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수술실 바로 위에 식당을 지었다가 물이 새고, MRI 검사실 아래 청각검사실을 뒀다가 소음으로 곤욕을 치렀다. 의료진에게 당연한 운영 원칙이 건축가에게는 낯설고, 건축가의 설계 논리가 의료진 눈에는 보이지 않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새병원추진본부 건축팀 홍창표 건축파트장이 병원 설계의 '숨은 원칙'을 담은 책 「건축가도 잘 모르고 의사는 더 모르는 병원 건축의 실제」(청년의사)를 냈다고 3일 밝혔다.
평면도만 보면 놓치는 것들
병원은 외래·중앙 진료 부서·수술실·물류 시스템·전기 설비가 복잡하게 얽혀 24시간 돌아가는 대표적인 복합 건축물이다. 누수와 소음 사례처럼, 층과 층을 따로 떼어 평면도로만 검토하면 정작 위아래가 맞물리며 생기는 문제를 놓치기 쉽다. 층을 겹쳐 입체적으로 살피는 설계가 필요하다.
환자 바라보는 천장 디자인 소홀
병원 로비와 복도는 대개 서 있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그려진다. 하지만 정작 수술실로 이동하거나 입원해 있는 동안 환자가 가장 오래 마주하는 건 천장이다.
그간 병원 건축은 서 있는 사람 기준의 투시도만 그려왔을 뿐, 침대에 누운 환자가 바라보는 천장 디자인은 소홀히 다뤄왔다.
병원이 고층화되면서 승강기와 회전문 설계 기준도 중요해졌다. 감염 우려가 있는 호흡기내과, 접근성이 중요한 채혈실처럼 임상과별 특성에 맞춘 동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고령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병원 전체가 미로가 될 수 있다.
숫자 하나가 감염을 막는다
음압 병실은 인접 공간과 최소 2.5Pa 이상의 압력 차를 유지해야 바이러스나 세균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이 책은 환자가 병실에서 간호사를 부를 때 쓰는 호출 장치인 너스콜의 위치처럼 사소해 보이는 요소까지 짚는다. 환자 중심이면서도 경제적인 병원을 짓는 핵심은 이런 디테일에 있다.
홍창표 파트장은 "의료진과 건축가가 병원 건축을 바라보는 '상식'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사소한 오해로 소통에 빈틈이 생기고 일부 공사가 누락되거나 의도와 다르게 시공되기도 한다. 이 책이 병원 건축의 상식을 채워주고, 두 집단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통역자이자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 파트장은 경희대에서 건축학 학·석사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대, 캐나다 BCIT에서 수학했다. 현대종합설계를 거쳐 2009년부터 연세의료원에 재직하며 연세암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 중입자치료센터 등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한 15년차 '병원 내부 건축 전문가'다.
책은 병원 건축 상식부터 조용한 병원, 수직 병원, 기쁨의 병원, 안전한 병원, 경제적인 병원까지 총 6장으로 구성됐다. 224쪽, 2만9000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