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면역 기능이 정상인 건강한 사람도 비둘기 똥가루, 썩은 고목 등에 사는 곰팡이균을 들이마시면 천식 증상과 함께 급성 호흡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날씨가 건조할 때 특히 감염 위험이 높다.
미국의 종합 급성기 치료병원인 ‘머시 호스피탈 제퍼슨(Mercy Hospital Jefferson)’ 연구팀은 면역력이 정상적인 60세 남성 환자가 ‘폐 곰팡이감염증’(폐 크립토코쿠스증)에 감염돼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이 환자는 약 2개월 동안 진행성 호흡곤란과 기침 증상이 지속돼 여러 차례 응급 진료를 받았다. 광범위 항생제를 투여받았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천식을 앓은 적이 있는 그는 입원 당시 ‘보조 호흡근’까지 쓸 정도로 숨을 가쁘게 쉬었고 양측 폐에서 쌕쌕거리는 소리(천명음)가 났다.
사람은 평상시 숨을 쉴 때 ‘주 호흡근’인 횡격막과 갈비뼈 사이의 외늑간근 두 가지만 움직인다. 하지만 폐 곰팡이 감염이나 심한 폐렴, 천식 발작 등으로 기도가 막히거나 폐 기능이 떨어져 몸속 산소가 부족해지면 비상 호흡 체계로 들어간다. 이때는 어떻게든 산소를 더 마시기 위해 평소 쓰지 않던 목덜미 근육(흉쇄유돌근, 사각근)과 가슴 근육(소흉근) 등 ‘보조 호흡근’까지 쥐어짜듯 쓰면서 숨을 가쁘게 쉰다.
이 환자는 입원 첫날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호흡부전(급성 저산소성 호흡부전)으로 기관 내 삽관과 기계적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초기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서 다발성 폐렴과 기관지 벽의 두터워짐(비후), 점액 폐색 등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일반적인 세균성 폐렴이 합병된 천식 악화로 의심했다. 피검사(혈청 크립토콕쿠스 항원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와, 진균 감염을 의심하기는 어려웠다.
항생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투여했지만, 환자의 저산소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입원 5일째에 기관지경 검사와 기관지폐포 세척술을 시행했다. 그 결과 세척액 진균 배양에서 ‘크립토콕쿠스 네오포르만스(Cryptococcus neoformans)’ 균이 검출됐고, 폐 곰팡이감염증으로 최종 확진됐다.
연구팀은 이 환자의 호흡부전이 곰팡이균에 의한 직접적인 폐 조직 파괴 때문이 아니라, 천식 병력이 있는 환자의 호흡기에 진균이 들어가 심각한 염증과 기관지 경련, 점액 폐색을 일으킨 것으로 분석했다. 환자는 중추신경계 전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입원 6일째부터 항진균제인 플루코나졸 단독 요법을 시작했다. 항진균제 요법 후 인공호흡기 호스를 제거했고, 산소공급장치로 치료받으면서 상태가 꾸준히 좋아졌다. 환자는 약 6개월간의 약물 처방을 받고 퇴원했으며, 이후에도 좋은 예후를 보였다.
이 사례 연구 결과(Severe Pulmonary Cryptococcosis in an Immunocompetent Patient Presenting With Acute Respiratory Failure)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숨어 있는 진균의 온상 ‘비둘기 똥가루’ 흡입, 날씨 건조한 날 특히 조심해야
이 환자는 암이나 에이즈처럼 면역 기능에 문제가 생긴 상태가 아닌데도 ‘폐 곰팡이감염증’에 걸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전문가들은 이 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비둘기 똥가루 등 환경적 노출을 꼽고 있다. 이는 한국의 환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폐 곰팡이감염증을 일으키는 균(크립토콕쿠스 네오포르만스)은 흔히 흙과 새의 배설물에 섞여 산다. 이 치명적인 곰팡이균이 호흡기로 침투하는 주요 경로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비둘기 똥가루다. 도시 공원이나 아파트 실외기 공간 등에 쌓인 비둘기 배설물은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부는 날 바짝 말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가루 먼지가 된다. 공기 중으로 날아오른 이 진균을 흡입하면 폐 속에 곰팡이가 자리를 잡게 된다. 다행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감염되지 않는다.
둘째, 썩은 고목과 옹이구멍이다. 이 곰팡이균은 나무의 썩은 부위나 갈라진 틈, 고목의 옹이구멍 속에서도 잘 자란다. 등산 인구가 많은 한국에서는 산행 중 고목을 만지거나, 주말농장에서 썩은 나무 밑동을 자르고 옮길 때 곰팡이 포자가 한꺼번에 날려 감염될 수 있다.
셋째, 특정 나무 주변의 흙 먼지다. 곰팡이균은 참나무류나 침엽수림 주변의 흙과 나뭇잎에 모여 서식한다. 날씨가 건조해 가뭄이 들었을 때 숲길을 걸으며 피어오르는 흙 먼지를 마시면 감염될 수 있다. 비둘기가 오랜 기간에 걸쳐 드나들던 낡은 상가나 빌라 건물을 철거하고 리모델링하는 현장도 위험한 곳이다. 비둘기 똥가루와 썩은 나무 먼지가 뒤섞여 진균의 거대한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발병률 미미한 편이나, 취약계층은 ‘치명적 타격’ 조심해야
한국의 폐 곰팡이감염증 발병률은 다른 주요 감염병에 비해 미미하고 드문 편에 속한다. 발병률 자체는 낮지만, 일단 걸린 환자들을 분석해 보면 그중 약 50~70%는 면역 기능이 정상인 건강한 사람이다. 따라서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 항암 치료나 장기 이식 등으로 면역 기능이 뚝 떨어진 사람은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균이 폐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 취약계층은 몸 안의 방어벽이 쉽게 무너지면서 곰팡이균이 혈액을 타고 뇌까지 침투하는 ‘크립토콕쿠스 뇌수막염’ 등 치명적인 전신 파종성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폐암으로 오인하기 쉬워...정밀 진단이 중요
건강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폐 곰팡이감염증은 진단이 매우 까다롭다. 영상 검사에서는 육안으로 이 혹과 폐암, 폐결핵을 거의 구별할 수 없다. 많은 환자가 초기에는 폐암을 강하게 의심받아 조직 검사나 수술적 절제를 거친 후에야 암이 아닌 곰팡이 감염임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례도 많다. 게다가 이번 사례처럼 균이 폐 중심부 기도에만 몰려 있으면 혈액 항원 검사(CrAg)에서도 음성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항생제 치료에도 낫지 않는 진행성 기침이나 호흡곤란이 있다면, 서둘러 기관지내시경 검사를 받아 세척액 속 균을 직접 잡아내야 한다.
일상 생활 속 예방 수칙은?
이 폐 곰팡이감염증을 예방하려면 비둘기가 많이 모이는 공원 벤치 주변 등 비둘기 배설물이 방치된 곳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날씨가 매우 건조하고 바람이 불어 흙먼지나 썩은 고목 먼지가 심하게 날리는 날에는, 비둘기가 없는 깊은 숲속이나 정원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마른 가루 먼지를 들이마시지 않아야 한다.
한편 비둘기는 호흡기 곰팡이균뿐만 아니라 각종 세균성 감염병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비둘기를 직접 만지거나 깃털 먼지에 노출되면, 급성 폐렴을 일으키는 ‘앵무병’이나 심한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는 살모넬라증, 알레르기성 폐포염(과민성 폐렴의 일종)에 감염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일반적인 감기나 세균성 폐렴 환자와 폐 곰팡이감염증(폐 크립토코쿠스증)은 어떻게 구분하나요?
A1. 초기 증상만으로는 구분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만 세균성 폐렴은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면 보통 수일 내에 증상이 호전되는 반면, 폐 곰팡이감염증은 곰팡이가 원인이므로 일반 항생제에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2주 이상 항생제를 먹어도 기침과 호흡곤란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진균 감염을 의심하고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Q2. 비둘기 배설물을 만지거나 스치기만 해도 이 병에 감염되나요?
A2. 피부 접촉이나 상처를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습니다. 이 병은 곰팡이 포자(홀씨)가 공기 중에 날릴 때 이를 코나 입으로 들이마실 때 발생하는 호흡기 감염입니다. 따라서 날씨가 건조해 배설물이 가루가 되어 먼지가 날리는 환경을 피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입니다. 이와 별도로 비둘기를 직접 만지거나 깃털 먼지에 노출될 경우, 급성 폐렴을 일으키는 앵무병이나 심한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는 살모넬라증 식중독균 등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Q3. 폐 곰팡이감염증의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며 완치가 가능한가요?
A3. 곰팡이를 죽이는 항진균제 치료를 시행합니다. 중추신경계로 균이 퍼지지 않은 경증 및 중등도 환자는 이번 사례처럼 ‘플루코나졸’이라는 먹는 항진균제를 약 6개월에서 1년 동안 장기 복용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다만 치료 기간 중 간 기능 수치 변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정기적으로 피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