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1일 (금)

4년 발작·복통 19세女…알고보니 ‘뱀파이어병’ 계열?

“꾀병 부린다” 핀잔 4년 만에…‘흡혈귀 전설’ 낳은 포르피린증 중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 확인/다른 유형인 ‘피부형 포르피린증’…낮에 빛 쬐면 피부 화상·물집·괴사 초래하고, 마늘 먹으면 증상 악화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여성이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10대 영국인 소녀가 4년 동안이나 심한 복통과 발작으로 큰 고통을 겪다가 ‘뱀파이어병’ 계열의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세상에는 참 희한한 병도 많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갑작스러운 전신 발작과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전전하다 4년 만에 ‘포르피린증(포르피니아)’이라는 진단을 받은 영국 19세 여성의 사례가 보고됐다. 포르피린은 몸 안에서 철분 같은 금속과 잘 붙는 성질을 갖고 있다. 핏속에서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이나 식물의 광합성을 돕는 엽록소를 이룬다.

이 환자는 발병 1년 차인 15세 무렵에 메스꺼움과 가슴 두근거림(심계항진), 흉통을 겪었다. 이후 약 3시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온몸이 뻣뻣해지며 떨리는 전신 발작(강직-간대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심전도 검사에서 이상이 관찰됐으나 정밀 심장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이후에도 실신과 불수의적 떨림이 되풀이됐지만, 여러 차례 진행된 뇌파 검사(EEG)에서 뇌전증(간질) 징후가 확인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이를 심리적 원인에 의한 ‘가성 발작’으로 판단하고 환자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로 의뢰했다.

치료를 받았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발병 2~4년 차에는 참기 힘든 복통과 구토로 수차례 입원했다. 위마비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으나, 급성 충수염(맹장염)이 의심돼 복강경 충수절제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일주일 만에 담즙성 구토와 전신 쇠약, 극심한 복통이 다시 발생해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골반 염증성 질환 치료를 받았다.

환자는 발병 4년 차에 다시 급성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을 찾았다. 뇌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도 뇌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까닭 모를 복부 증상과 신경학적 이상이 되풀이되는 패턴에 주목해 대사질환 선별 검사를 했다. 그 결과 대변 총 포르피린 수치가 72.3nmol/g(정상 범위 0~49.9nmol/g)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환자에게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AIP)’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맞춤형 치료에 들어갔다. 엉뚱한 진단 및 치료는 마침내 막을 내렸다.

영국 루턴 앤 던스테이블대병원 연구팀의 이 사례 연구 결과(A Four-Year Diagnostic Journey to Acute Intermittent Porphyria in a 19-Year-Old Woman: Lessons on Recognizing Neurovisceral Clues)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포르피린증은 크게 ‘피부형 포르피린증’과 신경·내장 증상을 일으키는 ‘급성 간성 포르피린증’ 등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피부형 포르피린증은 많은 사람에게 ‘뱀파이어(흡혈귀) 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피린이 몸 안에 쌓이면 빛과 반응해 피부에 심한 화상과 물집, 피부 괴사를 일으켜 낮 활동을 피하게 만든다. 잇몸이 수축돼 치아가 도드라지며, 마늘 성분(알리신)이 간 대사를 자극해 증상을 악화시킨다. 이런 증상은 흡혈귀 전설과 겹친다.

이번에 19세 환자가 진단받은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은 급성 간성 포르피린증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피부 병변이 전혀 없다. 혈액 속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헴(Heme) 합성 효소(HMBS)가 부족해지면 포르피린이나 그 전구물질이 몸 안에 쌓여 신경계를 직접 파괴한다. 이 때문에 피부 손상 대신 극심한 복통, 구토, 전신 발작, 마비 등 심각한 신경·내장 증상을 일으킨다. 의료진도 환자의 꾀병이나 정신병으로 여기기 쉽다.

포르피린증은 주로 잠복해 있다가 호르몬 변화, 감염, 장기간의 금식, 수술 스트레스, 특정 약물 복용 등 자극을 받으면 급성 발작 형태로 폭발한다. 이 사례 속 환자도 충수절제술 후 심한 스트레스와 마취제에 노출돼 증상이 급격히 나빠졌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사지 마비, 호흡 부전, 간암, 만성콩팥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병은 주로 15~45세 가임기 여성에게 발병한다. 서구 통계 기준으로는 인구 10만 명당 5~10명 수준으로 보고되나, 국내에서는 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성상 이보다 훨씬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의 환자 수는 매우 적어 전국 단위의 정확한 공식 발병률 및 유병률 통계를 찾기는 어렵다.

젊은 여성에게 원인 불명의 복통과 신경 증상이 반복된다면 포르피린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특히 급성 증상이 가라앉은 시기에는 표준 검사인 소변 검사가 정상으로 나올 수 있으니, 이번 사례처럼 대변 포르피린 검사를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자주 묻는 질문]

Q1.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 환자도 뱀파이어처럼 햇빛과 마늘을 피해야 하나요?

A1. 햇빛 알레르기나 피부 괴사는 피부형 포르피린증에만 나타나므로 급성 간헐성 환자는 햇빛을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마늘 성분은 간 대사 효소를 자극해 발작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Q2. 소변 검사가 정상으로 나와도 급성 간헐성 포르피린증일 수 있나요?

A2. 그렇습니다. 급성 발작이 지나간 안정기에는 소변 내 독성 전구물질 수치가 정상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의심 증상이 지속된다면 대변 포르피린 검사나 유전자 검사를 보완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Q3. 혹시 가족 중에 환자가 있다면 유전자 검사를 꼭 받아야 하나요?

A3. 상염색체 우성 유전 질환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유전될 확률이 높습니다. 평소 아무런 증상이 없는 잠복 상태일 수 있으니 유전 상담을 거쳐 선별 검사를 받고, 위험 약물 복용이나 단식 등 발작 유발 요인을 미리 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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