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지않은 미래에 알약 하나로 지방간염과 간경화를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높이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흔히 ‘지방간’이라고 하면 술을 많이 마셔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에는 술을 전혀 안 마셔도 비만이나 당뇨 같은 대사질환 때문에 간에 기름이 끼고 염증이 생기는 ‘대사이상관련지방간염(MASH)’ 환자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간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간섬유화(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정확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뚜렷한 정답을 찾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경북대병원 연구팀(박근규·최연경 교수, 김예진 박사)이 이 ‘고장 난 간’의 비밀을 완벽하게 풀어내며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간세포를 녹여버리는 범인, ‘콜레스테롤’과 ‘녹슨 철’
우리 몸에 콜레스테롤이 너무 많이 쌓이면 간세포 안에서 아주 위험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세포 안에 있는 ‘철분’ 때문에 세포막이 마치 녹이 슬 듯 산화되면서 세포가 스스로 파괴되는 현상인데 의학 용어로는 이를 ‘페롭토시스(Ferroptosis)’라고 부른다.
연구팀은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음식을 먹은 쥐를 조사해 보니, 간세포를 지켜주는 방패 역할을 하는 유전자(PPARδ)가 뚝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방패가 사라지니 간세포가 ‘녹슨 철’처럼 힘없이 파괴돼 버렸다.
고장 난 세포가 퍼뜨리는 ‘좀비 바이러스’(엑소좀의 비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콜레스테롤 때문에 파괴된 간세포는 죽기 직전, 주변에 위험 신호를 보낸다. 세포 안에 있던 DNA 찌꺼기들을 주머니(엑소좀)에 꾹꾹 담아 밖으로 내뿜는 것이다.
이 주머니가 주변에 있는 다른 세포(간성상세포)에 전달되면 마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듯 주변 세포들이 자극을 받아 간을 딱딱하게 만드는 물질을 마구 뿜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간이 굳어지는 ‘간섬유화’의 진짜 범인인 셈이다.



‘방패를 다시 키워라!’ 신약 후보 물질 ‘DN203316’ 개발
경북대병원 연구팀은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큐어버스와 함께 이 고리를 끊어낼 치료 물질을 개발했다. 바로 ‘DN203316’이라는 신약 후보 물질이다.
이 약을 투여했더니, 사라졌던 간세포의 방패(PPARδ)가 다시 튼튼해졌다.
방패가 생기니 간세포가 녹슬어 파괴되는 현상이 딱 멈췄고, 주변에 좀비 바이러스(엑소좀 찌꺼기)를 퍼뜨리지도 않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딱딱해지던 간이 다시 말랑말랑하게 회복되는 놀라운 효과를 확인했다.
의학계에서는 그동안 지방간염이 왜 간경화로 이어지는지 정확한 연결고리를 몰랐는데 이번 연구는 그 원인 경로를 최초로 정확히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직접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의 가능성까지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으며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실험·분자 의학(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 6월 5일 자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