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어다니는 시계’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차 한 잔과 담배 한 개피와 함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7~11시에 강의를 하거나 강의를 준비한 뒤 오후 1시까지 글을 썼다. 오후 1~3시에 점심을 먹으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30분 뒤에 한 시간 동안 강변을 산책했다가 친구를 만나 7시까지 대화를 즐겼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밤 10시면 잠이 들었다.

시간이 철저했던 것만큼 공간도 엄격했다. 1724년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태어나 거의 팔십 평생을 그 곳에서 살았다. 거리 15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과 전혀 본 적도 없는 동식물에 대한 박학다식(博學多識)한 강의로 인기를 끌었다. 선험적 공간에 대한 담론으로, 지리학에 철학적 사유를 도입했다고 한다.
매일 산책하는 코스도 항상 같았다. 심지어 발걸음도 미리 세어 놓은 수만큼 또박또박 걸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웃 주부들은 칸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 그래서 별명이 ‘쾨니히스베르크의 시계’(Königsberg clock)다. 결벽증도 심했다. 모든 물건은 항상 제 자리에 제 각도로 놓여 있어야 했다. 부모에게서 엄격한 청교도적인 가르침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키(157cm)도 작고 몸도 연약했던 칸트는 건강관리에 매우 엄격했다. 절대로 지나치지 않았다. 식사도 규칙적으로 적당히 먹고, 술과 담배도 조금씩만 즐겼다. 산책도 무리하지 않고, 정해둔 코스만 지켰다. 더운 여름에 걷다가 살짝 땀이라도 날 것 같으면 천천히 걷고 조금이라도 힘들면 바로 그늘에 들어가 쉬었다. 이런 건강관리 전략이 먹혀 거의 팔순까지 장수했을 지도 모른다.
40대 들어 편두통을 앓기 시작한 칸트는 산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두통을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산책은 ‘생활헌법’처럼 꼭 지켜야 할 ‘정언명령’으로 발전했다. 걸을 때는 반드시 입을 닫고 코로만 숨을 쉬었다. 그게 더 몸에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산책하는 걸 고집했다. 친구와 같이 같이 걸으면 입을 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 상당히 긴 식사를 즐겼다.

호흡과 수면에서 자신만의 건강 비법을 고집하던 칸트는 79살에 임종을 앞두고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날마다 나아지고 있는데 의사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네.” 그 의사는 뭐라고 했을까?
칸트는 이성(理性)이 묻는 3가지 질문에 답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순수이성비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실천이성비판),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판단력비판)다. ‘건강관리’를 주제로 한다면, 누가 이 세 질문에 답을 줄 것인가?
[편두통] 偏頭痛. Migraine
맥박이 뛰는 것처럼, 두통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생활이 불편한 질환이다. 단순히 머리 한 쪽에서 생기는 두통이 아니다. 통증이 오기 전에 시각이나 감각에 조짐이 먼저 올 수 있으며, 두통이 심하면 구역질이나 구토가 나기도 한다. 유전이나 환경 요인으로, 뇌에서 통증을 인식하는 기준이 낮아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강도가 약해지거나 빈도가 줄어들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