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에게 건강보험료 감면 같은 인센티브를 주면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고령 환자가 많아지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들어가는 치료비 부담이 과중해지자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환자들에게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죽음을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을 걱정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의료 현장 한가운데 있는 저 역시 날마다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고민과 갈등에 부닥치곤 합니다. 어느 날 병동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응급실에서 어머니한테 아무 치료도 안하겠다고 동의서 썼잖아. 그냥 돌아가시게 하잔 말이야. 그런데 왜 투석까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따위로 네 멋대로 결정하려면 당장 병실에서 꺼져!”
환자의 작은 아들이 병실에서 물건을 마구 던지며 난동을 피운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급히 달려가 보니 이미 보안업체 직원이 출동해 그를 제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환자의 막내딸이 오빠에게 가슴을 맞고는 겁먹은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패혈증(세균 감염 등으로 심각한 염증이 전신에 퍼진 응급 질환)으로 입원한 80대 중반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열이 나고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흐려진 상태로 오신 분입니다.
만성 콩팥병과 당뇨병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입원 전날까지만해도 식사도 잘하시고 정신도 또렷해 자식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거동은 활발하지 못해 주로 침대에 눕거나 소파에 앉아서 지내셨다고 하고요.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놀란 자식들은 ‘이젠 돌아가시나 보다’ 생각했나 봅니다. 환자를 병원으로 모시면서 외국에 사는 큰 아들까지 급히 귀국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응급실에서 연명 치료 의사를 묻자 아무 치료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거지요.
사실 패혈증은 수액을 달고 항생제를 쓰고 일시적으로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를 쓰면 많은 경우 좋아집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경우에는 하나 하나 치료를 할 때마다 4명이나 되는 자녀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하며 시간을 조금씩 놓쳤습니다.
특히 승압제 부분은 좀 민감했습니다. 패혈증 같은 급성기 상태에서 일시 투여하는 승압제는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인 뒤 심장이나 뇌 같은 중심부에 혈액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약입니다. 그래서 장기간 쓰면 말초에 피가 잘 안돌고 심하면 손끝 발끝이 괴사되는 부작용이 걱정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입원 전날까지도 환자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의사로서는 잠깐 사용하는 승압제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오랫동안 환자를 모시고 살았던 막내딸만이 필요한 약이면 써 달라고 했지만 나머지 분들은 설득하는 데 몹시 힘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승압제까지는 투여하면서 환자 상태가 반짝 회복되고 의식도 명료해졌습니다. 그런데 입원 3일째부터는 소변량이 줄고 콩팥 수치가 올라갔습니다. 이것도 패혈증 환자에게서는 드물지 않은 진행 과정입니다. 혈압이 낮으면 콩팥으로 가는 혈액량이 줄고 그 때문에 콩팥 기능이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거지요. 소변을 나오게 하는 이뇨제를 써봐도 효과가 없으면 일시적인 투석이 치료법입니다. 이 환자는 반드시 투석을 해야 하는 상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투석 필요성을 설명하자 막내딸을 제외한 보호자들은 더욱 완강해졌습니다.
승압제를 쓰면 될 것처럼 설명하더니 또 투석 치료가 필요하다는 게 무슨 말이냐, 아예 모든 치료를 중단해 달라,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보호자들이 언성을 높였습니다. 만일 중환자실로 옮겨 며칠간 투석을 하려면 비용이 하루 30만 원가량 나올 수 있다는 말에 더욱 완고해졌습니다.
“투석을 하시면 좋아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아직 임종 상황은 아니지만 투석을 안 하시면 결국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저는 다른 패혈증 환자의 사례들까지 덧붙여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날 오후 자녀들이 다시 병실에 모이자 환자를 간병하던 막내딸이 “그냥 보내드릴 수 없다. 내가 대출을 받아서라도 투석을 받게 하고 싶다”고 울며 말했습니다. 결국 병실 안에서 자녀들은 감정이 격해졌고, 물리적인 충돌까지 벌어진 것입니다.
좀 장황하게 설명드렸습니다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식 중 어느 쪽도 그 심정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고령의 병든 어머니를 언제까지 돌봐야 할지, 치료비 부담은 어떻게 할지, 덜컥 안 좋아지신 걸 계기로 그냥 보내드려야 할지….
의학적 치료법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이런 순간 결정하기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의학의 발전으로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보호자도, 의사도 고민이 깊어집니다.
의학 교과서에서는 질환이나 증상별로 ‘Treatment of choice’, 그러니까 ‘가장 표준적이고 이상적인 치료’를 제시하고 따르도록 권고합니다. 하지만 고령 만성질환자들의 경우에는 최선의 치료는 매 상황마다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병동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보호자들에게 연명 의료 중단 의사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그 말이 환자를 포기하라는 메시지로 전달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고 배려 있게 설명하려 애씁니다.
이때 저는 몇 가지 원칙을 명확하게 말씀드립니다.
우선 연명 치료 중단이라고 해서 모든 치료를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보호자들은 고령 환자가 돌아가실 것 같은 상태라고 판단될 때 병원에 모시고 와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요구하십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병원은 사람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곳이지, 아무 것도 안하고 돌아가시길 기다렸다가 사망 선언을 하는 곳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연명 치료 중단이란 이미 심장 등 주요 기능이 떨어지고 임종 과정에 접어들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적용을 안 한다는 의미입니다.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되지 않는 한 수액이나 항생제 같은 약물 치료, 시술 등은 필요한 경우 시행해야 합니다.
또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했어도 환자의 상황이 달라지고 보호자들 생각이 바뀌면 얼마든지 번복할 수 있습니다. 입원전 식사도 잘하고 거동도 비교적 괜찮은 환자라면 심폐소생술 같은 건 안 하더라도 나머지 치료는 적극적으로 고려하자고 설명 드립니다.
특히 투석 같은 경우는 평소 얼마간의 콩팥 기능 저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감염 등 어떤 이벤트가 있어 급격히 더 안 좋아진 환자에게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것이 문제가 되는 의료급여 환자에게는 병원 사회사업팀에서 진료비를 지원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의료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보호자들이 구체적인 치료법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따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의사의 자세한 설명, 환자의 여명이나 평소 가족 간의 유대 관계 등을 모두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종적인 결정은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에게 달렸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환자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치료는 다하자고 설득하고 싶습니다. 의사들 안에서도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지만요. 그래서 늘 함께 고민합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건강할 때 본인의 연명 치료 거부 의사를 밝혀두는 사전연명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32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연명 치료를 거부한 사람이라도 임종 과정이 아닌 단계에서는 어느 상황에서 어떤 치료까지 해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경태영 대한입원의학회 회장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