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에 취해 하이힐을 신은 채 걷다 넘어진 뒤 약 5년이 지난 후에도 팔과 앞가슴 부위의 극심한 통증과 감각 이상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의 사례가 학계에 보고됐다.
영국에 사는 이 31세 여성은 저녁 외출 중 술을 마신 뒤 걷다가 울퉁불퉁한 길에서 발을 헛디디며 앞으로 넘어졌다. 환자는 손바닥을 짚으면서 오른쪽 어깨와 팔 바깥쪽을 바닥에 세게 부딪쳤다. 사고 직후 오른쪽 어깨와 팔 위쪽, 앞쪽 가슴벽, 날개뼈 주변, 겨드랑이에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엄지손가락을 뺀 네 손가락과 팔 안쪽에 감각 이상이 나타났고, 옷을 입거나 머리를 빗고 반듯이 눕는 등 일상적인 움직임에도 심한 통증을 겪었다. 환자의 통증 강도(10점 만점)는 아침 기상 직후엔 7점, 낮에는 5점, 밤에는 8점으로 평가됐다. 특히 밤에는 통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 환자는 초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부상 직후 서둘러 병원을 찾지 않고 1년 동안이나 단순 진통제만 복용하며 버텼다. 통증은 계속됐고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환자는 낙상 사고 발생 12개월 만에 1차 의료기관을 찾았고, 이후 5년에 걸쳐 정형외과·물리치료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환자는 마취 상태에서 관절을 풀어주는 시술과 어깨봉우리밑(견봉하) 스테로이드 주사, 척추외과 협진, 신경통약 처방, 통증 유발점 주사 등 치료를 두루 받았다. 그래도 심한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큰 고통을 겼었다.
뒤늦게 정밀 검사를 했지만, 왜 통증이 계속되는지 알 수 없었다. 어깨와 목 부위에 대한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는 신경을 직접 강하게 누르는 구조적인 디스크(추간판)나 척수 이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반면 근전도(EMG) 및 신경전도 검사에서는 등 쪽 신경근이 손상됐음을 뜻하는 ‘제1흉추(T1) 신경근병증’이 다소 나타났다. 흉추(등뼈) 신경근병은 임상에서 흔치 않다.
이 환자의 상황을 종합하면 정밀 영상 검사, 신경 기능 검사, 환자가 호소하는 광범위한 통증 부위 등 세 가지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환자는 부상 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완치되지 않은 채 고통을 겪고 있다.
영국 로더럼 NHS 재단 트러스트 정신과, 케터링 우드랜드 병원 연구팀의 이 사례 연구 결과(Persistent Post-traumatic Upper Limb Pain and Paraesthesia Following a Fall on an Outstretched Hand: A Case of Inconclusive Localisation)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척추뼈는 목뼈(경추)·등뼈(흉추)·허리뼈(요추) 등 세 가지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등뼈는 척추의 중간 부분을 차지한다. 등뼈의 신경근병증은 임상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전체 척추 질환 중 허리뼈 신경근병증이 60~90%, 목뼈 신경근병증이 5~10%를 차지하며, 등뼈의 신경근병증은 전체 추간판 질환의 0.15~4%에 그친다.
제1흉추(T1) 신경근은 목과 어깨, 팔로 이어지는 복잡한 신경망(상완신경총) 하부와 직접 연결돼 있다. 이 부위에 손상이 발생하면 등이나 가슴뿐 아니라 팔 안쪽과 손가락 끝까지 통증이 퍼지는 방사통과 감각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손바닥을 짚고 넘어지는 충격은 일반적으로 손목 골절이나 팔꿈치 손상 등 팔 말단 부위에 집중된다. 하지만 상체나 어깨에 2차 충격이 함께 가해지면 목뼈와 등뼈에서 뻗어나오는 신경 다발이 강하게 늘어나는 손상(견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가만히 누워서 촬영하는 정적 MRI 검사에서는 특정 움직임이나 자세에 따라 발생하는 동적 신경 압박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근전도 검사에도 초기 감각 신경 변화를 감지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이 때문에 통증의 명확한 원인을 가리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여기에 더해, 부상 초기 1년 이상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한 점이 통증을 치료하기 힘들게 했을 확률이 높다. 통증이 만성화되면 중추신경계가 작은 자극도 극심한 고통으로 증폭해 받아들이는 상태(중추 감작 상태)로 변하기 쉽다.
손이나 어깨를 다친 뒤 상처를 단순 타박상으로 여겨 치료 시기를 놓치면, 미세한 신경 손상이 만성화해 수년간 일상생활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넘어지는 사고를 겪은 뒤 어깨, 가슴, 손가락 부위로 뻗치는 찌릿한 저림이나 원인 모르게 쑤시는 증상이 계속되면 서둘러 정밀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손바닥을 짚고 넘어졌는데 어깨와 가슴까지 아픈 이유는 무엇인가요?
A1. 넘어질 때 손바닥을 통해 상체로 강한 충격이 전달되거나 어깨 부위가 바닥에 부딪히면, 목과 가슴에서 팔로 이어지는 신경 다발(상완신경총)이 순간적으로 강하게 늘어나는 견인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손목 자체에는 이상이 없어도 어깨, 앞가슴벽, 손가락 부위에 통증과 저림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Q2.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없는데 왜 심한 통증이 5년이나 지속됐나요?
A2. MRI는 누워 있는 정적 상태의 뼈와 디스크 구조를 확인하는 검사라 움직이거나 특정 자세를 취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신경 자극을 모두 포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통증을 장기간 방치하면 뇌와 척수가 작은 자극도 심한 통증으로 증폭해 인지하는 ‘중추 감작’이 발생해 구조적 이상이 없어도 만성 통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Q3. 넘어진 뒤 단순 타박상인지 신경 손상인지 어떻게 구별하나요?
A3. 단순 타박상은 며칠간 쉬거나 찜질을 하면 점차 부기와 뻐근함이 가라앉습니다. 반면 손가락이나 팔 안쪽으로 전기가 통하듯 찌릿한 저림이 퍼지거나, 옷깃만 스쳐도 심하게 아픈 감각 과민, 손가락 힘 빠짐 등 증상이 지속된다면 신경이 손상됐을 확률이 높습니다. 즉시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