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들이 시간이 지나도 공포 기억을 잊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뇌 속 '별세포'(Astrocyte)가 만드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의 과잉 축적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과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 류인균 석좌교수 연구팀은 29일 PTSD의 병리 구조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PTSD는 재난이나 폭력, 전쟁 등 극심한 외상을 겪은 후 발생하는 난치성 정신질환으로, 환자들은 과거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지속적인 불안과 고통에 시달린다. 일반적으로 공포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희미해지지만 PTSD 환자에게는 이런 자연 회복 과정이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 PTSD 환자들에게 주로 사용되는 치료제는 세로토닌 수용체 기반 항우울제다. 하지만 PTSD환자 중 효과를 보는 환자가 20~30%에 불과하고 개선 속도도 느려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연구팀은 PTSD 환자와 외상 경험자, 일반인을 포함한 380여 명의 뇌영상을 분석한 결과, PTSD 환자의 전전두엽에서 가바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고 뇌혈류량이 감소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변화는 PTSD 증상의 심각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증상이 회복된 환자들은 가바 농도와 뇌혈류량이 모두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PTSD 환자의 사후 뇌 조직 분석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병리 메카니즘이 밝혀졌다. 뇌 속 비(非)신경세포인 별세포에서 가바 생성에 관여하는 마오비(MAOB) 효소의 활성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고, 동시에 가바 분해 효소인 ABAT의 발현이 감소하면서 가바가 과잉 생성되고 축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실험에서도 별세포의 마오비 효소 활성을 인위적으로 높인 모델에서 공포 반응이 장기화하고 뇌의 회복 기능이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돼 연구팀의 가설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된 신약 후보물질 'KDS2010'은 마오비 활성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PTSD 동물모델에 이 물질을 투여한 결과 가바 농도와 뇌혈류량이 정상화하고 공포 반응과 불안 행동이 크게 완화되는 효과를 보였다. KDS2010은 현재 안전성 검증을 완료하고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이창준 단장은 “PTSD의 분자 및 세포 수준의 병리 메카니즘을 규명하고, 별세포라는 새로운 치료 표적을 제시했다”며 “이번 성과가 PTSD의 근본적인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류인균 교수는 “기초 연구와 임상 연구를 통합해 정신질환 치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의미 있는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포트폴리오의 생화학·분자생물학 분야 권위지 《신호 전달 및 표적 치료(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온라인 판에 28일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