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중 심한 입덧으로 고생하던 35세 여성은 임신 8주 차부터 극심한 구토가 이어지면서 세 차례나 병원에 입원했다.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체중은 약 19kg이나 빠졌다. 다행히 임신 10주가 지나면서 구토는 잦아들었지만, 임신 15주 차에 정기 검진을 찾은 병원에서 안타깝게도 태아의 심박동이 멈춘 잠복 유산 진단을 받았다. 잠복 유산은 자궁 내에서 태아가 사망했으나 배출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유산이다.
유산 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는 갑자기 39.4℃나 되는 고열과 함께 맥박이 빨라지는 증세(빈맥)를 보였다. 의료진은 세균 감염으로 인한 패혈성 유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치료를 시작했다. 입원 치료 중 이 환자에게 낯선 신경학적 증상(뇌와 신경계 이상으로 오는 증세)이 나타났다.
구토는 이미 멎었지만 3일 전부터 앞이 흐릿하게 보이고 한쪽 눈을 감아야 겨우 시야가 유지됐다. 눈꺼풀이 처지거나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왔고, 걸을 때 몸이 비틀거리며 발걸음이 넓어지는 불안정한 모습도 보였다. 검사 결과 양측 눈동자가 제멋대로 흔들리는 증세(안진 현상)과 함께 오른쪽 눈을 바깥쪽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가 확인됐다.
응급으로 진행한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기억과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내측 시상과 유두체)에 뚜렷한 이상 신호가 포착됐다. 의료진은 비타민 B1 부족으로 뇌 가능에 치명적일 수 있는 급성 신경학적 응급 질환인 베르니케뇌병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오랜 입덧으로 영양분이 바닥난 상태에서 유산 치료 과정의 대사 변화가 겹쳤다. 여기에 영양실조 환자에게 급격히 영양이 공급될 때 발생하는 재영양 증후군(영양이 부족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영양을 공급할 때 생기는 대사 장애) 까지 더해진 상태였다.
의료진은 즉시 고용량 비타민 B와 C 복합제를 정맥 주사하고 경구용 티아민(비타민 B1) 투여와 식이 지원을 병행했다. 신속한 치료 덕분에 환자의 신경학적 증상은 완전히 사라졌고, 몇 달 뒤 실시한 추적 뇌 MRI 검사에서도 뇌 손상 부위가 말끔히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아네우린 베반대 보건위원회(ABUHB)는 이 사례 연구 결과(When Vomiting Becomes Neurological: A Case of Wernicke’s Encephalopathy Secondary to Severe Hyperemesis Gravidarum in the Second Trimester)를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발표했다.
아네우린 베반대 보건위원회(ABUHB)는 영국 웨일스 남동부(그웬트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보건 서비스를 총괄하는 영국 보건국(NHS 웨일스) 산하의 지역 보건 기구다. NHS 창설자인 아네우린 베반의 이름을 땄으며, 산하 병원 운영뿐만 아니라 대학과 협력해 의료진 교육과 임상 연구를 수행하는 교육·연구 중심 기관의 역할을 맡고 있다.
베르니케 뇌병증은 적절한 시기에 비타민을 보충하지 않으면 약 20%의 사망률을 보인다. 설령 생존하더라도 환자의 약 80%에게는 기억 장애와 혼란이 지속되는 코르사코프증후군(심한 비타민 부족으로 기억력이 크게 떨어지는 영구적 뇌 질환)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인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는다.
과거에는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주로 발생하고 사망률이 높게 보고됐다. 하지만 임신성 과다구토(임신 중 지나친 메스꺼움과 구토가 지속되는 증상)나 영양실조 등으로 인한 비알코올성 베르니케 뇌병증은 조기에 발견해 정맥 주사 등으로 티아민을 신속히 공급하면 정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전형적인 증상인 안구마비, 운동실조(근육 운동을 원활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장애), 혼돈이 모두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어 초기 진단이 늦어지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진단이 지연될수록 치명률과 후유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므로, 장기간 심한 구토나 영양 결핍을 겪은 산모 등 고위험군에서는 의심 증상이 보일 경우 확진 전이라도 신속하게 비타민을 투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주 묻는 질문]
Q1. 입덧이 심한데 왜 뇌에 문제가 생기나요?
A1. 심한 입덧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체내 비타민 B1(티아민) 저장량이 바닥나게 됩니다. 티아민은 뇌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기 때문에, 부족해지면 뇌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신경학적 이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Q2. 입덧을 하는 임산부는 모두 이 병을 조심해야 하나요?
A2. 일반적인 입덧 수준을 넘어 몇 주 동안 구토가 멈추지 않고 체중이 10kg 이상 급감하는 '중증 임신성 과다구토'를 겪는 경우에 주로 발생합니다. 영양 결핍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의료진과 상담해 미리 비타민 보충을 고려해야 합니다.
Q3. 전형적인 증상이 없어도 진단할 수 있나요?
A3.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세 가지 증상(안구마비, 운동실조, 혼돈)이 모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진단이 까다롭습니다. 따라서 장기간 구토를 겪은 산모가 시야 흐림, 어지러움, 보행 이상 등의 사소한 신경 증세를 보인다면 의료진이 이를 염두에 두고 뇌 MRI 검사나 신속한 비타민 투여를 시행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