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무릎이 뻐근하다.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 문부터 열었다. 얼음팩을 무릎에 댔다. 시원하다.
계단을 내려오던 중 발목을 삐끗했다. 얼음팩을 꺼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틀리지 않다. 다만 정말 이게 최선일까.
얼음이 통증을 잡는 사이, 몸에선 무슨 일이?
캐나다 맥길대학교 통증연구소 연구팀은 쥐에게 냉찜질을 적용하는 실험을 했다. 이곳은 기초·임상 통증 연구자들이 함께 만성통증 치료법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통증 전문 연구기관이다.
연구팀은 소염제에 주목했다. 아스피린·이부프로펜이 단기 통증은 줄이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오히려 더 오래 걸린다는 연구들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염증을 잡는 약이 회복에 꼭 필요한 염증 반응까지 함께 누른다는 결론이었다. 냉찜질도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다.
실험은 두 갈래로 진행됐다. 한 그룹은 쥐 발바닥에 염증 유발 물질을 주사했다. 다른 그룹은 쥐를 쳇바퀴에서 달리게 한 뒤 근육에 주사를 놓아 운동 후 근육통 상태를 재현했다. 냉찜질은 하루 30~60분씩 찬물에 발을 담그는 방식으로 3일간 적용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냉찜질 없이 자연 회복에 맡긴 쪽은 약 15일 만에 통증이 사라졌다. 냉찜질을 한 쪽은 초기 통증은 빨리 잡혔지만, 완전히 가시기까지 30일 이상 걸렸다.
왜 그랬을까.
냉찜질은 호중구의 활동을 억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중구는 혈액 속을 순환하다가 손상 부위로 달려오는 면역세포다. 냉찜질로 통증은 빨리 줄었다. 그러나 호중구가 손상된 조직을 청소하고 회복 신호를 보내는 과정도 함께 늦어졌다.
다만 이 결과는 동물실험에서 나온 것이다. 발목 염좌나 근육통 환자에게서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아직 모른다. 연구팀은 현재 사랑니 발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번 연구는 마취·통증 분야 국제 학술지 《Anesthesiology》 2026년 5월 8일자에 실렸다.
연구를 이끈 제프리 모길 맥길대 석좌교수는 수컷과 암컷이 통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세계적 통증 연구자다. 모길 교수는 "항염증 전략이 언제 도움이 되고 언제 그렇지 않은지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지금 이 결과를 사람에게 바로 적용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논문 결론에서 "소염제와 마찬가지로, 급성 부상에서 냉찜질 사용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실 냉찜질에 대한 의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RICE는 휴식(Rest)·냉찜질(Ice)·압박(Compression)·높이기(Elevation)의 앞 글자를 딴 말로, 부상 직후 기본 처치로 장기간 써온 원칙이다.
1978년 이 요법을 처음 만든 스포츠의학 전문의 게이브 미르킨이 2014년 스스로 뒤집었다.
"얼음과 완전한 안정이 회복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지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상황엔 어떻게 써야 하나
그렇다면 냉찜질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미르킨이 의문을 제기한 것도 냉찜질 자체보다 회복을 빠르게 한다는 점에 대해서였다.
문제는 언제, 얼마나 쓰느냐다.
발목을 삐끗했을 때(염좌): 다친 직후에는 냉찜질이 통증과 부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회복을 빠르게 한다기보다 증상을 덜어주는 처치에 가깝다. 통증과 부기가 조금 가라앉으면 무조건 쉬기보다 가능한 범위에서 발목을 천천히 움직이고, 걷기와 균형 운동으로 단계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통증이 심하거나 체중을 싣기 어렵다면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안전하다.
부딪히거나 넘어졌을 때(타박상): 초기에는 냉찜질로 통증과 붓기를 줄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래 반복하기보다 통증이 안정되는 시점부터는 압박·거상과 함께 가벼운 움직임을 회복하는 쪽이 낫다.
운동이나 헬스 후 근육이 뻐근할 때(근육통): 뚜렷한 부상 없이 생긴 뻐근함이라면 얼음찜질을 길게 반복할 필요는 크지 않다. 통증을 잠시 줄일 수는 있지만, 회복 과정까지 빠르게 만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볍게 걷거나 스트레칭처럼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편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등산 후 무릎이 뻐근할 때: 특별한 충격 없이 생긴 묵직함이라면 근육 피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얼음팩을 오래 대기보다는 평지를 천천히 걷고 가볍게 풀어주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단, 붓기·열감·심한 통증·절뚝거림이 있으면 단순 근육통으로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삐끗한 직후엔 통증과 부기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뻐근함만 남았다면 움직임을 회복할 때다.
산을 내려온 뒤 가장 먼저 얼음팩을 찾았던 이유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면, 그다음 회복은 얼음팩보다 몸의 움직임이 더 큰 역할을 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