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의학박사는 왜 대학 대신 농촌으로 갔나?
[이성주의 건강편지]
삶의 항로는 우연과 필연이 이어지면서 결정되고, 때로는 누군가의 영향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1980년 오늘(11월 25일) 눈감은 ‘한국의 슈바이처’ 이영춘 박사의 삶을 살피며 확인합니다.
1883년 고종이 미국에 파견한 보빙사절단 일행은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에서 감리교 목회자 존 F 가우처 박사를 만납니다. 가우처는 민영익과 대화를 나누고 조선이 개척 선교의 적지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선교위원회의 승인이 나지 않자, 일본에 있던 로버트 맥클레이에게 조선에 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맥클레이는 ‘개화 지식인’ 김옥균을 접촉, 고종의 의료선교 윤허를 받았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스크랜튼 등이 잇따라 입국했습니다.
호러스 언더우드는 조선에서 선교하다 미국으로 자금을 모금하러 갔는데, 이때 만난 올리버 애비슨이 감동을 받고 한반도 행을 결심합니다. 애비슨은 제중원을 민영화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가 모금 활동을 펼치다 클리블랜드의 부호 루이스 세브란스의 기부를 받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이 탄생케 된 것이지요. 애비슨은 세브란스의전과 연희전문학교의 교장, 세브란스병원 원장 등을 맡았는데 제자들에게 의사의 역할에 대해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모두 자기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공중 보건을 맡아 아픈 사람을 고치는 진짜 의사가 되십시오!”
애비슨 박사의 의전 졸업식 축사를 가슴에 새긴 이영춘 박사는 국내 순수 의학박사 학위 제1호여서 안락하고 품위있는 삶이 보장됐지만, 애비슨의 가르침을 따라 농촌 보건위생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 박사는 교토제국대에서 ‘생체에 있어서 니코틴 작용이 성호르몬에 미치는 영향’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스승은 윤일선 박사였습니다.
윤일선의 아버지는 한반도에 의료선교의 물꼬를 튼 김옥균을 따랐던, 개화파 윤치오입니다. 윤치오는 갑신정변 후 일본으로 피신했다 ‘일본통’이 됐고, 일본에서 공부하다 결혼해서 일선을 낳습니다. 윤일선의 어머니는 일찍 병사하면서 “일선이는 책을 읽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니 대학까지 보내 학자가 되도록 해주시고…”하며 아들들에 대한 유언을 남겼는데 아버지는 이를 오랫동안 가슴에 새겼다고 합니다. 일선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삶에 대해 고민,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의 제자 이영춘 박사는 평양고보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 근무 중 늑막염에 걸렸다 세브란스의전 출신의 김찬두 박사에게 치료 받아 완치합니다. 그는 의료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세브란스의전에 입학, 의사가 됩니다. 이 박사는 전북 군산 지역에서 일본인 농장주의 요청에 따라 농민 의원을 열었다가 평생 ‘농민의 선생님’이 됩니다. 그곳에서 환자들의 병을 치료하면서 기생충, 결핵 등의 예방 사업을 펼치고 학교와 병원을 설립합니다.
이영춘 박사의 삶의 궤적을 좇다 보면 삶에서 누군가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자신이 운이 맞지 않아 꿈을 이루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쳐 위대한 꿈을 이루게 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르겠지요. 현재 의료계에선 나이를 떠나, 젊은 의사에게 길을 제시할 어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대 의대 김정은 학장의 올초 졸업식사에서 의사의 소명을 강조하는 내용에 가슴 뭉클했는데, 졸업생 가운데 몇 명이 감동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뜻을 좇아 농촌으로 갔는데, 지금 누가 그런 길을 제시하면 야유를 들을 것 같습니다.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어른이 존중받지 못하고, 그래서 어른이 누군가의 야유가 두려워 어른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 위기의 하나라고 믿는 것은 저만의 옥생각일까요? 여러분은 지금 누군가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나요? 만약, 누군가 숙고해서 제시한 말들이 어떤 이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
1941년 오늘, 스타의 길과는 거리가 먼 배경에 앞니가 벌어져 미남이라고 할 수 없는 얼굴의 미국 가수 퍼시 슬레이지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육군 하사를 전역하고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1966년 3월 발표한 앨범으로 미국 최고 가수가 됩니다. 그 가운데 ‘When a Man Loves a Woman’은 빌보드와 캐시박스 싱글 1위에 오르고 존 웨슬리 라일스, 베트 미들러, 마이클 볼튼 등 숱한 가수들이 따라 불렀죠? 퍼시 슬레이지의 명곡 ‘When a Man Loves a Woman’ 준비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과거에 그러한 환경에서 업적을 이루신 이영춘 선생님 존경합니다. 과거와 지금은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지금도 도시 농촌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소명이라 생각하고 성실히 진료하고 계신 의사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물론, 아래분처럼 현재만 바라보며 불평불만 가득한 의사들도 있습니다. 의사 개인에게 바라기보다는 보건의료시스템을 잘 만들고, 그에 따라 의사들이 실력껏 진료하는 환경을 잘 구축해나가야하는데, 이번 윤썩열 정권이 아주 자~알 하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가시면 되겠네요 ㅎㅎ 기성세대들이 쌓아놓은 문제들이 터졌는데.이걸 요즘 것들이 봉사 안해서 그렇다고? ㅋㅋㅋ 미친 ... 부끄럽긴했나봐요 끝에 직접이야기 못하고 돌려이야기하신거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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