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08일 (화)

정상세포까지 꺼버리던 항암제⋯이제 '고장난 스위치'만 골라 끈다

계명대·연세대 공동연구팀, 부작용 줄인 정밀 치료 플랫폼 '바이오포스택' 개발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계명대학교 권택규 의과대학 교수(맨 왼쪽), 박광수 약학대학 교수(가운데), 연세대학교 신동혁 생명과학부 교수가 '바이오포스택' 기술을 개발했다. 사진=계명대학교

세포 내 복잡한 신호 중 암을 유발하는 특정 스위치만 골라 끄는 새로운 방식의 항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단백질 전체를 파괴해 발생하던 기존 약물의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계명대학교(권택규 의과대학 교수, 박광수 약학대학 교수)와 연세대학교(신동혁 생명과학부 교수) 공동연구팀은 원하는 단백질의 특정 인산화 신호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바이오포스택(bioPhosTAC)’ 기술을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피인용지수 14.1)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에는 계명대 서승언·우선민 박사와 연세대 최민형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암 키우는 ‘잘못된 신호’만 골라 삭제

세포는 ‘단백질 인산화’라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분열한다.

단백질에 ‘인산’이라는 스위치가 붙으면 세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스위치에 고장이 나면 세포가 과도하게 자라 암으로 발전한다.

기존 항암제는 스위치를 켜는 효소(키나아제)의 작용을 통째로 막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효소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의 다른 스위치까지 함께 꺼버리면서 표적 외 부작용이 발생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효소 전체를 막는 대신, 스위치를 떼어내는 효소(탈인산화 효소, 포스파테이스)를 고장 난 단백질 근처로 직접 끌고 가는 ‘근접 유도’ 전략을 적용했다.

AI로 설계한 ‘이중 연결 고리’ 약물

이 전략 실현으로 연구팀은 인공지능(AI) 기반 단백질 설계 기술을 활용해 두 개의 손을 가진 이중기능성 치료물질 ‘바이오포스택’을 개발했다.

한쪽 손은 암과 관련된 표적 단백질(OTUB1)을 잡고, 다른 쪽 손은 탈인산화 효소(SHP2)를 잡아 두 단백질을 바짝 붙여놓는 원리다.

실험 결과, 기존에 쓰이던 효소 억제제(Src 키나아제 억제제)는 여러 단백질의 인산화를 동시에 감소시킨 반면, 바이오포스택은 다른 정상 단백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목표로 한 단백질(OTUB1)의 특정 스위치(Y26 위치)만 정확하게 제거했다.

이를 통해 암세포가 덩치를 키우고 증식하는 데 필요한 ‘성장 엔진’(Raptor·mTORC1 신호)만 정밀하게 꺼트릴 수 있음을 확인했다.

암세포에만 작용해 동물실험서 종양 억제 확인

연구팀은 암세포 선택성을 높이기 위해 암세포 표면 물질(KKLC-1)을 알아채는 유도 장치(종양 표적 펩타이드)를 붙여, 약물이 암세포에만 집중적으로 침투하도록 설계했다.

이 치료물질을 투여한 결과 선택적 암세포 사멸을 유도했으며 동물실험에서도 종양 조직에 선택적으로 축적돼 항암 활성을 나타내는 등 유의미한 종양 억제 효과를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표적 단백질 자체를 제거하는 기존 표적 단백질 분해(TPD) 기술을 넘어 특정 신호만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특히 모듈형 구조로 설계돼 다양한 질환 관련 단백질로 확장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돋보인다.

계명대 권택규 교수는 “기존 약물이 ‘어떤 인산화 효소를 억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바이오포스택은 ‘어떤 단백질의 인산화 신호를 제거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라며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차세대 정밀 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계명대 박광수 교수와 연세대 신동혁 교수는 “단백질 자체를 제거하는 기존 기술을 넘어 특정 신호만 조절하는 정밀의학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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