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치킨게임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결이 아슬아슬하다. 치킨게임의 가장 큰 희생자가 정부도, 의사도 아니라 환자들이라는 점에서 조마조마하다.
대한의사협회는 7월부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원격진료의 4가지를 ‘의료 4대악’으로 규정하고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앞의 두 가지가 가장 뜨겁다.
의사 증원 문제는 개인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면 좋겠다고 여기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의사 증원은 시민단체와 일부 의사들이 오래 전부터 주장했고,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의사 수가 가장 적고, 최근 근로시간 단축 때문에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 진료에 차질을 빗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의사가 적으니, 늘려야 한다는 것은 논리비약이다. OECD 최고인 인구밀도를 고려해서 우리나라 의사 수가 어느 정도가 적합한지, 예산이 감당할 수 있는 의사 수는 어디까지인지 아직 정답이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의료비가 세계 최저 수준인 ‘저급여 보험체계’를 운영하기 때문에, 의사 1인이 많은 환자를 보는 시스템이 정착돼 버렸다.
비판자들의 눈에는 ‘빨리빨리’의 황당한 의료 시스템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입증되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의사가 더 필요한지, 의사 자원의 분배가 비효율적인지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디지털의료가 활성화될 미래에 의사 자원이 어떻게 배분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한때 변호사가 늘어나면 법률서비스의 문턱 값을 낮추고 전문성이 강화돼 시민들은 혜택을 본다는 목소리가 지배했다. 이에 따라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을 만들어 변호사를 양산했다. 변호사 3만 명 시대가 됐지만 과연 법률 서비스의 천국이 됐는가? 변호사가 수요를 만들어 분쟁과 소송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고, 로펌이나 전관 등 고가 서비스의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전문지식으로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사들이 수 없는 수요를 만들면 그 부작용은 이에 비교할 수 없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비의학적 의료 수요가 남발되는 나라인데…. 의사들이 ‘변호사 시장’처럼 의료 시장이 마케팅이 좌우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걸 비난해야만 할까? 정치권과 정부가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부대끼는 의사들의 이런 고민을 진중하게 반영했을까?
의사 증원과 관련, 김영삼 정부 때 전국에 9개 의대를 우후죽순 인가했을 때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한동안 상당수 의대생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실습은 언감생심이었다. 이들 의대생은 서울의 대학병원 부근에서 함께 자취하면서 힘들게 교육받기도 했다. 의사 증원은 교수 인원, 실습 환경 등을 면밀히 고려해서 정해야 한다.
사실 공공의대 설립도 시발은 YS 때 의대 남발과 맞닿아 있다. 전북 남원에 설립한 서남대 의대가 2016년 한국의학교육평가에서 ‘불인증’ 판정을 받으면서 폐교 절차에 들어가자 이를 대체할 지역 의대 설립 주장이 제기됐다. 20대 국회에서 지역 민심을 달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지역 이용호 의원이 입법 발의한 법안의 가칭은 ‘남원 국립 공공의대법’이었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의대법’은 이 법안의 골자에 일부 보건의료계의 주장을 섞은 것이다.
정부가 밝히는 공공의대 설립의 취지는 얼핏 반박하기 힘들어 보인다. 국가에서 필요한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외상 등 필수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높이며,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 설립한다니.
그러나 왜 꼭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필자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에서 연수했을 때 미국 의사의 급여 체계를 분석하면서 무릎을 쳤다. 외과 흉부외과 외상외과 등 생명을 다루는 분야의 의사들 연봉이 다른 의사보다 평균 2배 정도 높았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 의사들이나 공공 의료시스템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충분히 보상받는 시스템만 갖추면 해결될 수 있지 않은가? 의사들이 질병관리본부에 지원했다가 불안정한 고용조건 때문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사례를 왜 눈감고 있는가?
또 지역에 의대를 만들어 의료 서비스 격차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치인들의 구시대적 발상이라고밖에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국이 2~3시간에 연결되는 시대이고, 지금도 지역의 공중보건의들에게 제대로 역할을 주지 못하면서….
코메디닷컴의 단독보도로 시작한 ‘공공의대 학생 선발의 공정성 문제’는 정부가 한 발짝 물러났기에 길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 문제는 처음부터 국회의원이 중심이 돼 지역현안을 해결하는 정치적 차원에서 시작했으므로 내포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공공의대 졸업생이 10년 간 의무복무의 현실성에 대해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정부안에 따르면 이 대학 학생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수업을 하고, 의무적으로 국가가 지정한 곳에서 10년 근무해야 한다. 졸업생의 근무처를 어떻게 공정하게 정할 수 있을지, 답이 있는가?
정부 안에 따르면 공공의대 졸업생들은 16~17년 뒤 개원할 수가 있다. 정상적으로 의대에 들어간 학생보다 5~6년 뒤 개원하는 셈인데, 밀렸던 돈벌이를 한꺼번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일부라고 차치하자. 대학을 졸업하고 의무복무를 안하면 학비를 토해내야 하는데, 어차피 다른 의대생들은 자비를 낸다. 공공의대생들은 나중에 학비 내고 개원하면 된다. 결국 권력 또는 재력이 있는, 특정 부모의 자녀가 손쉽게 의사가 될 기회가 생길 따름이다.
이밖에 의료계에서 공공의대에 대해서 △교수 인력 문제 △수련 문제 △우수인재 확보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 왜 이런 데 대해서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는 법안을 이 시점에 무리하게 추진해야만 할까?
필자는 미국 연수 시절,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은 서로 자기 나라 의료시스템이 엉망이라고 주장하며 논쟁하는 것을 보면서 의료시스템이 각 나라의 사회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모범을 구하는 게 어렵다는 점을 절감했다. 이상적 의료 시스템에 따라 현실을 간과하면 실패로 귀결되기 쉽다. 특히 의료 시스템 개선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의사 증원과 교육, 그리고 늘어난 의사들이 만드는 새 의료 환경과 수요에 따라서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예산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 없이 정책을 추진하면 얼핏 부족해 보이는 현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요즘 기업에서는 경영진이 직원의 정서를 무시하고 일을 강요하면 성사될 수가 없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기업도 이런데, 국민이 주인인 정부는 더할 나위가 없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정부 여당의 목표가 옳을지라도, 현장 전문가들이 반대하면 그 이유에 대해서 귀담아 들어야지,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현실적 이유다.
코로나19 위기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언급했듯, 전시상황이다. 장군이 전투에서 이기고 있는 군인들에게 포상은커녕 보급을 줄여 군인들이 항명했을 때 윽박지르고 몰아붙이면 다음 전투에서는 필패다. 지금은 포상을 줘도 모자랄 정도로 ‘군인들’의 심신이 지쳤을 때다.
필자가 위정자라면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은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선언하고, 대신 의사들에게 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논의에 적극 참여하라는 구체적 숙제를 내겠다. 파업에서 돌아올 명분과 의사로서의 과제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위정자의 권위에 상처받는 것도 아니고, 굴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은 정부의 유연함에 박수를 칠 것이다. 진료 수술 일정이 늦어지면서 가슴 졸이는 환자들에게는 큰 선물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