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P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정식 진단명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환자’라 신경을 쓰는 마음이 진단과 치료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그 ‘중요한 환자’가 꼭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보호자가 자주 전화를 하는 환자, 회진을 마치고도 한 번 더 기록을 들여다보게 되는 환자, 검사 결과가 늦어질수록 내 마음도 같이 조급해지는 환자. 그런 조급함이 VIP 증후군을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중요한 환자’들은 가끔 등장한다.
올해 초, 70대 여성 환자 한 분을 입원시켰다. 복통이 반복되어 방문한 동네 병원에서 ‘복수가 찼다’는 말을 듣고 입원한 환자였다. 처음에는 몸 안에 물이 차게 만드는 질환들, 이를테면 신장이나 심장병을 의심했다. 그러나 CT 검사 결과 배 안을 덮는 막 여기저기에 좋지 않은 흔적이 보였다. 심한 염증의 흔적이 아닐까 애써 생각도 해봤지만, 판독 결과 암이 퍼졌을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암의 시작점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시작해 여기까지 왔을 텐데, 정작 그 출발점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럴 때 병동의 시간은 묘하게 늘어진다. 검사를 하나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설명을 한 번 하고 다시 설명한다. 환자는 묻는다.
“그래서 어디서 시작된 암이야?”
나는 대답한다.
“조금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가장 답답한 말일 것이다. 사실 같은 질문을 나도 하루에 몇 번씩 스스로에게 했다.
온갖 검사를 진행하고도 답을 찾지 못해 결국 진단을 위한 복강경 수술을 했다. 조직검사에서는 암세포가 확인됐다. 하지만 어디서 처음 생긴 암인지 바로 찍어 말할 수는 없었다. 이름을 붙이자면 ‘시작점을 아직 찾지 못한 암’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릴 수만도 없었다. 환자는 점점 더 불안해했고, 배에 차는 물은 그 불안을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환자 곁에 앉아 앞으로의 검사와 치료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자꾸만 더 나쁜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다행히 환자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그 나이대 환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병들을 앓긴 했지만, 웬만한 치료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양내과 교수와 며칠간 상의한 끝에 일단 가장 의심되는 암을 목표로 항암 치료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명확한 지도를 가지고도 찾아가기 쉽지 않은 길을, 눈을 감고 손으로 짚어 찾아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첫 약물이 들어가던 날, 나는 평소보다 자주 병실 문을 열었다. 속이 메스껍지는 않은지, 소변은 잘 보는지, 식사는 하는지, 표정은 어떤지. 환자에게는 담담한 얼굴로 “생각보다 잘 버티고 계십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반쯤은 환자에게, 반쯤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다행히 첫 항암은 큰 탈 없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래서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섣부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약물 투여가 이어지면서 환자는 눈에 띄게 기운을 잃었다. 먹는 양이 줄고, 걸음이 느려지고, 말끝이 짧아졌다. 나는 이런 변화를 너무도 잘 안다. 그런데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익숙함은 오히려 더 선명한 걱정으로 돌아왔다.
나흘간 이어진 항암이 끝나자 환자는 일단 퇴원해서 쉬고 싶다고 했다. 수척해진 얼굴로 퇴원을 준비하는 환자에게 이런저런 약을 처방하고 퇴원 설명을 했다. 퇴원 설명을 하던 중 간호사가 물어왔다.
“교수님, 수납은 어떻게 할까요?”
“아, 제 신용카드 등록해 놓은 것이 있으니 그걸로 퇴원 정산해 달라고 이야기해주세요.”
어머니는 내 앞에서 끝까지 태연하려고 했고, 나는 어머니 앞에서 끝까지 의사답게 굴려고 했다. 우리는 서로 앞에서 각자의 역할을 지키려 애썼다. 그 균형이 흔들리는 것은 언제나 속의 병이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이었다. 설명을 하다 말고 내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을 때,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환자를 안심시키는 쪽은 늘 의사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날은 반대였다.
퇴원하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병실에서는 수치와 모니터를 보았고, 집에서는 숨소리와 잠든 얼굴을 보게 됐다. 의사인 나는 더 해볼 것을 자꾸 떠올렸고, 아들인 나는 지금 곁에 있는 시간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두 마음은 자주 부딪쳤지만,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어떤 치료는 병원에서 하고, 어떤 돌봄은 집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이 일을 하면서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난다. 그들에게 건네는 설명과 위로가 충분했는지 돌아볼 때가 많다. 이번 일을 지나며 그 말들의 무게를 조금 다르게 배우고 있다. 불안한 환자 곁에서 담담함을 지키는 일, 답이 늦어지는 시간을 함께 버티는 일, 그리고 끝내 환자를 집으로 데려가는 마음까지. 앞으로 내가 돌보게 될 VIP 환자들은 아마 더 많을 것이다. 나는 그 의미를, 이제 전보다 조금 더 정확히 안다. 아니 배워간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