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1일 (화)

선생님은 병동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아요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22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녀는 여러 과 외래를 돌아 내가 있는 병동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관절 통증으로 외부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검사에서 신장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좀 더 전문적인 진료를 위해 우리 병원 신장내과를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다시 간 수치 이상이 확인되어 소화기내과로 옮겼다. 하지만 곧 단순한 간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들이 이어졌다. 음식이 잘 삼켜지지 않았고, 목소리가 변했으며, 물을 마시다 자주 사레가 들렸다. 체중도 눈에 띄게 줄었다.

외래 진료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상태였다. 증상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보다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그녀는 입원내과로 오게 되었다.

병실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물 한 모금을 삼킬 때마다 몇 번이나 기침을 반복했다. 힘없이 갈라진 목소리는, 그동안의 경과를 묻는 말을 거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단순히 식도나 기도의 문제가 아니라,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몸 깊은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입원 후 검사들이 이어지면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근육 손상과 관련된 수치가 크게 올라 있었고, 신경과의 근전도 검사에서도 근육 자체의 이상이 의심되었다. 류마티스내과와 상의하며 면역질환 가능성을 검토했다. 성형외과에 의뢰하여 허벅지 근육 조직검사까지 시행했다. 각각의 결과들이 모이면서 하나의 진단에 도달했다. 면역체계가 자신의 근육과 피부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피부근염’이었다.

이 병은 서서히 시작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빠르게 일상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팔다리 근육이 약해지면 머리 빗기나 계단 오르기 같은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진다. 음식을 삼키는 데 관여하는 목 근육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그녀가 겪고 있던 삼킴 장애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오랫동안 해오던 글 쓰는 일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은 오랜 싸움이 될 병의 정체를 설명할 때마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서 불안과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입원 후 삼킴 장애는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재활치료실에서 삼킴 기능을 평가하고 삼킴 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영양팀과는 현 상태에서 가능한 영양 공급 방법을 함께 논의했다.

비위관(콧줄)을 통해 영양 공급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에 이르렀다.

설명을 마치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입으로 먹고 싶어요.”

그 짧은 말 안에 담긴 바람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바람을 그대로 따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지만, 스스로 먹고 마시는 일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뇌졸중 같은 일로 고령 환자들이 비위관으로 연명하는 것과는 달랐다. 의식도 또렷한데 입으로 먹는 일조차 스스로 할 수 없다는 현실…. 회진 때마다 그 막막함을 덜어줄 적당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비위관을 넣은 후 콧속과 목에 느껴지는 이물감을 여러 번 호소했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설명하고, 조금 더 기다렸다. 치료는 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런 순간마다 다시 확인하게 된다.

진단과 치료 준비가 병행되는 동안에도 삼킴 기능은 뚜렷한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 불편한 비위관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어 결국 위루관을 통한 영양 공급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행히 상태가 더 악화되지는 않았고, 영양 상태와 간, 신장 수치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휠체어에 앉은 자세를 유지할 정도의 근력에서 더 악화되지 않는다는 점도 그나마 위안이었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하며, 기능 회복에 대한 기대를 조심스럽게 품어볼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면역글로불린 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류마티스내과로 옮겨가기 전,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아요. 처음 입원할 때는 뭐가 뭔지 모르게 이것저것 터져 나왔는데 며칠 동안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결국 하나의 과정이었네요.”

예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표현이었다.

의학에서는 증상과 징후라는 말이 있다.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불편한 증상과, 진찰이나 검사 결과에서 확인되는 이상 징후는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서로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순차적으로, 때론 순서와 상관없이 한꺼번에 표면에 떠오르기도 한다. 그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실체로 파악해 내는 것, 이것이 병을 진단해 나가는 과정이다.

환자에게는 그 과정이 종종 단절된 이야기로 들린다. 특히 여러 진료과의 문제들이 관련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병동 환자를 돌보며 내가 맡은 일은 그 사이를 잇는 것이었다.

여러 진료과의 판단을 연결하고,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설명하는 일, 각각의 과정이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맞추는 일, 그 흐름 속에서 내려야 할 결정을 함께 감당하는 일이기도 했다.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특정 장기를 다루는 전문의도 아니고,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자리도 아니다. 누군가의 진료를 이어받고, 다른 과로 넘기는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사람. 그 애매함이 스스로를 작게 느끼게 할 때도 있었다.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그 ‘중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단순한 경유지를 넘어, 다양한 증상과 징후가 만나는 소용돌이 속에서 커다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자리였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가 어긋나지 않도록 곁에서 조용히 맞춰주는 일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자리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몇 달 뒤, 병원 복도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다.

위루관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은 회복된 모습이었다. 류마티스내과에서 치료를 이어가며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케스트라 지휘자님.”

그날의 병실과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이 다시 떠올랐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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