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플 때도 온라인 진료를”…인니 원격의료 ‘빛과 그림자’

[원격의료, 세계인의 삶 바꾼다] (3) 동남아시아 원격의료 선도국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코타역 인근 도로. 초록색 옷을 입은 오토바이 운전기사 중 왼쪽은 배달서비스업체 고젝, 오른쪽은 그랩 직원이다.

10월 28일 오후 1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코타역 근처에 초록색 점퍼를 입은 두 명의 오토바이 운전기사들이 도로에서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언뜻 보면 같은 업체 동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쪽은 고젝(Gojek), 다른 한쪽은 그랩(Grab)이라고 적혀있다. 이들은 약 배송, 음식 배달 등을 하는 서로 다른 배달서비스업체의 직원들이다.

자카르타 도로에서는 이처럼 초록색 점퍼를 입은 오토바이 운전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하는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약 배송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원격의료 앱을 통해 의사 상담을 받고 약 처방을 받으며 집으로 약 배송까지 받는다.

“병원에서 한참 기다리거나 약국에 줄 설 필요 없이 온라인에서 곧바로 의사 상담을 받고 약 배송도 받을 수 있어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앱으로 약 배송을 신청했는데 다른 집으로 잘못 갔어요. 업체에 이의를 제기했는 데 일주일이 지나도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원격의료 플랫폼 이용 경험담이다. 사용이 편리하다는 장점을 강조한 의견과 오배송, 환불 문제 등 서비스의 문제점을 지적한 의견들이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원격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나라다. 원격의료가 이미 일상이 됐다. 한국보다 선제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한 인도네시아의 현 상황을 보면 원격의료란 동전의 양면이 드러난다.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는 2억 7550만 명이 무인도를 제외한 1000여 개 섬에 분산돼 사는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극복 대안의 하나로 원격의료를 택했다. 2012년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2019년 인도네시아 건강보험공단과 원격의료 기업이 공식 MOU를 체결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김종엽 연구원은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의료 환경과 교통 환경, 보건소·병원 등의 긴 대기시간으로 인한 낮은 의료 접근률이 원격의료의 등장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싸고 편해서 쓰죠” vs. “급성질환엔 위험해”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원격의료 기업으로 할로독(Halodoc)이 있다. 알로독테르(Alodokter), 독테르세핫(Doktersehat) 등 후발주자도 있다. 할로독에는 2만 명이 넘는 의사가 등록돼 있는데, 환자는 일반의를 선택할 수도 있고 피부과 전문의, 소아과 전문의, 내과 전문의 등 각 진료과 전문의를 골라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원격의료 기업들(왼쪽). 할로독 접속 시 오른쪽처럼 상담 가능한 의사 목록이 뜬다.

인도네시아 알바라 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인의 71%는 헬스케어기업보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원격의료를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의료 서비스 생태계를 이미 갖추고 있는 병원을 신뢰하는 건데, 할로독 등의 원격의료 플랫폼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잘 반영하는 서비스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저소득층이 특히 더 원격의료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의료기기사업을 하는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최인실 사무국장(57)은 “할로독이 잘 되면서 다른 원격의료 업체도 등장했다”면서 “인도네시아는 빈부격차가 심한데 A급 병원은 중산층도 가기 힘들고, 시골에는 보건소가 있지만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병원에 갈 수 있지만 최저 임금 이하로 받으며 노동하는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 보험이 없다. 원격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인도네시아는 2014년 1월부터 전 국민 의료보험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개인 부담이 큰데다, 보험 보장액이 낮아 가입이 저조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섬나라라는 독특한 지리적 특성과 의료 접근성이 낮아 원격의료 의존도가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할로독 이용자가 앱을 통해 곧바로 상담 가능한 의사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할로독 등 원격의료 플랫폼은 환자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스리물리 야니 씨(50)는 “코로나19가 대유행일 때 온라인 닥터들이 진료비를 1만∼2만 루피아(914~1830원)만 받는 프로모션을 했다”면서 “할로독에선 의사 프로필을 살펴보고 자신이 원하는 전문의를 고를 수 있어 중산층 이상도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2015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0.27명으로, OECD 평균인 2.9명에 크게 못 미친다. 동남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의사수가 부족한 수준이다. 스리물리 씨의 말처럼 고소득자도 원격의료를 이용하긴 하지만 의료 인프라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저소득층은 대면 진료가 필요한 질환에 대해서도 원격의료를 받고 있다.

자카르타 남쪽 한인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 A씨는 “당뇨, 고혈압, 갑상선질환 등 만성질환은 원격의료를 해도 문제가 없다”며 “나도 한인들을 대상으로 왓츠앱이나 카톡 등 메시지 서비스를 이용해 현재 혈압은 어떤지, 기상 혈압은 얼마인지, 다리가 붓지는 않았는지 등 증상을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의약분업이 안 돼서 혼자 약을 사먹다가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며 “대면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원격진료를 받기도 하는 데 배가 아픈 환자나 열이 나는 환자 등 급성질환자에게 원격의료를 적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만성질환 환자 모니터링, 약 배송 서비스 인기

인도네시아 원격의료 플랫폼 이용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저렴한 가격이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 외래 상담 시 10만 루피아(8870원)를 지불해야 하는 상담이라면, 온라인에서는 2만 루피아(1772원) 이내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대면진료 대비 저렴하다는 점에서 온라인 닥터의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 지적이 있다. A 씨는 “나는 원격진료나 대면진료나 동일한 진료비를 받는다”면서 “한국에서 원격진료를 도입한다면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상태를 계속 추적해야 한다. 환자의 진행상황, 경과를 추적하는 시스템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나 코로나19처럼 이미 진단받은 병의 진행 상황은 원격의료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로 보았다. 단, 이러한 질환 역시 지속적으로 추적·관찰하는 시스템 정비가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원격의료 서비스 중 국내 도입을 우선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부분은 ‘환자 모니터링’이다. 화상이나 앱, 전화 등으로 비대면 진료를 하는 ‘원격진료’뿐만 아니라 환자 모니터링, 약 처방 및 배송 등도 원격의료 범주에 들어간다. 인도네시아는 환자 모니터링과 약 배송 서비스 등이 큰 인기다. 인도네시아의 배달업체인 그랩, 고젝 등이 의약품 배달서비스를 한다.

10월 26일 자카르타 시내에서 약을 배송하는 그랩(왼쪽) 및 고젝 오토바이 운전기사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김 연구원은 “그랩, 고젝을 이용한 의약품 배달서비스는 원격의료 서비스 모델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면서 “업체는 이를 통한 의약품 판매 마진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곧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1인 가구 고독사와 만성질환자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원격 환자 모니터링과 약 배송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에 다양한 가젯(간단한 장치)을 연결하면 환자 모니터링은 더욱 쉬워진다. 원격의료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블록체인, AR, VR 등 디지털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셀스코프의 ‘오토’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다는 렌즈다. 이것을 달면 검이경(귓속 검진 장치)이 된다. 집에서 고막을 촬영해 의사에게 전송할 수 있다. 얼라이브코어의 ‘카디아모바일’은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심전도 측정기다. 이를 통해 심장 박동을 집에서 수시로 체크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스피커, 마이크, 자이로스코프 등을 이용한 여러 가젯이 진화할수록 의사들의 원격 모니터링은 더욱 수월해진다.

국내 원격의료 도입 전 고민해야 할 점은?

선제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한 인도네시아 시장에 국내 기업들이 진출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는 없을까? 인도네시아 헬스케어 시장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일간지 ‘자카르타 포스트’에 의하면 2025년에는 3630억 달러(약 504조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는 의료 낙후지역이 많아 원격의료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특히 증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진출하기엔 여러 장애물이 있을 것으로 전문가 및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동남아 시장이 녹록한 시장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에게 밀리고, 원격의료 경험도 부족하다. 해당 국가의 의료시장에 최적화된 제품을 출시하는 게 중요한데 현지 네트워크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업은 장기간에 걸쳐 투자할 의향이 있어야 하며 현지와의 네트워크 구성, 현지에 녹아들 수 있는 현지화 역량 등을 갖춰야 한다는 것.

인도네시아와 사업 경험이 있는 헬스맥스의 이상호 대표는 “한국은 건강보험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고 의료법 등 규제가 강해 건강관리 서비스가 자리 잡기 쉽지 않은 시장”이라며 “인구가 많고 의료시스템이 미비한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나 남미 시장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두주자인 할로닥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정부 및 의사, 약사, 제약사 등 이해 관계자와 원활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국내 업체 진출이 쉽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시장에 제품을 납품한 적이 있는 제이엘케이 김동민 대표는 “인도네시아 헬스케어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의료선진국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인도네시아를 노린 사업이 갖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인도네시아의 느린 입법화 속도, 불안정한 인터넷 환경, 원격의료 관련 규정의 공백 등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저마다 원격의료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원격의료는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분야다. 한국이 이 속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선제적으로 도입한 국가에서 시행하는 원격의료의 장단점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원격의료 플랫폼은 여러 편의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오배송, 오진, 환불 오류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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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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