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론병은 치료가 까다로운 염증성 장질환 중 하나다. 특히 불응성 크론병 환자는 여러 약을 써도 증상이 충분히 좋아지지 않거나, 좋아졌다가도 다시 나빠지는 일을 반복한다. 대표적인 치료 옵션인 생물학제제, 즉 염증을 일으키는 특정 물질을 겨냥한 주사 치료를 써도 재발과 악화를 겪는 환자가 적지 않다.
이런 환자군에서 ‘리산키주맙’ 치료 후 절반 이상이 스테로이드 없이 증상이 안정되는 ‘관해’에 도달했다는 실제 진료 데이터가 나왔다. 관해는 병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지만, 증상이 가라앉고 질병 활동이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기존 치료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한 크론병 환자에게 리산키주맙이 새로운 후속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병원과 보건연구재단 연구진은 난치성 크론병 환자에서 리산키주맙의 실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소화약리학과 치료(Alimentary Pharmacology and Therapeutics)≫에 2026년 6월 10일 온라인 게재했다.
약을 바꿔도 남는 치료 공백
리산키주맙은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인터루킨-23(IL-23)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생물학제제다. IL-23은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이 신호가 과도하게 작동하면 장 염증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 리산키주맙은 이 신호를 차단해 염증을 낮추도록 설계된 약이다. 애브비는 리산키주맙을 ‘스카이리치’라는 제품명으로 판매하고 있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느 부위에나 만성 염증이 생길 수 있는 질환이다. 복통, 설사, 체중 감소, 혈변 등이 반복될 수 있다. 증상이 심하면 장이 좁아지는 협착이나, 장과 다른 장기 사이에 비정상적인 통로가 생기는 누공이 나타날 수 있다. 일부 환자는 수술이 필요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크론병 환자에게 ‘스테로이드 없는 관해’는 중요한 치료 목표다. 스테로이드는 급성 염증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오래 사용하면 감염, 골다공증, 당뇨, 고혈압, 체중 증가 같은 부작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염증성 장질환 치료에서는 증상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스테로이드 의존을 낮추며 안정된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난치성 환자 절반 이상, 증상 안정
이번 연구는 스페인 염증성 장질환 환자 등록체계 자료를 활용한 관찰연구다. 관찰연구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 축적된 환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 방식이다. 임상시험처럼 환자를 무작위로 나눠 약을 비교하지는 않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약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결과를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스페인 60개 병원에서 리산키주맙 치료를 시작한 성인 난치성 크론병 환자 857명을 분석했다. 리산키주맙 투여 시작 당시 평균 연령은 50.3세였고, 남성은 59.6%였다.
연구에 포함된 환자들은 치료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전체 환자의 약 절반은 이미 3개 이상 생물학제제 등 치료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항종양괴사인자(항TNF) 제제 사용 경험이 있는 환자는 89.6%, 우스테키누맙 사용 경험이 있는 환자는 69.3%였다. 항TNF 제제와 우스테키누맙은 크론병 치료에 쓰이는 대표적인 생물학제제다.
환자들은 리산키주맙 600mg을 치료 시작 시점인 0주와 4주, 8주에 정맥주사로 투여받았다. 이후 12주부터는 유지요법으로 360mg을 8주마다 피하주사로 맞았다. 정맥주사는 혈관으로 약을 투여하고, 피하주사는 피부 아래 조직에 약을 주사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연구의 1차 평가변수는 ‘스테로이드 없는 임상 관해’였다. 이는 전신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크론병 활동도 지표인 하비-브래드쇼 지수(Harvey-Bradshaw Index, HBI)가 4점 이하인 상태로 정의했다. HBI는 복통, 설사, 전반적인 건강 상태 등을 점수화해 크론병이 얼마나 활동적인지 평가하는 지표다. 쉽게 말해 스테로이드에 의존하지 않고 증상이 안정된 상태에 도달했는지를 본 것이다.
분석 결과, 리산키주맙 치료 시작 후 8∼12주 시점에 환자의 56.4%가 스테로이드 없는 임상 관해에 도달했다. 마지막 추적관찰 시점에서도 61.2%가 스테로이드 없는 임상 관해 상태를 보였다.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가 다수 포함된 실제 진료 데이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결과다.
이전 생물학제제 실패 뒤에도 반응
연령도 치료 반응에 영향을 미쳤다. 나이가 많을수록 관해 가능성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이전에 우스테키누맙을 쓴 경험은 마지막 추적관찰 시점의 스테로이드 없는 임상 관해와 뚜렷한 관련성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우스테키누맙 치료 경험이 있더라도 리산키주맙을 후속 치료 옵션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전성은 비교적 양호했다. 이상반응은 전체 환자의 7.9%에서 보고됐다. 이상반응으로 치료를 중단한 환자는 전체의 1.4%였다.
이번 연구는 치료제 임상 근거 수준이 높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 아니라, 실제 진료 데이터를 활용한 관찰연구다. 따라서 리산키주맙의 효과를 다른 치료제와 직접 비교하거나 인과관계를 확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임상시험보다 더 다양한 환자가 포함된 실제 진료 환경에서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리산키주맙이 일상 진료에서 크론병 환자에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여러 단계의 치료 이후에도 효과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치료 순서에서 더 이른 단계에 배치하면 임상적 혜택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치료 경험이 쌓일수록 반응률이 낮아진 만큼, 어떤 환자에게 어느 시점에 리산키주맙을 사용할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