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에 사는 40대 여성은 평소 유방암에 대한 걱정이 컸다. 주변 동료나 친구들이 유방암 진단을 받는 모습을 보며 불안해져 일차진료병원(GP)을 찾았다. 하지만 의사는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없으니 국가 가이드라인(NICE)상 정밀 검사나 유전자 검사 의뢰 대상이 아니다”라며 돌려보냈다. 이 여성은 안심했지만 불과 몇 년 뒤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이처럼 유방암 가족력을 중시하는 검진 및 판단 기준 때문에 안심했다가 덜컥 암에 걸린 젊은 여성이 적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영국암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2004~2011년 ‘제너레이션스 연구(Generations Study)’에 참여한 50세 미만 영국 여성 1258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 참가자 가운데는 조사 후 10년 안에 유방암에 걸린 환자 392명이 포함돼 있었다.
연구팀은 영국 국립보건의료우수성연구소(NICE)의 가족력을 바탕으로 한 진료 의뢰 기준과 위험 인자가 많은 유방암 위험을 예측하는 특정 모델(BOADICEA)을 비교·평가했다. 이 특정 모델은 유방암 및 난소암의 발병률 분석과 위험인자 보유자 추정 알고리즘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행 NICE의 가족력을 중시하는 진료 의뢰 기준은 10년 안에 유방암에 걸린 여성 중 4.4%만을 고위험군으로 식별해내는 데 그쳤다. 50세 미만의 여성에게 기존 가족력 기준을 적용할 경우 10년 내 암이 발생하는 고위험군 여성의 95% 이상을 놓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유전자 점수(PGS)와 생활습관·생식력·가족력을 종합 반영한 전체 특정 모델(BOADICEA)을 적용할 경우에는 10년 내 유방암에 걸린 여성의 최대 34.8%를 고위험군으로 미리 식별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모델을 적용해 고위험군으로 추정된 50세 미만 여성의 약 73%에게는 유방암 가족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이 특정 모델을 1차진료 현장에 도입하면 기존 가이드라인에 비해 유방암의 조기 발견 및 예방적 중재 대상자를 최대 7배까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유방암을 일찍 진단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Comparison of NICE criteria with the BOADICEA multifactorial risk model to guide breast cancer risk assessment and referral amongst women under age 50 within primary care)는 최근 국제 학술지 《영국암저널(British Journal of Cancer)》에 실렸다.
이 연구 결과는 가족력이 전혀 없어도 유전체 점수가 높거나 호르몬 및 생활습관 위험 요인이 겹치면 50세 미만 유방암 고위험군에 해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방암은 전 세계 여성의 암 발병률 1위이자, 암 사망 원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병이다.
50세 미만 여성의 유방암 고위험군 조건은 기존의 ‘가족력 중심 기준’과 최근의 위험 인자가 많은 ‘다인자 종합 기준’으로 나뉜다. 기존 기준은 할머니·어머니나 형제 중 유방암·난소암 환자가 있거나 특정 고위험 유전자 변이(BRCA)를 보유한 여성만을 고위험군으로 판단한다. 반면 최근 기준은 가족력 외에 수백 개의 미세 유전자 변이를 합산한 다유전자 점수(PGS)를 핵심 조건으로 반영한다. 여기에 이른 초경, 출산 미경험, 장기 호르몬제 복용 등 여성호르몬 노출 기간을 주요 평가 요소로 포함하며 치밀유방 여부와 비만, 음주 등 생활습관까지 종합해 고위험군을 판단한다.
한국유방암학회와 중앙암등록본부 통계를 보면 국내 유방암 환자의 발생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이며, 서구에 비해 한국의 40~50대 젊은 층 환자 비중이 훨씬 더 높다. 특히 40대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나 치밀유방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만 4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2년 주기로 국가암검진(유방촬영술) 기회를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검진 대상 연령이 아니거나 가족력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에 소홀하기 쉬운 20~30대 및 40대 초반 여성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유방암 검진 체계는 주로 40세 이상이거나 뚜렷한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 한해 정밀 검사를 권장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 유방암 환자의 상당수는 가족력이 없는데도 유방암에 걸린다. 전체 유방암 환자 중 가족력이 없는 비율은 약 85~90%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50세 미만의 유방암 고위험군 여성의 73%는 유방암 가족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단순히 친족 중 환자가 있는지 여부만 따지기보다는 초경 연령, 임신·출산 경력, 호르몬제 복용 경험, 음주·체중 등 생활습관, 다유전자 위험 점수(PGS)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상군별 단계적 필터링 적용과 비용 효율성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가족력은 유방암 위험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50세 미만 여성은 가족력 유무에 상관없이 초경 연령 등 각종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집안에 유방암 환자가 없어도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A1. 네, 그렇습니다. 고위험군으로 확인된 50세 미만 여성의 73%가 유방암 가족력이 없었습니다. 가족력 외에도 초경·임신 연령, 호르몬 노출, 치밀유방 여부 등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지므로 가족력이 없어도 정기 검진을 받는 게 좋습니다.
Q2. 40세 미만 젊은 여성도 매년 유방 X선 촬영(유방촬영술)을 받는 것이 좋은가요?
A2. 젊은 여성의 경우 유방 조직이 치밀해 일반 유방촬영술만으로는 음영이 겹쳐 암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무분별한 방사선 노출 위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무증상 상태의 40세 미만 여성은 전문의 상담 후 유방 초음파 등 적절한 검사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3. 유방암 위험을 낮추기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A3. 적정 체중 유지, 규칙적인 운동, 절주가 기본입니다. 특히 폐경 후 비만은 유방암 위험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므로 체중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이나 경구 피임약 장기 복용 때에는 전문의와 상의해 위험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