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전 예방·치료를 위해 항응고제를 매일 먹으면서, 혈행 개선이나 항산화 목적으로 오메가3나 비타민E를 함께 복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약은 바꾸지 않았는데 멍이 쉽게 들거나 잇몸 출혈이 늘었다면, 새로 추가한 영양제가 원인일 수 있다.
어떤 조합으로 먹느냐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함께 먹으면 왜 결과가 달라질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일부 영양제가 약의 흡수·대사·배설 과정에 영향을 미쳐 약효를 과도하게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약과 영양제는 장에서의 흡수 통로와 간의 대사 효소를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한쪽이 다른 쪽의 작용을 바꾸면서 약효가 강화되거나 약해지고, 부작용 위험도 달라질 수 있다. 영양제는 단순히 효과를 더하는 물질이 아니라 약효와 안전성에 영향을 주는 변수다.
의사 처방을 받아 조제하거나 의약품으로 허가된 비타민·미네랄 제제는 약효를 인정받은 제품이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은 기능성을 인정받은 식품일 뿐, 질병의 치료나 예방 효과를 표방할 수 없다.
의약품은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약국뿐 아니라 올리브영·다이소 같은 생활 유통 매장과 온라인에서도 판매된다. 비타민·미네랄 제제를 포함한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은 약국 진열대에 나란히 놓여 있더라도 적용 기준과 기대 범위는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건강기능식품을 사전 심사해 기능성을 인정한다. 미국에서는 식이보충제(dietary supplement)를 사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제조사 책임 하에 판매된다. 이처럼 제도와 관리 체계가 다르지만, 실제로는 두 제품을 함께 복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낮지 않다.
이란 테헤란 의과대 연구팀이 지난 2월 국제 학술지 《에이징 클리니컬 앤드 익스페리멘털 리서치(Aging Clinical and Experimental Research)》에 발표한 연구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확인됐다.
50세 이상 성인 2만1000여 명을 16년간 추적한 결과, 약물과 영양제를 함께 복용해 상호작용(서로의 작용을 바꾸는 현상)이 발생한 비율은 4.8%로, 약 100명 중 5명꼴이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상호작용이 나타난 비율이 각각 2.8배, 2.2배 높았다.
가장 흔한 사례는 비타민E와 아스피린을 함께 복용한 경우로, 상호작용 위험에 해당하는 사례 중 2.3%를 차지했다. 마그네슘·칼륨과 혈압약 조합도 주요 유형으로 제시됐다. 다만 관찰연구라는 점에서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국도 예외 아니다…이상사례 3년 새 3배
해외 연구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같은 흐름이 수치로 드러난다.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이상사례 신고 건수는 2022년 1117건에서 2025년 3551건으로 3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이상사례 품목 중에는 비타민·무기질 등 일반인이 가장 많이 찾는 영양보충용 제품이 1위를 차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먹으면 흡수·대사·배설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혈압약·혈전약 먹는데 오메가3도 챙긴다면?
경구 항응고제 와파린을 먹고 있다면 영양제 조합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작은 변화도 출혈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와파린은 비타민K의 작용을 억제해 혈액 응고를 늦추는 의약품이다. 비타민K가 많이 든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먹으면 와파린의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혈압약도 예외는 아니다. 칼륨 보존성 이뇨제 등 일부 혈압약을 먹고 있다면 칼륨 보충제를 함께 섭취할 경우 혈중 칼륨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비타민E, 오메가3, 홍삼은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 항응고제와 함께 먹으면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멍이 쉽게 들거나 잇몸 출혈이 늘었다면 현재 먹는 조합부터 점검해야 한다.
영양제끼리도 충돌…함께 먹으면 흡수 떨어질 수 있다
비타민D는 여러 건강기능식품에 동시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멀티비타민, 칼슘제, 눈 건강 제품 등에 함께 포함돼 있어 의도치 않게 섭취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비타민D 과잉은 고칼슘혈증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하면 신장 기능 이상이나 부정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인 상한섭취량은 하루 4000IU다. 보건복지부·한국영양학회가 고시한 ‘2025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도 같은 수준이다.
문제는 과잉만이 아니다. 칼슘·철분·마그네슘·아연 같은 미네랄은 장에서 유사한 경로로 흡수돼 함께 섭취하면 서로 경쟁하면서 실제 흡수량이 기대만큼 늘지 않을 수 있다.
약 먹는 사람이라면 영양제 선택 앞서 확인할 것
항응고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오메가3·비타민E·홍삼을 추가하기 전 출혈 위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비타민D는 여러 제품에 중복 포함될 수 있어 총 섭취량을 합산해 점검해야 한다.
갑상선약을 먹고 있다면 칼슘·마그네슘은 최소 2시간 이상, 철분제는 최소 4시간 이상 간격을 두는 것이 권장된다. 갑상선약은 공복에 복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임신 중이라면 동물성 비타민A(레티놀) 고용량 섭취는 태아 기형 위험이 있어 피해야 한다.
부모나 배우자에게 영양제를 선물할 계획이라면 제품을 고르기 앞서 받는 사람이 복용 중인 약부터 확인하자. 약을 먹고 있다면 영양제를 추가하기 전 약사나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양제는 몸에 좋다고 무조건 추가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복용 중인 약과의 조합에 따라 기능성과 위험이 함께 달라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