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비만치료제를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우울이나 불안 증상 등 일부 정신 건강 문제 발생 위험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실제 발생 건수가 적고, 단순 관찰연구라는 한계가 있어 약물이 직접 정신질환을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균관대 약대·아주대 의대 공동 연구팀은 한국 13개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을 바탕으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 복용의 안전성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당뇨병·비만·대사(Diabetes, Obesity and Metabolism)》에 최근 발표했다.
위고비 사용했더니 위험 증가⋯통계의 함정?
위고비와 삭센다는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치료제다. 몸 안의 식욕 조절 호르몬에 작용해 포만감을 높이고 식욕을 억제한다. 덕분에 체중 감량이나 혈당 조절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미 임상 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했지만, 연구팀은 실제 약물을 처방받은 사람이 의료현장에서 어떤 증상을 겪는지와 관련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연구팀은 국내 2·3차 의료기관 13곳에서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위고비와 삭센다를 처방받은 환자들의 증상을 살폈다. 위고비 사용군 2357명은 대조군 2만2602명과 비교했고, 삭센다 사용군 6953명은 대조군 6만8001명과 비교했다.
참여병원에는 △아주대병원 △중앙대병원 △이화여대 의료원 △순천향대 부천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경희대병원 △강원대병원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원광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명지병원이 포함됐다.

분석 결과 위고비 사용자에게 일부 정신질환과 위장관 관련 질환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전체 정신질환 발생 위험은 약 2배, 불안장애는 2.39배, 우울장애는 3.42배 높게 집계됐다. 위장관 운동장애나 폐색은 3.91배, 시력장애는 1.58배 높았다.
다만 위장관 운동장애와 폐색은 위고비 사용군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이 6건에 그쳐 실제 위험 증가 폭을 정확하게 추정하기엔 불확실성이 컸다.
우울장애 역시 전체 분석 대상자의 위험 증가폭을 단순 계산하면 대조군 대비 위험이 3.42배였지만, 병원별로 보면 위험비 계산의 중심이 된 곳은 2개 병원이었다. 위고비를 처방한 병원에서 일관되게 우울장애 증가 경향이 관찰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 허가 시점이 더 이른 삭센다도 분석 결과는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비사용자에 비해 전체 정신질환 위험이 1.7배, 불안장애 1.68배, 우울장애가 1.51배 높았지만 병원에 따라 위험 증가 폭은 상당히 달랐다.
우울증 유발한다는 의미 아냐
연구팀에 따르면 위고비나 삭센다가 영향을 미치는 GLP-1 수용체는 뇌를 비롯한 중추신경계에도 분포한다. 이 때문에 약을 투여했을 때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생물학적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연구팀은 위고비나 삭센다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번 조사는 단순히 진료기록을 살핀 관찰연구에 불과하며, 병원간 편차가 커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이번 분석에서는 자료의 한계 때문에 비만 정도를 보여주는 체질량지수(BMI)가 변수로 활용되지 못했다. 비만 자체가 우울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약물 사용군과 대조군을 무작위로 배정한 임상시험에서는 지금까지 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우울증이나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을 높인다는 뚜렷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의료계에서도 이같은 증상보다는 오히려 비만 환자가 아닌 사람이 치료제를 사용하는 ‘오남용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이 나온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참가자들이 투약 전부터 가지고 있던 질환을 완전히 걸러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환자별 특성이나 체중변화, 약물 등 다양한 요소가 환자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