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만심을 누르는 것은 사자를 제압하는 것보다 힘들고, 분노를 이기는 것은 가장 힘센 씨름 선수를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
◯최고라고 잘난 체하지 말라.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그 산에는 짐승이 산다. 그 짐승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산보다 더 높아진다.
◯나의 부하 예순베이는 아무리 싸워도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오래 싸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기만큼 못하면 버럭 화를 낸다. 그런 사람은 절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나는 사치를 싫어하고 절제를 실천하며 살아왔다. 좋은 옷을 입고, 빠른 말을 타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거느리면 자신의 전망이나 목표를 잊기 쉽다. 그런 사람은 노예나 다름없으며 반드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능숙하고 용감한 자들은 군지휘관으로 육성했다. 빠르고 민첩한 이들에겐 말을 다루도록 했다. 능숙하지 못한 사람은 작은 채찍을 주어 양치기가 되게 했다.
◯리더는 말을 많이 해선 안 된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여줘야 한다.
◯두려우면 실행하지 말라, 만약 실행한다면 두려워하지 말라.
◯분노해서 저지르는 행동은 실패할 운명의 행동이다.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친구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도, 그래도 여전히 친구는 친구다.
누가 떠오르지 않나요? 책임지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이 명언들 가운데 몇 가지라도 명심하고 실천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일부 온라인 백과사전에 오늘이 이 명언들을 남긴 칭기즈칸의 기일로 나와 있던데, 몽골제국의 초대 칸이 언제 눈을 감았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1227년 지금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몽골군의 대를 이은 정복 전쟁 탓에 한동안 칭기즈칸이 잔인한 군주로만 알려졌지만, 칭기즈칸이 난폭하기만 했다면 세계 최대 강국의 토대를 닦지 못했겠죠?
칭기즈칸은 몽골을 능멸한 군주나 귀족, 군사들은 도륙했지만 많은 점령지에서 폭넓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으며 여성의 지위도 존중했습니다. 심지어 유럽에선 이슬람의 동쪽에 기독교의 나라가 있고 왕이 ‘사제 요한’이라는 소문까지 있었습니다. 바로 몽골의 칭기즈칸이었는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을 공존시켰고 종교 토론회까지 개최했습니다. 몽골 역사책 《몽골비사》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신부, 승려, 이맘 등과 함께 신의 존재, 우주의 기원 등에 대해 토론하는 걸 즐겼습니다. 몽골 지배층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독립적으로 보고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부정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많이 믿었습니다.
칭기즈칸은 리더로서 뛰어난 모범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혈연보다는 개인의 충성도와 능력에 따라 임무를 맡기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정복한 나라의 뛰어난 인재와 기술, 지식, 문화를 철저히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남의 말을 경청했고 합의를 존중해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는 것도 회의에 따랐습니다. 자신에 대해선 절제했고 오만과 분노가 고개 드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굳이 세계 제국이나 한 나라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어떤 조직에도 리더가 있기 마련이죠? 모임이나 조직, 회사를 이끌고 있다면 칭기즈칸의 경구들이 비타민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지혜롭게 사는 데 그의 명언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1750년 오늘은 모차르트와 함께 활약했다는 이유로 모차르트 독살설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천재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태어난 날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는 사이었고, 모차르트의 사인은 중독과는 관계가 없었지만, 살리에리는 ‘가짜뉴스’ 탓에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습니다. 살리에리는 베토벤, 리스트, 슈베르트 등의 스승이기도 했고 부유한 제자를 제외하고 수업료를 받지 않았던 음악가였습니다. 살리에리의 ‘Salve Regina(안녕하세요, 여왕이시여·성모 찬송)’를 빈 소년합창단의 합창으로 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