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암 검진은 시작부터 부담스럽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가암검진의 기본 검사인 분변잠혈검사는 직접 대변을 채취해야 한다. 이후 검사에서 이상이 나오면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하고, 검사 전날에는 약을 먹고 장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피를 뽑는 것만으로 대장암 위험을 가려낼 수 있을까.
한국 연구진이 혈액 속 DNA 조각의 특징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결과, 대장암 환자 10명 중 9명가량을 찾아냈다. 초기 대장암에서도 84.2%를 검출했다. 다만 아직 기존 국가검진이나 대장내시경을 대신할 단계는 아니다.
서울아산병원은 소화기내과 변정식·홍승욱 교수팀이 GC지놈과 함께 혈액 속 DNA를 이용해 대장암을 가려내는 검사법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고 27일 전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소화기학회지(The Americ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에 게재됐다.
AI, 암세포가 혈액에 남긴 DNA 흔적 분석
우리 몸의 세포가 죽으면 그 안에 있던 DNA 일부가 작은 조각으로 혈액 속에 흘러나온다. 이를 ‘세포유리DNA(cfDNA)’라고 한다.
암세포도 마찬가지다. 다만 암세포에서 나온 DNA 조각은 정상세포에서 나온 것과 길이, 끊어진 위치, 끝부분의 모양 등이 다르다.

연구팀은 이 차이를 이용했다. 혈액에서 DNA 조각을 추출해 유전정보를 읽은 뒤, 조각의 길이와 끊어진 위치, 분포 등 여러 특징을 AI가 한꺼번에 분석하도록 했다. 사람 눈으로 일일이 구별하기 어려운 미세한 차이를 AI가 찾아 암이 있을 가능성을 가려내는 방식이다.
연구에는 모두 1677명이 참여했다. 대장암 환자 302명, 암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은 대장용종 환자 108명, 대장내시경에서 정상으로 확인된 1267명이었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1250명의 자료로 AI가 암과 정상의 차이를 익히도록 했다. 나머지 427명의 자료는 학습에 쓰지 않고 따로 남겨 실제로 암을 얼마나 잘 가려내는지 확인했다.
대장암 진단 민감도는 90.4%였다. 민감도는 실제 암 환자를 검사했을 때 암이 있다고 제대로 찾아내는 비율을 의미한다. 대장암 환자 10명 가운데 약 9명을 찾아낸 셈이다.
정상인을 정상이라고 판별한 비율인 ‘특이도’는 94.7%였다. 암이 없는 사람 100명 가운데 약 95명을 정상으로 가려냈다는 뜻이다.
초기암도 84% 찾아⋯암 위험 높은 용종은 58%
초기 암에서도 상당수를 찾아냈다. 병기별 민감도는 1기 84.2%, 2기 85.0%, 3기 94.4%, 4기 100%에 달했다. 특히 1기 환자도 10명 중 8명 이상을 검출했다.
내시경으로 제거할 수 있는 초기 대장암에서는 민감도가 90%였다.
아직 암은 아니지만 암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은 용종도 검사 대상에 포함됐다. 의학적으로는 ‘진행성 대장선종’이라고 부른다. 크기가 크거나 세포 변화가 심해 일반적인 작은 용종보다 암으로 진행할 위험을 더 주의해서 보는 병변이다.
이번 혈액검사는 암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은 ‘진행성 대장선종’도 58.3% 찾아냈다. 기존 분변잠혈검사가 이런 용종을 찾아내는 비율은 대체로 25~4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암 자체를 찾아내는 비율도 달랐다. 이번 혈액검사의 대장암 민감도는 90.4%였다. 서울아산병원은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대장암 민감도가 약 70~8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두 수치를 단순 비교해 혈액검사가 더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연구는 같은 사람에게 두 검사를 모두 시행해 직접 성능을 맞대어 본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장암은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2023년 한국에서 새로 진단된 대장암은 3만2610건으로 전체 암 가운데 세 번째로 많았다. 암이 대장에만 머물러 있을 때 5년 상대생존율은 94.9%였지만, 다른 장기로 멀리 퍼진 경우에는 20.4%로 떨어졌다.
대변검사보다 수치 높지만 직접 비교 연구는 아냐
현재 한국 국가암검진에서는 50세 이상 남녀에게 매년 분변잠혈검사를 한다. 대변에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혈액이 섞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다. 양성으로 나오면 대장내시경을 받도록 권고한다.
서울아산병원은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대장암 민감도가 약 70~80%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혈액검사에서는 90.4%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숫자만 보고 혈액검사가 분변잠혈검사보다 더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번 연구에서는 같은 사람에게 혈액검사와 분변잠혈검사를 모두 한 뒤 어느 검사가 더 잘 찾아내는지 직접 비교하지 않았다.
연구 대상도 실제 건강검진 현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번에는 대장암 환자와 위험도가 높은 용종 환자, 대장내시경에서 정상으로 확인된 사람을 모집해 혈액검사가 이들을 얼마나 잘 구별하는지 살폈다.
반면 실제 국가검진에서는 대부분 증상이 없는 많은 사람 가운데 숨어 있는 소수의 암 환자를 찾아내야 한다. 건강검진을 받는 일반인에게 적용해도 비슷한 정확도가 나오는지는 추가 연구로 확인해야 한다.

대변 채취·장 비우기 없는 검진 가능할까
혈액검사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이다. 분변잠혈검사처럼 대변을 직접 채취할 필요가 없고, 대장내시경처럼 검사 전에 장을 비울 필요도 없다. 일반 건강검진처럼 채혈만으로 1차 검사가 가능해진다면 검진을 꺼리는 사람들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인용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대장암 국가검진 수검률은 44.4%로 주요 암 검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변정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시경센터 소장은 “이번 연구는 기존 검진 과정에서 느꼈던 부담을 줄이고 혈액검사만으로 편리하게 대장암을 선별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혈액진단의 편의성과 AI 기술이 합쳐지면 보다 편리한 대장암 검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혈액검사가 실제 건강검진에 쓰이려면 넘어야 할 단계가 남아 있다. 증상이 없는 일반인을 검사했을 때도 암과 위험한 용종을 이 정도로 잘 찾아내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혈액검사에서 대장암 위험이 높게 나온다고 곧바로 암으로 확진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암인지 확인하거나 용종·초기암을 제거하려면 대장내시경 같은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