게 이어지는 중이다. 전체 환자 121명을 통합해 봐도 반응률 31%,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 12.2개월로 나왔다.
앞서 나온 같은 계열 약, 벨주티판(한국명 웰리렉)과 비교해보자. 기존 임상 반응률은 19~23%, 무진행 생존기간은 5.6개월이었다. 이번 결과가 수치상 더 낫다. 다만 두 약을 한 임상시험 안에서 직접 맞대결시킨 결과는 아니다.
부작용 있지만 치료 효과 '조기 판단' 의미
이 계열 약이 흔히 일으키는 부작용은 빈혈과 저산소증이다.
카스다티판을 복용한 전체 환자의 약 90%가 빈혈을, 16%가 저산소증을 겪었다. 권장 용량(하루 100㎎)군에서는 그 정도가 조금 덜해, 심한 빈혈(수혈이 필요한 수준)을 겪은 비율이 전체군의 절반 수준이었다. 심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혈이나 조혈촉진제, 필요하면 투약을 잠시 쉬거나 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관리됐다.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아예 그만둔 환자는 전체의 3%를 기록했다. 연구 중 숨진 환자도 있었지만, 연구진은 이를 약물과 관련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이 약이 겨냥한 스위치, HIF-2알파를 처음 밝혀낸 산소감지 연구는 201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바 았다. 지금은 이 결과를 발판 삼아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시험(PEAK-1)이 진행 중이다.
다만 짚어야 할 한계도 있다. 이번 방법은 신장암, 그중에서도 특정 유전자(VHL) 이상이 흔한 투명세포형에서 나온 결과다. 다른 암에도 통할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앞으로 별도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발견이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손 쓸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느꼈던 신장암 환자들에게, 치료가 듣고 있는지를 예전보다 일찍 가늠할 실마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