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티브 잡스는 대체의학에 매달렸을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의 차이

‘항생제의 아버지’란 말에 많은 사람이 ‘플레밍과 푸른곰팡이’를 떠올린다. 축음기와 전구에는 에디슨이 떠오를 것이며 비행기에는 자연스레 라이트 형제를 연관 지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 크게 공헌한 제품 중에는 발명한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사례도 드물지 않다. 종이와 나침판 그리고 화약은 모두 인류 역사에 크게 공헌했지만 누가 어디서 발명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또, 제품을 처음 만든 사람보다 상용화하여 널리 알린 사람이 모든 영광을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세기를 상징하는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가 거기에 해당한다. 처음 발명한 사람보다 공장식 대량생산체제를 완성하여 ‘자동차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한 헨리 포드가 훨씬 유명하다.

그런 상황은 ’20세기를 상징하는 발명품’인 자동차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발명품’인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이란 단어를 들을 때, 우리는 스마트폰을 가능하게 만든 과학자나 스마트폰을 제작한 공학자를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아이폰’을 떠올리고 ‘아이폰’을 보급하여 스마트폰을 대중화한 ‘스티브 잡스’를 기억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의 제작에 필요한 다양한 이론을 연구한 과학자도 아니었고 스마트폰을 직접 제작한 공학자도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빨리 스마트폰이 어떤 기능까지 확장할 수 있고 우리의 일상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실행에 옮길 의지와 능력을 지녔기에 ‘스마트폰의 아버지’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지위에 올랐다.

그런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지난 화요일(10월 5일)이 기일로, 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 5일 세상을 떠났고 췌장의 신경내분비종(pancreatic neuroendocrine tumor)이 사인이다.

췌장의 신경내분비종 일부는 췌장에 발생하는 악성종양, 그러니까 췌장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췌장암은 발견했을 때,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사례가 많고 치료법 자체도 효과적이지 않지만 신경내분비종은 악성인 경우에도 종종 완치가 가능하고 오랫동안 생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행히 잡스의 종양도 그런 비교적 예후가 좋은 경우에 해당해서 2003년 종양을 진단한 의료진은 수술을 권했다. 그 무렵에는 수술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스는 의료진의 권유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수술 같은 ‘현대의학의 정통적인 방법’ 대신 대체의학으로도 종양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과 환자가 감당할 고통도 훨씬 적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수술을 거부하고 9개월 동안 대체의학의 치료법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의학의 환상에서 깨어난 잡스는 2004년 휘플수술(Whipple operation: 췌장의 일부, 담낭, 담관, 십이지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서, 그 후 스티븐 잡스의 건강은 점진적으로 악화해 2011년 10월 5일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과 관련한 이런 배경 때문에 오늘까지도 적지 않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가 대체의학을 선택하지 않고 빨리 수술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췌장암이 완치돼 잡스가 보다 오래 살았다면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이 얼마나 달랐을까?’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왜 수술을 거부했을까? ‘현대의학의 정통적인 방법’ 대신 검증되지 않은 대체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버지의 차고에서 ‘최초의 애플 컴퓨터’를 만든 시기에서부터 아이폰과 함께 ‘스마트폰의 시대’를 열며 ‘절정의 영광’을 누릴 때까지 잡스는 항상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기존의 관행’에 도전해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러니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결정에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수술이란 ‘기존의 관행’을 따르지 않고 대체의학이란 ‘혁신’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런 선택은 스티브 잡스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야에서 혁신가, 이단자, 반항아로 불리며 큰 성공을 얻은 사람은 각각 정도는 달라도 ‘현대의학의 정통적인 방법’을 신뢰하지 않고 대체의학 같은 ‘새로운 의학’에 관심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의학은 다른 분야와는 아주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공교롭게도 직접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무기 개발도 공유하는 특징으로 ‘화려한 결과를 약속하는 멋진 기술도 실제로 현장에서 충분히 검증하기 전에는 신뢰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신약, 새로운 치료법, 새로운 진단법, 모두 실험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검증하기 전에는 신뢰할 수 없다. 또,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특징 때문에 그렇게 충분히 검증하기 전에는 단순히 환자가 원한다고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다(앞서 언급했듯, 무기 개발도 비슷해서 전장에서 위력을 확인하기 전에는 아무리 뛰어난 신무기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며 전장에서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이 외면하는 무기는 개발자가 아무리 화려한 찬사를 늘어놓아도 믿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차가운 사실을 전하는 말은 매정하고, 헛된 희망을 약속하는 말은 달콤하기 마련이어서 여전히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현대의학의 정통적인 방법’ 대신 ‘대체의학의 새로운 치료’를 선택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과학의 성과’를 외면하고 ‘획기적 치료법’을 찾아다니느라 치료시기를 놓치고 있을 것이다. 삶이 극단적 상황에 몰리면, 의료사기꾼의 사탕발림이나 무잭임한 사람의 권유에 넘어가기 쉬울 정도로 우리 모두 약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강하면서도 약한 존재였다는 점이 안타깝다. 잡스의 일화가 여러분이나 가족이 비슷한 상황에서 달콤한 말에 현혹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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