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유경 교수님 귀하.’
병원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요즘 세상에 편지라니, 그것도 손 글씨로.
의사에게 편지는 반갑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료 과정에 대한 항의이거나, 법적 문제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소송은 아닐까.’
편치 않은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편지는 퇴원한 환자가 보낸 것이었다.
처음 병실에서 그녀를 마주했을 때, 특별히 눈에 띄는 인상은 없었다. 조용한 말투의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을 제외하고는.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듯이 공허한 표정이었다.
덮고 있는 담요 밑으로 수갑 찬 발목이 얼핏 보였다. 환자 침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제복을 입은 교도관들이 교대로 지키고 서 있었다.
그녀는 혈압이 급격히 떨어진 쇼크 상태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혈압이 지나치게 낮으면 신체가 충분한 혈액과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기능이 저하되고 심하면 주요 장기가 손상되는 응급상황으로 진행할 수 있다.
보통 심장이 잘 안 뛰어 순환에 문제가 생기거나 대량출혈이나 심한 탈수로 몸속의 수분이나 혈액이 부족해지면 혈압이 낮아진다. 또 폐렴 같은 감염으로 염증이 심해도 혈압이 떨어질 수 있다. 우선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 수액 치료를 하면서 원인을 찾기 위해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 평소 먹는 약이나 몸 상태, 최근의 변화 등을 묻는 병력 청취 과정이다.
다행히 병력 청취나 검사 결과에서 심장병 같은 지병이나 감염질환, 출혈 같은 건 없었다. 다만 평소 변비가 심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 먹는 장정결제를 수시로 복용했다는 것이다. 응급실 오기 바로 전날엔 내시경을 하느라고 또 장정결제를 먹고 대변을 쏟아냈고 그 후 두통과 어지럼증, 구토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탈진이 되고 정신이 흐려지고 급기야 구치소에서 응급실로 이송된 것이다.
혈액 검사에서는 산-염기 균형이 깨진 대사성 산증이 확인되었다. 다른 숨은 원인들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대변약과 장정결제를 과용하면서 설사를 자주 했고 그로 인해 탈수가 심해지고 체액 불균형이 생겼던 것으로 판단됐다. 탈수와 대사성 산증이 지속됐다면 콩팥기능 셧다운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저 괜찮아질까요? 살 수는 있는 건가요?”
회진 때마다 그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요. 혈압도 돌아왔고 피검사 결과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병실을 찾아 바이탈(혈압, 체온 등 활력징후)을 확인하고, 증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오늘은 무엇을 더 지켜봐야 하는지를 시시콜콜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은 단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슨 범죄를 저질렀길래 수감됐을까, 위험한 사람은 아닐까….
그녀의 힘들었을지도 모를 개인사를 묻는 것이 조심스럽고 두려웠다. 다른 환자였다면 내가 어디까지 알려고 했을까. 단순 호기심은 버리고 보통의 환자처럼 현재의 치료에 집중하자. 병실에서 그녀는 ‘수감자’가 아니라 ‘환자’였다.
며칠 동안, 하루 중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그녀의 병력은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조그만 단서도 알지 못한 채 퇴원을 준비했다. 그녀는 큰 지병이 없었던 터라, 언제 그랬나는 듯이 정상혈압으로 돌아오고 다른 증상들도 좋아져 교도관들과 함께 다시 구치소로 돌아갔다.
그녀가 퇴원한 지 한참이 지나 내 앞으로 도착한 편지를 읽고서야 나는 비로소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죽을 뻔한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감자라는 이유로 다르게 보지 않고 사람으로 대해주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편지에는 무슨 죄로, 어떤 상황에서 구속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개인적인 비극을 겪었는지. 입원 당시에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사실들이 한 줄 한 줄 조심스럽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사업 실패로 거액의 대금을 갚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가 구속되자 남편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집에는 엄마를 기다리는 세 아이가 있었다. 그녀 역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치솟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현 상황을 헤쳐 나갈 용기도, 방법도 없었다. 그런 자포자기 상태에서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흐려져 응급실에 실려 왔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녀에게 해준 일은 아주 평범한 것들이었다. 매일 혈압을 확인하고, 증상이 나아지는지 묻고,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약을 조절하는 일. 특별한 위로를 건넨 것도, 인생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환자와 다르지 않게 대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그 시간이 ‘사람으로 대우받았던 시간’으로 남았던 것 같다.
입원 초기의 혼란과 불안을 함께 견디고, 치료의 방향을 설명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돕는 일. 그 짧은 며칠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내 스스로를 다시 일깨웠다.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윤리에 대해 많은 교육을 받는다. 누구를 치료할 것인가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평가와 의료적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병실 안에서는 오직 환자라는 사실만이 의미를 가진다는 원칙이다. 교과서에서는 너무도 당연해 보이던 문장들이, 이렇게 한 사람의 얼굴과 함께 떠오르자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그녀의 편지는 지금도 내 책상 한쪽에 놓여 있다. 바쁜 일과 중 문득 시선이 닿으면, 그 병실의 풍경이 떠오른다. 병실을 지키던 교도관, 환자의 공허하고도 불안한 눈빛, 담요 아래 가려진 수갑,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분명히 ‘환자’였던 한 사람.
의사는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사회의 모든 상처를 고칠 수도 없지만 눈앞의 한 사람을, 그가 어떤 배경을 가졌든 지금 이 순간의 환자로 대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배운 의료윤리가 병동에서 가장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실천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 후 몇 년의 형을 선고받았는지, 또 다른 건강 문제는 안 생겼는지, 교도소 생활에는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때의 평범한 진료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나는 그 편지를 통해 배웠다.
임유경 교수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