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03일 (토)

재발 뒤 쓰던 혈액암 약, 첫 치료로 앞당겨졌다⋯FDA ‘제이퍼카’ 확대 승인

치료 경험 없는 CLL·SLL 성인 중 17p 결실 없는 환자 대상⋯3상서 24개월 무진행생존 93.4%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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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 릴리의 혈액암 치료제 ‘제이퍼카(Jaypirca·퍼토브루티닙)’ 50mg(오른쪽)과 100mg 제품을 합성한 모습. FDA는 2일(현지시간) 일부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CLL)·소림프구성 림프종(SLL) 성인의 1차 치료로 제이퍼카 사용 범위를 확대 승인했다. 사진=일라이 릴리

재발·불응성 환자에게 쓰이던 혈액암 표적치료제 ‘제이퍼카(Jaypirca·퍼토브루티닙)’를 일부 환자에게는 처음 치료할 때부터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일(현지시간) 이전에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CLL)이나 소림프구성 림프종(SLL) 치료를 받은 적이 없고 17p 결실이 확인되지 않은 성인에게 제이퍼카 단독요법을 1차 치료로 추가 승인했다. 1차 치료는 해당 질환에 대한 약물치료를 처음 시작하는 경우를 뜻한다.

CLL과 SLL은 항체를 만들어 감염을 막는 면역세포인 B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혈액암이다. 암세포가 주로 혈액과 골수에서 발견되면 CLL, 림프절에 주로 모여 있으면 SLL로 구분한다. 17p 결실은 17번 염색체 일부가 사라진 유전적 이상으로, 종양 억제 유전자인 TP53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새로 진단받은 CLL·SLL 환자의 약 5~8%에서 발견된다.

치료 경험 없는 환자 3상서 무진행생존 개선

1차 치료까지 사용 범위가 넓어진 근거는 국제 3상 임상시험 ‘BRUIN CLL-313’이다. 제이퍼카는 그간 미국에서 BTK 단백질의 특정 부위에 공유결합해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BTK 억제제로 치료받은 뒤 재발하거나 반응하지 않은 CLL·SLL 성인에게 사용됐다.

이번 3상에는 이전에 CLL·SLL 치료를 받지 않았고 17p 결실이 확인되지 않은 환자 282명이 참여했다. 이들을 제이퍼카군과 벤다무스틴·리툭시맙 병용군에 각각 141명씩 배정했다.

벤다무스틴은 암세포의 DNA를 손상시키는 화학항암제다. 리툭시맙은 B세포 표면의 CD20을 겨냥하는 항체치료제다. 두 약을 함께 쓰는 BR 요법은 화학항암제와 항체치료제를 결합한 화학면역요법이다.

시험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 어떤 치료를 받는지 아는 공개라벨 방식으로 진행됐다. 제이퍼카는 하루 200mg을 질병이 진행하거나 치료를 계속하기 어려운 독성이 나타날 때까지 복용했다. 벤다무스틴·리툭시맙은 6주기만 투여했다. 두 치료는 투여 기간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를 해석할 때 이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추적관찰 중앙값 28.1개월에서 제이퍼카는 질병이 진행하거나 사망할 위험을 비교군보다 약 80% 낮췄다. 24개월 무진행생존율은 치료 뒤 24개월 동안 병이 더 나빠지지 않은 채 생존한 환자의 비율을 뜻한다. 제이퍼카군은 93.4%, 비교군은 70.7%였다. 전체반응률은 각각 94%와 81%였다.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은 비교군에서 33.5개월이었다. 제이퍼카군은 추적 기간 안에 중앙값이 나오지 않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종양학저널(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 실렸다.

다만 이 결과만으로 제이퍼카가 현재 사용되는 모든 CLL 1차 치료제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시험의 비교 대상은 벤다무스틴·리툭시맙이었다.

최근에는 아칼라브루티닙·자누브루티닙 같은 BTK 억제제와 베네토클락스 기반 표적치료도 1차 치료에 사용된다. 최신 표적치료제와 직접 비교한 결과는 아직 없다.

BTK에 가역적으로 결합⋯한국, 치료 경험 환자 대상

제이퍼카는 비공유결합(non-covalent) BTK 억제제다. BTK는 B세포가 성장하고 살아남는 데 필요한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이다. 이브루티닙·아칼라브루티닙·자누브루티닙 같은 기존 공유결합 BTK 억제제는 BTK의 특정 부위에 비가역적으로 결합해 작용을 막는다. 반면 제이퍼카는 BTK에 가역적으로 결합한다.

기존 약들이 BTK의 한 지점에 단단히 결합해 작동을 멈추게 하는 방식이라면, 제이퍼카는 붙었다 떨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BTK의 작용을 차단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 공유결합 약물이 결합하는 C481 부위에 변이가 생겨도 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만 이런 결합 방식의 차이가 기존 BTK 억제제보다 임상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작용 방식으로 개발된 제이퍼카는 한국에서도 허가를 받았다. 2024년 재발·불응성 외투세포림프종(MCL) 치료제로 처음 허가됐고, 현재 허가사항에는 이전에 BTK 억제제 치료를 받은 CLL·SLL 성인의 단독요법도 포함돼 있다. 다만 이번 미국 승인처럼 CLL·SLL 치료를 처음 시작하는 환자는 국내 허가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내 허가 용량은 하루 한 번 200mg이다. 질병이 진행하거나 치료를 계속하기 어려운 독성이 나타날 때까지 복용한다. 제이퍼카를 사용할 때는 감염과 출혈, 혈구감소증, 심장 부정맥, 이차 원발암, 간독성 등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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