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의협, 별도 재단법인 설립한 까닭은
[대한민국의료실록] (41)한국의학원의 설립과 의학문화원 개원
1997년에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되었다. 의료 서비스도 향상되고 있었지만, 많은 국민이 의사들에 대해 별로 달갑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필자는 대한의사협회 이사로서 유성희 회장에게 이따금 “의협이 공익법인을 설립해 사회에 기여하면 의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고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라고 제안하곤 했다.
마침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재단법인 보건의료관리연구원과 식품위생연구원을 합쳐 보건산업진흥원을 설립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협은 보건의료관리연구원을 설립할 때 보건사회부의 요청으로 1억원을 출연한 적이 었었다. 재단법인이 사라지면 출연금은 국고에 귀속되므로, 필자는 유성희 회장에게 의협이 보건의료관리연구원이나 이를 대체하는 재단법인 운영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그 무렵 여의도에서 김모임 보사부 장관이 의협 회장과 조찬모임을 가졌고 송재성 의정국장이 동석했다. 의협에선 “재단법인 설립 때 의협이 출연했으니, 재단법인은 정부가 새로 만드는 기관과 독립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전환하고, 의협이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1999년 1월에 별도 법인을 승인하되, 2억원을 추가 출연하도록 조건을 붙였다. 필자는 대한병원협회가 보건의료관리연구원 설립 시 2억원을 출연했기에, 이를 합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병협은 의견을 달리하여 그해 7월 재단법인 병원경영연구원(현 병원정책연구원)을 별도로 설립했다.
의협은 국민의 보건 향상과 의료복지 증진을 위해 순수 민간 차원에서 의료정책을 개발하고 의학 관련 학술활동을 지원하며, 국민 건강증진을 위한 다양한 정보를 보급하기 위해 ‘한국의학원’의 설립을 제안했다. 보사부는 일련의 맥락을 반영해서 재단법인 한국의학원을 승인했고, 의협은 2억원을 추가로 출연했다.
당시 이상웅 의협 상근부회장이 재단이사장으로 선임됐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원장으로 임명돼 유성희 전임 회장이 이사장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1년 7월 유 이사장이 의협 대외의료협력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쓰러져 별세하는 비보가 전해졌다. 설립 당시 원장직을 담당했던 필자가 재단 설립 2년 반 만에 이사장으로 선임돼 2012년까지 10여 년을 운영했다.
한국의학원은 출연금의 은행이자를 제외하곤 재단 수입이 별로 없어서 활동이 미미했다. 이사장이 되면서 재정을 확보할 방안이 급선무였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손을 벌리거나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수익사업을 벌일 수는 없었다. 필자는 고민을 거듭하다 ‘공익법인 설립’이라는 해결책을 찾았다. 공익법인이 되면 투명하게 기탁금을 받을 길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한국재활재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익사업에 참여해왔던 필자는 필요한 공익사업에 대해 늘 고민했고, 공익법인을 통해서 할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의학원은 재정경제부를 설득해서 2002년 9월 보건·의약계 제1호로 공익법인 인가를 받았다.
당시 제약사들이 의약품과 관련해 의사들에게 음성적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해외 학회 참석 비용을 비롯해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는 것이 문제였으므로, 제약사 임원들을 접촉하여 투명하게 공익재단에 지정기부토록 설득했다.
제약사들이 사용 목적을 지정해 기부하기 시작했다. 기부금 중에서 5%는 목적 비지정 기부금(오버헤드)로 활용했다. 의사들이 해외학회에 참가할 때 경비를 지원하도록 했는데, 학회 참석 희망자들이 재단에 신청하면, 재단에서는 운영위원회에서 검토하여 적정 금액을 지원했다. 지원 금액은 항공료, 현지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이었고 영수증을 첨부토록 했다. 비행기는 일반석에 한하되, 신체장애가 있으면 등급을 올렸다. 외국학회에 갈 때 경비 지원 뿐 아니라, 임상연구비 지원도 하였다.
2002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 때 이종욱 후보자 당선을 위한 활동경비를 지출했다. 같은 해 사스(SARS) 창궐할 때 중국에 1회용 주사기를 기부할 비용도 냈다.
목적 비지정 기부금으로는 기초의학, 의학교육 등 재정이 불충분한 분야를 지원했다. 의학교육평가원과 의과대학장협의회가 공동으로 구축한 의과대학정보시스템(KOMSIS)에 필요한 경비도 지원했다. 의학원은 출판사업도 펼쳐 《일차 전문의를 위한 약처방 가이드》 《우리나라 의학의 선구자 》 《한국보건의료문제 진단과 처방》 등의 책을 발간했다.
2009년 《의학의 선구자》 제2집 출판기념회 때 문교부 장관, 환경처 장관, 서울대 총장, 성균관대 이사장 등을 역임한 권이혁 박사가 축사를 하면서 미국 미네소타대에 설립된 ‘메디칼 아카이브(Medical Archive)’를 소개했다. 의학과 의료 관련 내용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대학교에 설립된 기관이었다.
필자는 무릎을 쳤다. 한국의학원이 이러한 시설을 설립해 운영하면 우리나라 의료 발전에 이정표가 될 듯했다. 필자는 2009년부터 건축 전문가를 포함한 설립위원회를 구성, 기획에 들어갔다.
필자는 1997년 강원 양양군 현북면 냇가(남대천)에 38선 표석이 있는 대지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남북 분단 당시 38선 남쪽 경계지역을 알리는 표석이었는데 역사적 가치가 있기에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400여 평을 매입했다. 필자는 이 토지를 한국의학원에 기증하면서 의학문화원 건립을 추진했다. 마침내 2012년 8월 이 땅 위에서 한국의학문화원이 개원했다.
존경 합니다. 유승흠교수님 건강하세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