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대에 가지 마라. 3년 이내 로봇이 외과의사를 대체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말이 화제다. 머지않아 ‘인간’ 의사가 쓸모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여전히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그 발언은 매우 도발적으로 들린다.
교육 현실보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의료 현장이다.
80대 여성 환자가 직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외과 병동에 입원했다. 종양 크기는 3cm정도. 추가로 시행한 MRI, PET-CT에서 원격 전이는 없었다. 외과 집도의를 비롯한 의료진은 수술을 먼저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수술 전후 관리를 맡은 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반적인 치료 계획을 막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AI는 항암 치료가 먼저라는데 왜 수술부터 하시려는 건가요?”
엥?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인터넷에서 여러 정보를 검색하거나 참고 문헌을 찾아보고 오는 보호자는 익숙하다. 하지만 AI 상담 결과를 출력해 와서 조목조목 따지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보호자의 손에는 수십 장의 프린트물이 쥐어져 있었다.
왠지 AI도 아는 뻔한 ‘정답’을 놓치고 야단 맞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조직검사 결과와 복부 CT 판독을 AI에 넣고 자세히 분석해봤어요. 수술이 먼저가 아니라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해서 암 크기를 줄이는 것이 표준 치료라고 하더군요. 그래야 직장암에서 가까운 항문도 살릴 수 있고 치료 효과도 좋아진다고 하는데, 혹시 외과라서 처음부터 항암치료는 염두에 두지 않은 건가요?”
하아…. 즉답을 하지 않고 잠시 숨을 골랐다. 보호자가 의료진의 설명을 이해하고 신뢰할 여지가 있는지도 가늠해 보았다.
보호자의 지적은 사실 정확했다. 미국 국립암센터네트워크(NCCN)나 유럽종양학회(ESMO)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소 진행성 직장암의 경우 먼저 항암방사선 치료를 시행한 다음 수술하는 것이 표준적인 접근이다. 암 크기를 줄여 재발률을 낮추고 항문 보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AI는 수만 건의 데이터와 최신 논문을 기반으로 ‘통계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답’을 내놓은 것이다.
속으로 감탄했다. 이제 일반인도 버튼 몇 번만 누르면 국제 가이드라인의 결론에 도달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그런데 AI가 내놓은 치료법이 지금 우리 앞에 앉아있는 이 환자에게도 최선일까?
의료진의 고민은 단순하지 않았다.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를 하면 암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위험이 컸다. 구역과 구토, 설사, 식욕 저하, 근육 감소, 골수기능 저하, 빈혈, 감염…. 수없는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었다. 젊은 환자라면 버틸 수 있는 치료지만, 이 환자에게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게다가 고혈압 심방세동 당뇨 같은 여러 질환을 앓고 있는 취약한 분이었다.
보호자를 따로 불러 다시 설명했다.
“보호자 말씀이 맞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항암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합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
“다만, 고령 환자들 중에는 항암 치료를 하다가 체력이 나빠져 수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은 식사도 잘 하시고 거동도 가능하시니 먼저 수술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AI는 확률을 계산하여 최적의 코스를 제시하지만 실제로 환자가 그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지도 판단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래도 AI는….”
보호자는 끝내 말을 맺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표준치료법에 대한 미련이 그의 표정에 남아있었다. 어쩌면 AI는 의사를 보완하는 도구를 넘어,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변화가 낯설고 씁쓸했다.
긴 대화 끝에 환자와 보호자는 수술을 먼저 하자는 권고를 받아들였다.
수술 당일, 나는 환자가 수술실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묘한 긴장을 느꼈다. 집도의는 이 분야의 권위자였지만, 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보호자는 “AI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의할지도 몰랐다. 이제 AI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시대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종양은 깨끗하게 제거했고 항문 기능도 보존할 수 있었다. 환자는 빠르게 회복하여 열흘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론 이 경험이 ‘AI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조건 환자였다면 표준치료가 더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누가 옳으냐가 아니었다.
통계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찾아낸다는 것과, 그 선택을 한 환자가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시행하는 일은 서로 다른 차원의 얘기다.
그리고 그 고민은 수술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환자의 수술 전 준비과정과 수술 후 회복과정을 지켜보는 매일의 시간 속에서, 그 선택은 계속 확인되고 수정된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예술은 길다(Art is long, life is short)’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여기서 ‘예술’은 현대적 의미의 예술이 아니라 의술을 뜻하는 ‘테크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의술이 예술과 같다고 생각한다. 의술은 수많은 변수를 조율하는 과정에 가깝다. 단 하나의 정답을 맞히는 일에 그치지 않고, 한 생명의 특별한 조건 안에서 가장 덜 위험하고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을 찾는 일인 것이다.
외과 병동에서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하는 나는 날마다 수많은 환자를 만난다. 현실의 병동에는 교과서적인 ‘평균 환자’란 없다. 같은 수술을 받아도 회복 속도가 다르고, 같은 설명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모두가 서로 다른 나이, 다른 기저질환, 다른 체력, 다른 삶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일론 머스크의 말처럼 AI 로봇이 수술을 집도하는 그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더 정교한 손놀림, 더 빠른 계산으로 최적의 수술 경로를 따라 쓸개를 자르고 맹장을 떼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후 기나긴 병동의 시간은 여전히 인간 의사의 몫이다. AI는 데이터를 입력받지만, 환자의 눈빛과 숨소리, 표정은 입력받지 못한다.
나는 오늘도 회진을 돌며 수술 환자의 안색을 살피고 배를 조심스레 눌러본다. 어제와 다른 미묘한 긴장을 손끝으로 느끼고,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불안감을 읽어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회복의 길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그날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외과 병동을 지키는 이유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