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앰뷸런스가 출발하기도 전이었다. 환자의 자궁문이 급격히 열리기 시작했다. 조산기가 있는 고위험 쌍둥이 임신 환자를 인근 대학병원으로 막 이송하려던 순간이었다. 산모의 상태가 걱정돼 앰뷸런스를 타러 뛰어오던 병원장은 다급한 외침을 들었다.
“병원장님, 지금 아기 발이 보여요!”
이송을 강행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달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산모와 아기 모두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머뭇거릴 수도 없는, 그야말로 초응급상황이었다.
산모를 분만실로 급히 옮겼다. 임신 30주차밖에 되지 않았던 쌍둥이는 자연분만으로 세상에 나왔고, 다행히 산모와 두 아기 모두 무사했다. 2016년 7월 세인트마리여성병원을 개원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꼭 10년이 흐른 지금. 그날 의료진의 품 안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쌍둥이는 어느새 초등학생이 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저희 같은 병원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응급 상황과 늘 마주합니다. 하지만 의료진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한 생명, 한 가정을 지켜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 일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주 세인트마리여성병원장은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인트마리여성병원은 개원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같은 응급상황을 수시로 맞닥뜨렸다. 그때마다 병원은 지역 내 2차병원으로서 ‘전방을 책임진다’는 심정으로 환자들을 맞았다. 마취통증의학과와 산부인과 전문의가 야간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분만 응급 환자를 대기하며 병원 불을 밝혀 왔다.
저출산과 필수의료 인력난으로 지역 분만 인프라가 위축되는 가운데 세인트마리여성병원은 난임부터 임신, 24시간 응급분만, 산후조리까지 아우르는 진료체계를 갖추며 지역 출산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분당권 대형 의료기관까지 이동하지 않고도 가까운 생활권에서 전문적인 산과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수원과 화성, 의왕 등 경기 남부권 임산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병원의 전문성과 진료 역량은 정부의 전문병원 지정을 통해서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2025년 보건복지부 지정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선정됐다. 2025년 기준 전국의 복지부 지정 산부인과 전문병원은 11곳에 불과하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24시간 대기하는 산부인과
김동주 병원장은 가톨릭대 의대 산부인과를 졸업한 뒤 서울성모병원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거쳤다. 산부인과는 크게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내분비질환이나 부인암 등을 다루는 부인과로 나뉜다. 김 병원장은 산과를 전문으로 수련하고 임신·분만과 고위험 임신을 전문으로 진료해 왔다.
김 병원장이 산과 의사의 길을 선택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인 김수평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1세대 산부인과 전문의로 꼽힌다. 김 병원장은 병원에서 한밤중에도 응급 상황을 알리는 전화가 울리면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잠결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따라나선 적도 있었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직접 차를 몰아 아버지를 응급실에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그냥 신기했어요. 일이 그토록 힘든지도 모른 채 마냥 재밌겠다, 생각하며 따라 나서기도 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늘 누군가의 출산을 위해 달려가고 계셨던 거예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책임지는 직업이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환자를 우선하는 의사였다. 아들이 의사가 되자 “환자 한 명당 아침·점심·저녁 그리고 퇴근 직전에도 환자 상태를 꼭 확인하고, 회진도 하루에 열 번씩은 돌아야 한다”고 충고할 정도였다.
인턴 과정을 마친 뒤 일이 고되어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아버지 같은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다만 대학병원에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3차 의료기관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최전방에 있는 1, 2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의 작은 병원으로 가서 대학병원에서 접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을 접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기로 다짐했다.
“수원에서 가장 분만이 많은 산부인과에서 봉직의로 일했습니다. 몇 년간 일하다 보니 서수원이라는 지역과 인접한 화성, 의왕 지역 등에서 마땅한 분만병원이나 여성병원을 찾지 못해 멀리서 이동해 오는 산모들을 많이 보게 됐죠.”
수원은 신혼부부와 젊은 가구가 많이 거주하는 경기 남부권의 대표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저출산이 지속되고 분만·출산 같은 필수의료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수원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도 폐업 산부인과가 속출했다. 산부인과 운영을 이어가더라도 분만실은 폐쇄하는 사례도 많았다. 실제로 김 병원장이 봉직의로 2년간 근무했던 분당의 한 산부인과도 지금은 없어졌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김 병원장이 “수원에 24시간 응급 진료가 가능한 산부인과를 설립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돈도 벌기 힘들뿐더러 몸만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김 병원장은 이럴 때일수록 한 명 한 명을 살려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눈앞의 수익을 좇기보다 이 지역 산모와 가족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의료 안전망을 구축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밤중에도 응급실로 달려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그에게 산부인과는 단순한 진료과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이었다.
가톨릭대 의대 시절 소중한 경험을 같이 했던 선후배 산부인과 전문의들과 뜻을 모아 개원 준비를 시작했다. 가톨릭대 의대 교수이자 산부인과 전문의인 김기범·장동규 교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손호정 가톨릭대 의대 외래 교수와 함께 김 병원장까지 총 4명의 병원장 체제로 운영되는 산부인과 전문병원을 구상했다. “이렇게 4명이 뭉치면 어떠한 생명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병원명은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을 공유한 병원장들의 이력을 살려 ‘세인트마리여성병원(St. Mary's Women's Hospital)’으로 지었다.

김 병원장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병원장으로 역할하는 산부인과는 우리 병원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분만은 분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의료진, 마취를 담당할 수 있는 마취과 전문의, 24시간 365일 응급상황을 대비할 수 있는 의료진과 인프라가 모두 갖춰져야 하는 영역입니다. 한 건의 분만을 위해서 대기해야 하는 인력이 상당하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분만 병원들은 운영상 수지 타산이 안 맞아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김 병원장은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24시간 응급 진료 체제를 사수하고 있다.
물론 2차 병원으로서 고위험 응급 환자가 생기거나 대학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인근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한다. 이를 위해 성빈센트병원과의 진료협력 협약 체결 등 인근 3차 병원들과도 수시로 교류하고 있다.
환자와 적극 소통하는 의료진
세인트마리여성병원에선 산과를 메인으로 진료하며 부인과·고위험임신·난임·키즈발달·유방갑상선 등 총 5개 분야의 클리닉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진료-회복-산후조리까지 모두 한 곳에서 가능한 ‘원스톱 케어’ 시스템은 산모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산후조리원을 찾는 환자가 많아 예약이 늘 만석이다.
산후조리원은 의료기관이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된다. 그래서 일반 산후조리원 가운데 감염 관리에 소홀한 경우도 있다. 반면 세인트마리여성병원은 퇴원 후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승강기 내에도 비접촉식 버튼을 이용하는 등 감염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분만실과 수술실은 물론 산후조리원 입구에도 에어샤워 시설이 있다. 마치 반도체 공장에라도 온 것 같은 모습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산모 전용 엘리베이터 옆에는 ‘실내 공기질 안전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김 병원장은 “신생아나 산모들은 면역 상태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감염 관리가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 높은 의료 서비스와 시설 관리 못지 않게 병원에서 특별히 여기는 가치는 바로 ‘환자와의 소통’이다.
병원 후기를 찾다 보면 ‘의료진과 직원분들이 정말 친절하다’는 평이 가장 많이 보인다. 실제로 환자들이 진료를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임산부 요가 등 산전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태교에 도움이 되는 태교 음악회, 태교 영화제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자연분만을 준비 중인 임부에겐 출산전문가(조산사)와 임부가 직접 만나 출산 전 궁금증을 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왕절개가 결정됐을 때도 마취과 전문의가 수술 전 직접 임부에게 수술 과정을 설명해준다.
김 병원장은 “필수의료와 관련된 부분은 몸을 부딪히며 직접 이뤄지는 소통이 중요하다”며 “유튜브나 챗GPT 등 온라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보다 의료진과 대면하면서 고민과 걱정, 궁금증 등을 나누는 시간이 값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환자와는 물론 지역사회와도 활발히 소통한다. 2019년엔 수원시에 다자녀ㆍ미혼모 가정을 위한 후원금 1000만 원을 전달했다. 이듬해엔 다문화가정의 건강 증진을 위해 수원 서부경찰서와 업무협약을 맺는 등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의 역할에도 앞장서고 있다.
저출산 난임 시대⋯“출생아 줄어도 생명 위한 책임 멈추지 않을 것”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출생아 수는 25만4500명으로 집계됐다. 합계출산율은 0.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김 병원장이 대학병원에서 수련할 시절인 1990년대만 해도 다들 ‘한국이 망해도 한 해 출생아 수가 40만 명 이하로는 절대 안 떨어질 거야. 그러니 우린 괜찮아’ 하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20만 명 이하로 출생아 수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왔다.
“산부인과 종사자로서 정말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죠. 그래도 더 적게 태어나고 있는 만큼 생명 하나하나는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럼에도 산부인과 상황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턱없이 낮은 분만 수가, 필수의료 기피 현상과 인력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김 병원장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임신과 출산은 인류가 피해갈 수 없는 영역이자 AI로 대체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기에 그럼에도 희망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7월, 세인트마리여성병원은 개원 10주년을 맞는다.
지난 10년간 이곳에서는 1만5000여 건의 분만이 이뤄졌다. 매일같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수많은 부모가 설렘과 긴장 속에서 새 식구를 맞았다. 그 과정에는 응급 호출에 달려온 의료진의 밤샘 근무와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김 병원장은 병원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기본’을 이야기했다.
“우리 병원의 제1 가치는 무조건 ‘환자와 산모, 아기의 건강과 안녕’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가치이기도 합니다. 개원 당시나 지금이나 병원이 추구하는 가치는 변함없습니다. 하던 걸 계속해서 잘 하는 병원이 되고자 합니다.”
출생아 수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한 생명의 소중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10년전 앰뷸런스 앞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던 쌍둥이처럼, 오늘도 세인트마리여성병원 분만실에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진은 그 첫 울음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