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 사진 한 장으로 실제 나이보다 건강하게 늙고 있는지, 나아가 암 환자의 생존 가능성까지 가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를 분석해 건강 상태를 추정하던 인공지능(AI)이 암 환자의 사망 위험까지 예측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매스제너럴브리검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얼굴 사진을 활용해 생물학적 나이와 암 환자의 생존 위험을 예측하는 AI 모델 'FAHR-페이스(Face)'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19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랜싯 디지털 헬스(The Lancet Digital Health)》 온라인에 발표됐다.
얼굴 사진 4000만 장 학습⋯사망 위험 최대 3.23배 차이
연구팀은 4000만 장 이상의 얼굴 사진을 학습시킨 AI 기반 모델을 구축한 뒤 이를 활용해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하는 'FAHR-FaceAge'와 암 환자의 생존 위험을 예측하는 'FAHR-FaceSurvival'이라는 두 가지 모델을 개발했다.
여기서 생물학적 나이는 태어난 뒤 실제로 살아온 기간이 아니라 신체가 얼마나 노화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같은 60세라도 건강 상태와 노화 속도에 따라 생물학적 나이는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또 미국 하버드 의료기관에서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 3만8183명의 얼굴 사진과 임상자료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3만4363명의 사진을 활용해 생존 위험 예측 모델을 학습시키고, 나머지 3820명의 자료로 성능을 평가했다. 이후 네덜란드 의료기관 환자 4892명의 자료를 이용해 별도로 검증했다.
분석 결과 AI가 예측한 생존 위험이 가장 높은 상위 25% 환자군은 가장 낮은 하위 25% 환자군보다 사망 위험이 3.23배 높았다. 나이와 성별, 암 발생 부위, 치료 관련 요인 등을 고려한 결과다.
생존 위험을 예측하는 모델의 성능을 나타내는 일치도 지수(C-index)는 약 0.72였다. 이 지수는 0.5에 가까우면 무작위 예측과 비슷하고, 1에 가까울수록 환자 간 생존 위험의 순서를 정확히 구분한다는 의미다.
특히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하는 AI와 생존 위험을 직접 예측하는 AI가 주목한 얼굴 부위도 달랐다.
생물학적 나이 예측 모델은 주로 이마와 팔자주름, 관자놀이 부위를 분석했다. 반면 생존 위험 예측 모델은 눈 아래와 콧등 주변의 특징에 더 주목했다. 연구팀은 두 모델을 함께 활용하면 암 환자의 예후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얼굴 나이' 추정에서 생존 위험까지 직접 분석
얼굴 사진으로 건강 상태를 추정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같은 연구진은 앞서 'FaceAge'라는 AI 모델을 개발해 얼굴에 나타나는 노화 정도가 암 환자의 생존 가능성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당시 연구는 얼굴 사진으로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한 뒤, 실제 나이와의 차이가 환자의 예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방식이었다. 실제 나이보다 얼굴의 생물학적 나이가 높게 나타난 암 환자일수록 생존 예후가 좋지 않은 경향을 보였다.
이번 연구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생물학적 나이를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암 환자의 얼굴 사진과 실제 생존 기록을 함께 학습해 사망 위험을 직접 예측하도록 설계했다.
예측 성능도 개선됐다. 새 생물학적 나이 모델의 생존 예측 일치도 지수는 0.57로, 기존 FaceAge 모델의 0.52보다 높았다. 여기에 별도로 개발한 생존 위험 예측 모델은 약 0.72의 성능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기술이 향후 의료진의 환자 상태 평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정밀한 건강검사나 신체기능 평가가 어려운 환경에서 얼굴 사진이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보조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얼굴만 보고 암 진단?⋯실제 의료현장 적용은 아직
다만 이번 연구를 얼굴 사진만으로 암을 발견하거나 진단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연구 대상은 대부분 이미 암을 진단받고 치료 중인 환자였다. AI가 분석한 것은 암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환자의 얼굴 특징과 이후 생존 결과 사이의 연관성이다. 얼굴 사진만으로 암이 있는지, 어떤 암에 걸렸는지, 병기가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판단하는 기술과는 달랐다.
예측 성능에도 한계가 있다. 일치도 지수 0.72는 환자들의 상대적인 생존 위험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개별 환자가 몇 개월을 더 살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지는 못했다.
연구 대상이 주로 미국과 네덜란드 의료기관의 암 환자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연구팀 역시 다른 질환이나 인종, 지역의 환자에게 동일한 예측 성능이 나타날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의 품질과 조명, 얼굴 표정 등에 따라 분석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얼굴 사진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인 만큼 개인정보 보호와 AI 분석 결과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기존 환자들의 사진과 진료기록을 분석한 후향적 연구다. 실제 진료현장에서 AI의 예측 결과를 활용했을 때 치료 결정이 개선되거나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앞으로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예측 성능을 검증하고,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효과를 확인하는 전향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