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 80년대에는 ‘경음악’이란 장르가 있었죠? 폴 모리아, 리처드 클레이더만, 프란시스 레이, 프랑크 푸르셀, 벤처스 등 클래식과 스탠더드 재즈와는 구별되는 경음악이 인기를 끌었지요.
특히 폴 모리아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1200여 번 공연하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노래도 편곡해 앨범에 실었는데 파리에 울려 퍼졌던 ‘아리랑’은 오랫동안 국내에서도 현대백화점 폐점 안내 곡으로 쓰였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채은옥의 ‘빗물’ 등 K팝 이전에 해외에 ‘수출’됐지요.
폴 모리아는 1925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우체국 임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마르세유 국립음악원에서 클래식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재즈와 팝에 빠졌고, 우체국 직원으로 채용됐지만 밴드 지휘자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단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다 1968년 앙드레 포프의 곡을 편곡한 ‘Love is Blue’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습니다. 그 곡은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5주간 정상을 차지했고 그에게 ‘그래미 상’을 안겨줬지요.
2006년 오늘(11월 3일)은 그 ‘경음악의 대부’ 폴 모리아가 프랑스 남부 페르비뇽의 한 병원에서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유족은 다음날 급성 백혈병 탓에 심장 기능이 떨어져 숨을 거뒀다고 알렸습니다.
폴 모리아는 ‘러브 이스 블루’와 ‘이사도라,’ ‘엘 빔보,’ ‘토카카’ 등 숱한 히트 곡을 남겼는데 ‘에게 해의 진주’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곡명은 ‘Penelope(페넬로페)’였는데, 일본을 통해 음악이 들어오면서 ‘에게 해의 진주’로 번역됐습니다.
페넬로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의 아내이죠? 이것을 ‘에게 해의 진주’로 번역한 것은 왜일까요? 이타카는 에게 해가 아니라 그리스 반도 서쪽 이오니아 해에 속해서 둘은 거리가 있습니다. 산토리니, 미코노스, 레스보스 등 에게 해의 섬들이 페넬로페처럼 아름다워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데, 글쎄요….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페넬로페에게 “1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거나 아들에게 수염이 나면 재혼하라”고 당부했지만, 그녀는 숱한 남자의 청혼을 뿌리치고 20년 기다렸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에 반한 남성들이 계속 청혼하자 시아버지의 수의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낮에는 천을 짜고 밤에는 도로 풀어버린 데에서 영어 숙어 ‘Penelope’s Web(페넬로페의 베짜기)’가 유래했지요. ‘아무리 해도 진전이 없는 일,’ ‘지연전술’ 등을 뜻합니다.
페넬로페는 인내와 정조의 상징이었고, 남성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지선(至善)의 여성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겠죠?
그러나 이익 앞에서 변심이 난무하는 세상에 한 가지 멋진 가치를 끝까지 지키는 지조(志操)는 박수 받을 일이겠죠? 어쩌면 폴 모리아가 끝까지 추구한 음악의 세계도 그런 것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떤 가치를 평생 추구할 것인가요?

오늘은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의 ‘Penelope’ 듣지 않을 수 없겠지요? 1998년 지휘자로서 은퇴할 무렵의 공연 실황입니다. 그나저나 왜 페넬로페가 ‘에게 해의 진주’로 번역됐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