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막 문을 연 우리 병원에는 아직 새 건물 냄새가 남아 있었다. 가벼운 페인트 냄새와 소독약 향이 복도 끝까지 이어지던 어느 봄날, 한 환자가 우리 병동에 들어왔다.
나이 100세. 보호자 없이 혼자 입원한 무연고 독거 할머니였다.
평소 실내 거동은 가능하여 이웃이 가끔씩 들여다보며 돌봐드렸다는데 입원 사흘전 방안에서 넘어져 자리에 누운 후 끙끙 앓다가 급기야는 의식이 흐려져 응급실로 오신 분이다.
기침 가래가 심하게 끓고 염증 수치가 크게 올라가 사래로 인한 폐렴으로 진단됐다. 열도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조만간 패혈증으로 진행될 조짐이 역력했다.
처음에는 초고령 환자라는 사실에 긴장했다. 침상 옆 수액 라인, 알람 소리를 내면서 깜빡이는 모니터의 불안정한 파형, 정상치를 크게 벗어난 혈액검사 결과들…. 병동에서 늘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100세 환자에게는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환자 치료의 어려움은 병만이 아니었다. 치료과정에서 의사결정을 상의할 보호자가 없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이미 의식이 혼미한 100세 노인에 대해 어떤 검사를 하고 어디까지 치료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요한 검사나 치료에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환자를 응급실까지 모셔온 이웃분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연결 같은 연명의료에 대해서는 환자 주변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었다. 병실에 머물며 환자를 돌봐줄 간병인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퇴원할 정도로 상태가 회복된다면 어디로 보내드려야 할지, 만에 하나 병원에서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절차를 진행해야 될지 막막했다.
보호자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갈 일들이 하나씩 멈추기 시작했다.
간병인의 빈자리까지 대신해야 하는 간호사들은 끊임 없이 울려대는 모니터 알람과 호출 벨 소리를 들으며 병실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의사는 동의서 서명란을 빈칸으로 남겨두고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모든 불가항력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사회사업팀도, 원무팀도 치료비 지원책을 마련하며 보호자를 찾으려 애썼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다.
환자는 입원한지 스무날이 넘도록 병세가 호전되지 못하고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목요일 밤이었다. 금요일 날이 밝자마자 관공서와의 연락을 주고받으며 시신 인계 절차를 서둘렀지만 행정 역시 생각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주말 내내 환자가 머물고 있는 병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동의 무게가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우리는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섰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가 입원하면, 병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 질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입원의학과와 응급의학과, 입원간호팀, 원무팀, 사회사업팀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누군가는 새벽 간호사 교대 시간의 혼란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끝내 연락이 안 됐던 보호자의 전화번호를 떠올렸다. 또 다른 참석자는 간병인을 구해드리려 발을 동동 구르던 시간을 말했다. 처음에는 그런 저런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쌓이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 지역 행정기관이나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지, 퇴원과 장례까지 누구에게 무엇을 인계해야 하는지. 조금씩 빈칸이 채워졌다.
몇 달 뒤 또 다른 보호자가 없는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응급실에서부터 필요한 연락이 시작됐고, 사회사업팀이 먼저 움직였다. 각 부서는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었고, 치료와 행정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병원은 조금 덜 당황했고, 환자들은 조금 덜 외로워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입원전담전문의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병동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다 보면 병보다 먼저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검사와 검사 사이, 낮과 밤 사이, 진료와 행정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빈틈들이다. 그 빈틈을 메우지 않으면 똑같은 어려움이 다른 환자에게도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를 진료하는 동시에 병원이 조금 더 안전하게 움직이는 방법도 함께 고민한다.
좋은 진료는 한 사람을 살린다. 좋은 시스템은 다음 사람을 지킨다. 그것이 의료의 질로 연결된다.
개원 첫해에 만났던 그 100세 환자는 우리에게 새로운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덕분에 환자를 돌보는 절차가 달라졌고, 안내문이 달라졌다. 연락망이 달라졌고, 서로를 부르는 말도 조금 더 따뜻해졌다.
병원은 병만 고치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의 가장 취약한 시간을 함께 견디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곳이다.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