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때문에 망가진 간은 술을 딱 끊어도 자가 회복(재생)이 이뤄지지 않으며 이는 과음이 특정 시스템을 고장내 손상된 간세포를 불완전 상태에 갇히게 하기 때문이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 듀크대 등 공동 연구팀은 과도한 음주가 간세포의 유전 정보 전달 과정인 ‘RNA 이어맞추기(스플라이싱)’ 시스템을 고장 내 손상된 간세포를 불완전한 상태에 갇히게 만들기 때문에, 술로 망가진 간이 재생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람의 간은 일부가 잘려 나가거나 심한 손상을 입어도 스스로 복구하고 재생하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간이 손상되면 성숙한 간세포가 태아 시절과 비슷한 원시 세포(전구세포) 상태로 일시 전환해 활발히 증식한 뒤, 다시 완전히 기능하는 성숙 간세포로 돌아와 조직을 복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계속된 과음으로 간염이나 간경변증에 걸리면 간의 재생이 불가능해진다. 연구팀이 알코올로 인해 발병한 간염·간경변증 환자의 간 조직을 정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간세포들이 성숙한 상태에서 재생 상태로 넘어가다가 도중에 멈춰 선 채 ‘재생의 회색지대’에 갇혀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세포는 제 역할을 하는 성숙 세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내는 온전한 재생 세포도 아닌 ‘비기능적 중간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처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세포가 늘어나면 남아 있는 정상 간세포에 가해지는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과부하가 걸린 정상 세포들마저 복구를 시도하다가 연달아 중간 상태에 갇히는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결국 간 기능을 잃는 간부전으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첨단 RNA 염기서열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간세포 내 유전 정보 전달 과정에서 광범위한 결함을 발견했다. 세포 내에서 유전 정보를 단백질로 바꿀 때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필요한 부위를 이어붙이는 ‘RNA 스플라이싱(이어맞추기)’ 과정에 오류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특히 RNA가 올바르게 조합되도록 돕는 핵심 단백질인 ‘ESRP2’ 결핍이 오류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만성 음주로 간 조직에 만성 염증이 생기면 염증 신호가 ESRP2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한다. 그 결과 단백질 생성 지침이 꼬여, 명령 본부인 세포핵 안으로 들어가 유전자를 조절해야 할 핵심 복구 단백질들이 세포 내부의 엉뚱한 곳(세포질)에 갇히면서 재생 작업이 완전 중단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연구팀이 유전자 조작으로 ESRP2 단백질이 결핍된 생쥐를 관찰한 결과, 중증 알코올성 간염 환자와 비슷한 간 손상과 재생 실패 현상이 똑같이 나타났다. 반면 세포 배양 실험에서 특정 염증 촉진 신호를 차단하자 ESRP2 수치가 회복되고 정상적인 RNA 조립과 세포 재생 과정이 다시 시작됐다.
이 연구 결과(Dysregulated RNA splicing impairs regeneration in alcohol-associated liver disease)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간은 ‘침묵의 장기’로 통한다. 손상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뚜렷한 자각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술을 끊으면 간이 저절로 원상 복구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만성적인 폭음으로 간 내부의 재생 시스템 자체가 고장나면 금주 후에도 스스로 회복하지 못하고 간경변증이나 간부전으로 진행할 위험이 매우 높다.
질병관리청과 대한간학회 통계에 따르면 알코올성 간질환은 국내 만성 간질환 원인 중 2위를 차지하며, 고위험 음주군이 10년 안에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진단받을 확률은 약 11%나 된다. 따라서 간세포의 자가 재생 회로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음주량을 줄이고 정기적인 간 기능 검사를 받는 것이 최선의 간질환 예방법이다. 이미 간 손상이 의심되는 단계라면 단순 자가 금주에만 의존하지 말고 전문 의료진의 진료와 항염증·간 보호 치료를 적극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만성 음주로 간 기능이 크게 손상된 사람이 술을 완전히 끊어도 간이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1. 만성적인 과음으로 간에 지속적인 염증이 생기면 간세포의 유전정보조립 시스템(RNA 스플라이싱)이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간세포가 정상 기능을 하거나 새 조직을 증식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중간 상태에 갇혀 자가 재생 능력을 잃게 됩니다.
Q2. 지방간 단계에서도 간 재생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나요?
A2. 초기 알코올성 지방간 단계에서는 금주와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정상적인 간으로 충분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염증이 동반되는 알코올성 간염이나 섬유화가 진행된 간경변증 단계로 넘어가면 간세포의 회복 스위치 자체가 고장 납니다. 금주만으로는 자가 회복이 어려워집니다.
Q3. 간의 자가 회복 능력을 지키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A3. 간세포의 유전적 조절 기능이 영구적으로 훼손되기 전에 서둘러 술을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정기적인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로 염증 수치를 확인하고, 간 손상이 진행된 경우에는 전문의와 상담해 간세포 손상과 염증을 억제하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