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실을 16년 동안이나 숨기고 지내던 41세 브라질 여성의 사례가 드러났다. 이 사실은 그가 외음부 궤양으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면서 밝혀졌다. 이 환자는 HIV 감염에 그치지 않고, 이미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브라질 아마도르 아귀아르 병원 및 산부인과 연구팀에 의하면 이 백인 여성은 2021년 11월 두 달간 낫지 않는 외음부 궤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 환자는 입원 초기에는 앓고 있는 지병이나 과거 병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커다란 궤양의 심각성을 고려해 광범위 항생제를 즉시 투여하고 조직 생검과 매독·HIV 신속 선별 검사를 진행했다.
입원 5일 차에 효소면역측정법(ELISA) 검사 결과 HIV 양성 판정이 나오자, 환자는 그제야 숨겨둔 진실을 털어놓았다. 2005년 임신 중에 HIV 감염 진단을 받았으나 병을 인정하기 싫어 16년간 단 한 번도 치료를 받지 않은 채 감염 사실을 숨겨왔다고 고백했다. 면역 결핍 때문에 환자의 상처 부위에는 2차 세균 감염까지 겹쳤고, 유전자 증폭(PCR) 검사 결과 궤양의 실체는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 2형’으로 최종 확인됐다.
추가 검사에서 자궁경부암 전단계 병변까지 발견된 환자는 정밀 치료가 가능한 전문 센터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정맥 주사용 항바이러스제(아시클로버)와 맞춤 항생제 치료를 받는 한편, HIV 증식을 억제하는 ‘먹는 알약’(항레트로바이러스제) 치료를 병행했다. 이후 환자의 극심했던 거대 궤양은 완전히 아물었다. 의료진은 환자에게 알약을 매일 꾸준히 복용하게 했다. 먹는 알약을 성실하게 복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HIV를 전파할 위험이 사실상 없어진다.
이 사례 연구(Genital Herpes in an HIV-Positive Patient Mimicking Donovanosis: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HIV에 감염된 뒤 치료를 받지 않으면 대개 8~10년의 잠복기를 거쳐 면역세포가 고갈되면서 에이즈 증상을 나타낸다. 개인에 따라 2~3년 만에 급속히 악화하거나 10년 이상 증상 없이 버티는 사례도 있다. 이 환자는 16년간이나 치료 없이 버티다가 결국 면역 한계점에 이르러 2개월 넘게 낫지 않는 거대 헤르페스 궤양이라는 에이즈 증상을 보였다.
생식기 헤르페스는 감염 후 2~3주 안에 궤양이 저절로 아물며 흉터 없이 회복된다. 하지만 HIV에 감염된 상태에서 장기간 치료를 방치하면 체내 면역을 지탱하는 핵심 세포인 CD4+ T세포가 고갈되면서 양상이 급변한다. 면역 체계가 무너지면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증식해 수개월간 낫지 않는 거대 궤양을 만들고, 조직이 뭉쳐 자라나는 육아종성 병변을 형성해 다른 성병이나 종양으로 오인하기 쉽다.
이 환자의 HIV 감염 사실이 뒤늦게 들통나면서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논문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현실적으로도 이 환자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HIV를 얼마나 많이 퍼뜨렸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HIV는 공기나 일상 접촉으로는 전파되지 않는다. 특히 급성기 궤양 치료 후에는 매일 ‘먹는 알약’인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ART)를 통해 외래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항바이러스제를 매일 꾸준히 복용해 혈중 바이러스 수치를 검출 한계 이하로 억제하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성적으로 전파할 위험은 0%가 된다.
질병관리청 통계를 보면 국내 HIV 생존 감염인은 약 1만7000명이며, 매년 1000명 안팎의 신규 감염인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번 사례는 생식기 주변에 생긴 상처나 궤양이 일반적인 치료에는 잘 낫지 않을 경우, 단순 육안 진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피부 궤양이 지속되면 PCR 유전자 검사와 조직 생검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본인의 과거 감염력이나 면역 상태를 의료진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적절한 표적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HIV 환자가 16년 동안 약을 안 먹었는데 왜 이제서야 피부에 거대 궤양이 생겼나요?
A1. HIV는 감염 초기 무증상 잠복기를 거치며 체내 면역세포를 서서히 파괴합니다. 개인에 따라 10년 안팎의 잠복기를 버티기도 하지만, 치료 없이 면역세포(CD4+ T세포)가 한계치 이하로 고갈되면 잠복해 있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급격히 증식해 거대한 만성 궤양으로 이어집니다.
Q2. 이 환자는 성적으로 활발한 나이에 감염 사실을 숨겼는데, 강제 격리나 입원 조치는 안 하나요?
A2. 강제 격리나 입원 조치는 시행하지 않습니다. HIV는 호흡기 질환과 달리 식사, 포옹, 화장실 사용 등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파되지 않습니다. 또한 급성 피부 감염이 호전된 뒤에는 매일 복용하는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외래 통원 치료가 국제 표준 치료법입니다.
Q3. ‘먹는 알약’(항레트로바이러스제)을 먹으면 정말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나요?
A3. 네, 의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사실입니다. 처방받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매일 거르지 않고 복용해 혈액 검사에서 HIV가 검출되지 않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유지되면, 콘돔 없는 성관계를 통해서도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혀 전파하지 않습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