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환자의 질병은 찾아내도 굳은 팔과 다리를 대신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의료 AI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의료영상을 분석하고 질환을 예측하는 ‘진단 보조’ 역할에 집중해 왔다. 진단이 끝난 뒤 환자를 실제로 치료하는 일은 여전히 의료진의 몫이다.‘
임준열 메디스비 대표는 이 간극에 주목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기존 의료 AI는 목적지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에 가깝다. 하지만 재활치료에서는 길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환자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환자를 목적지까지 도달시켜야 한다.
임 대표는 “재활치료는 ‘어디로 가세요’라고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가 특히 필요한 영역”이라며 “로봇이라는 물리적 객체를 이용해 치료를 직접 수행하는 의료기기의 자율 주행 기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메디스비는 자체 개발한 재활 로봇 ‘ROBOARM(로보암)’에 이런 고민을 담았다. 당장은 의료진이 설계한 치료 경로를 정밀하게 재현하는 보조 로봇으로 출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을 탑재해 스스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수행하는 ‘자율치료’ 의료기기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운동하세요”라는 말에는 한계가 있다
임 대표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어깨 질환을 치료하는 정형외과 의사다. 수술 후 환자의 상태를 살피거나 수술하지 않은 환자에게 필요한 운동을 설명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문제는 설명과 실제 치료 사이의 간격이었다. 의료진이 아무리 자세히 운동법을 알려줘도, 환자가 이를 그대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고령 환자는 동작을 이해하거나 꾸준히 반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임 대표는 “환자에게 말로 전달하려고 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진료를 하면서 ‘이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의료진이 직접 환자의 관절을 붙잡고 움직이면 보다 정확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관절을 여러 차례 움직여 운동 범위를 회복시키는 관절가동술은 반복적인 노동이 필요하다. 한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쏟으면 그만큼 다른 환자를 진료하기 어려워진다.
의료진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를 수행할 물리치료사나 전문 의료진이 없다면 치료로 이어지기 어렵다. 임 대표가 로봇을 떠올린 이유다.
의료인의 ‘세 번째 팔’
임 대표는 현장에서 로보암을 사용해본 물리치료사들의 반응을 ‘세 번째 팔’에 비유했다.
“실제 현장에서 장비를 체험한 치료사 선생님들은 ‘내 손이 세 개라면 어떤 치료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로보암이 이 부분을 해결했다’고 말하더군요. 치료사의 팔이 세 개인 것처럼 장비가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은 저도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점입니다.”
기존 관절가동술 장비는 주로 한 축을 따라 관절을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무릎을 굽혔다 펴거나 어깨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대신, 구현할 수 있는 치료 동작과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임 대표는 필요한 치료의 전체 범위를 100으로 본다면 기존 장비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은 약 60점 정도라고 비유했다. 기본적인 움직임은 가능하지만 복합적인 경로나 마지막 운동 범위까지 구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장비는 자세 제약도 있다. 환자가 어깨 치료를 받으려면 전용 장비가 부착된 의자에 앉아야 하고, 다리 치료 장비는 특정 공간으로 이동해 누워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치료를 받으러 이동하는 과정도 진입 장벽이 된다.
로보암은 환자가 장비에 몸을 맞추는 대신, 로봇이 환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택했다. 덕분에 누워 있거나 이동이 어려운 환자도 제자리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적용 환경이 넓어졌다.

로보암의 강점은 여러 관절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자 뿐 아니라 신경계재활 환자, 중환자실 환자 등도 사용 가능하다.
임 대표는 “치료 범위와 종류가 넓고, 기존 치료기기보다 다양한 자세와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며 “장비가 환자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는 충분한 재활치료를 제공하기 어려웠던 곳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을 찾는 AI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피지컬 AI’로
기존 의료 AI가 주로 화면 안에서 질병을 찾아냈다면, 로보암에 탑재될 자율주행 인공지능은 화면 밖에서 환자의 몸과 직접 상호작용한다. 임 대표는 이를 ‘의료 피지컬 AI’라고 설명했다.
아직 자율치료까지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우선 의료진이 직접 경로를 만드는 방식의 로보암을 병원에 보급하고, 자율주행이 가능한 AI가 탑재된 기능은 기존 장비에 업데이트 하는 방식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임 대표는 이를 자율주행차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방식에 빗댔다. 차량을 새로 바꾸지 않아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으로 주행 보조 기능을 고도화하는 것처럼, 병원에 설치된 로보암 역시 향후 손쉽게 AI 자율치료 기능을 추가할 수 있도록 설계 중이다.
AI 시대의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엔디비아 역시 메디스비의 비전을 주목했다. 메디스비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과정은 엔비디아의 글로벌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최근에는 정부의 24억원 규모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사업’에도 선정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현재 이 투자금을 포함, 메디스비는 약 60억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한 상황이다.
AI가 탑재되면 한 의료진이 만든 치료 경로를 다른 지역이나 병원의 로보암이 재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경험 많은 의료진의 치료법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이를 의료인력이 부족한 지역이나 해외에서 수행하는 치료가 실현되는 것이다.
제품이 작동하는 장소에 따라 통신 방식도 달라진다. 최소한의 기능은 장비 안에서 직접 작동하게끔 구현하고, 필요하면 병원 네트워크나 별도의 서버·클라우드에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임 대표는 “병원, 의료취약지, 가정 등 사용 환경에 맞춰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로봇이 몸을 움직인다는 불안감은 없을까
로봇이 환자의 몸을 직접 움직이는 만큼, 기술적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환자가 장비를 믿고 치료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임 대표 역시 새로운 로봇 치료 방식에 환자가 불안이나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치료에 들어가면 이러한 우려는 빠르게 해소됐다.
그는 “치료 초반에는 걱정하던 환자들도 장비가 설정된 범위 안에서 정밀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면서 금세 신뢰를 갖게 된다”며 "30분 치료를 기준으로 보면 시작 5~10분 정도만 지나도 환자의 신뢰를 얻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임 대표는 “의료기기의 기술력은 결국 임상논문을 통해 입증하고 세계의 다른 의료진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 5곳에서 도입 준비…목표는 의료격차 해소
메디스비는 현재 병원 5곳(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과 로보암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중환자실을 비롯해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 의료진이 참여하는 컨소시엄도 구성한 상황이다.
우선 목표는 의료진이 치료 경로를 설정하는 초기 단계 제품을 상용화하고, 병원에서 임상 경험과 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이후 AI와 원격치료 기능을 순차적으로 더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으로 확장한다.
메디스비는 올해 말 로보암이 한국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고 판매 개시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 역시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임 대표는 궁극적으로 의료 격차 해소를 바라보고 있다. 숙련된 의료진의 치료 경험을 로봇에 담아, 의료진이 부족한 지역이나 해외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 의료진을 매번 해외로 파견하지 않아도, 로보암이 치료법을 전달할 수 있다면 의료기기 수출을 넘어 한국 의료 술기 자체를 확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이다. 임 대표는 이를 한국 의료진의 ‘손맛’을 세계에 전달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의료진과 가까이 있는 환자는 70~80점의 치료를 받고, 그렇지 않은 환자는 30~40점에 머무는 경우가 있었다”며 “모든 환자가 지역과 관계없이 100점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 기업 CEO들이 받고 싶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치료를, 우리나라에서 의료가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도 받을 수 있는 모습을 꿈꾼다”며 “물리적·현실적 한계로 전달하지 못했던 치료를 기술을 통해 더 많은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메디스비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