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 제약에 근무하는 50대 부장 A씨는 최근 병원에서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며칠 전부터 미열과 함께 온몸에 붉은 발진이 퍼져 병원을 찾았더니 담당 의사가 “수두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아니, 수두는 애들이나 걸리는 병 아닌가.’ A씨는 당황했다. 문득 얼마 전 대상포진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같은 바이러스라던데 혹시 백신 탓은 아닐까.’ A씨의 물음에 담당 의사는 “생백신을 맞았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그 경우에도 수두가 발병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A씨는 어머니에게 연락해 물었다. “내가 어릴 적 수두를 앓았던 적이 있냐”고 묻자 “그런 적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뒤 수두 진단을 받은 상황.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상포진 백신 맞고도 수두에 걸릴 수 있나
수두와 대상포진 모두 ‘수두 바이러스(VZV)’에 의해 발생한다. 대상포진은 어렸을 때 이미 수두에 한 번 걸렸던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환이다. 수두를 앓고 난 뒤 뇌신경절, 자율신경계 등에 잠복 상태로 남아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약해지는 시기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병한다.
대상포진 백신은 이 수두 바이러스를 사용해 면역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A씨가 수두에 걸린 것도 정말 백신 부작용은 아닐까.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그럴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고 말한다. 엄 교수는 “특히 A씨가 사백신을 맞았다면 백신 부작용으로 수두에 걸릴 확률은 0%이며, 생백신을 맞았더라도 1%에 한참 못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상포진 백신 가운데 사백신은 수두 바이러스를 완전히 죽인 상태로 사용하는 백신으로, 바이러스 증식이 불가능하다. 생백신은 독성이 약해진 살아 있는 수두 바이러스(약독화 생백신)를 사용하며, 이 때문에 주사 후 드물게 수두 유사 발진이 나타날 순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 후 수두 발진이 전신으로 확산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엄 교수는 “A씨가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거나 과거 다른 감염력 등이 있었다면 (생백신 접종 후) 극히 드문 확률로 수두 같은 발진이 생길 순 있다”며 “다만 젊고 건강한 분들에게선 발생 확률이 거의 0에 수렴한다”고 설명했다.
생백신은 사백신보다 단가가 저렴하긴 하나 대부분의 병원에선 주로 사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추세다. 사백신은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나 임신부도 안전하게 접종 가능하다.
공기 중 수두 전염 가능성도 있어
백신 부작용이 아니었다면 A씨는 외부에서 수두에 감염됐을 수도 있다. 수두는 공기 중으로 전파될 수 있는 호흡기 감염병이다. 수두 환자와 밀폐된 공간에 같이 있기만 해도 옮을 수 있을 정도로 전파력이 강하다.

반면 대상포진은 전염되지 않는다. 대상포진은 이전에 수두를 앓았던 사람의 몸에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되는 방식으로 발병하므로, 대상포진 환자와 접촉을 하거나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대상포진이 옮진 않는다. 다만 대상포진 수포가 터진 부위와 직접 접촉하면 수두에 걸린 적 없는 아이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 한해 희박한 확률로 수두가 옮을 순 있다.
“나는 수두 앓은 적 없다”는 기억, 착각일 수 있다
수두를 앓지 않았으면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는다. 다만 어릴 적 수두를 앓은 기억이 없더라도 대상포진 백신은 맞아두는 게 좋을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수두를 앓았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엄 교수는 “실제로 어릴 적 수두를 가볍게 앓고 지나치는 경우도 꽤 있다”며 “우리나라 30대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바이러스 항체 검사를 해보면 거의 92~93%는 수두 면역을 지닌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한편 고령층 대상포진 환자 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0대 이상 대상포진 환자 수는 총 34만2359명으로, 10년 전(23만3920명) 대비 46.4%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연령대 평균 증가율(14.5%)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측은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저하된 고령층에서 극심한 신경통과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이라며 “50세 이상 성인과 면역력이 저하된 성인은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백신 접종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