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한 복통으로 병원을 찾은 20대 여성이 며칠 만에 사지마비에 호흡부전까지 겪었다. 진단의 중요한 단서는 혈뇨 없이 검붉게 변한 소변이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대병원 의료진에 따르면 이 28세 여성은 며칠간 지속된 아랫배 통증과 전신 쇠약, 근육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통증은 허리까지 퍼졌고 소변량도 줄었다. 검사에서는 근육이 심하게 손상되는 횡문근융해증과 급성 신장손상이 확인됐다. 신장 기능이 크게 떨어져 투석 치료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스스로 걸을 수 있었지만 근육 힘이 빠르게 떨어졌다. 중환자실로 옮긴 뒤 사흘 만에 네 팔다리의 근력이 거의 사라지는 심한 사지마비 상태가 됐다. 환자는 환각을 보이기도 했다. 후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혈압은 60/20mmHg까지 떨어졌다. 정상 혈압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로, 주요 장기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수 있는 쇼크 수준이다. 호흡근에도 힘이 빠지면서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결국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했다.
피 섞인 것도 아닌데 소변이 검붉게…희귀질환 때문이었다
의료진의 눈에 띈 것은 소변 색이었다. 복통과 빠른 맥박, 낮은 혈중 나트륨 수치, 근육 약화까지 종합해 추가 검사를 한 결과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으로 확인됐다.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은 몸에서 '헴(heme)'이라는 물질을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헴은 혈액 속 헤모글로빈 등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여러 단백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 과정에 이상이 있으면 포르피린의 전구물질이 몸에 쌓여 신경을 해칠 수 있다. 심한 복통이나 구토, 변비가 나타날 수 있고 심하면 팔다리 근력 저하와 경련, 의식 변화, 호흡근 마비까지 생길 수 있다.
이 여성은 이전에도 원인을 찾기 어려운 심한 복통으로 여러 차례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4년 전에는 양손과 손목 근육이 약해져 신경 검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포르피린증을 진단받지 못했다. 이번 심한 발작 직전에는 반복되는 요로감염이 의심돼 항생제를 열흘간 복용했다. 연구진은 이 항생제가 이번 발작을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일부 약물뿐 아니라 호르몬 변화, 과음, 금식, 스트레스 등도 급성 포르피린증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의료진은 "포르피린증의 증상은 뚜렷하지 않아 진단이 놓치거나 수년간 늦어지기도 한다"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횡문근융해증 환자에게 복통과 검붉은 소변 등이 함께 나타난다면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 후 다시 걷게 돼…신경 회복에는 수년 걸려
여성은 헴 성분을 보충해 몸속 독성 물질 생성을 줄이는 '헤민' 치료와 포도당 치료를 받았다. 이후 반복되는 발작을 막기 위한 약인 기보시란도 투여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나흘 뒤 검붉었던 소변은 정상 색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심하게 손상된 신경은 빠르게 회복되지 않았다.
약 3개월 뒤에는 인공호흡을 위한 기도관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에는 목발을 짚고 걸을 정도로 좋아져 퇴원했다. 이후에도 약물치료와 재활을 계속했고 약 40개월이 지난 뒤에는 일부 근력 저하만 남긴 채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연구진은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은 갑작스러운 호흡부전과 혈압 저하를 일으킬 수 있어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심한 신경 손상이 생겼다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사례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사례는 최근 국제 학술지 《세계 중환자의학 저널(World Journal of Critical Care Medicine)》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