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에서 CT나 MRI 촬영 검사를 해도 판독할 전문의가 부족하다. 결국 환자는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향한다.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베트남이 겪는 일부 대형병원 쏠림과 지역 의료 격차 문제는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베트남 최대 규모 의료기관인 하노이의대병원(HMUH)은 대규모 원격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여러 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 지역 의료기관은 대형병원 전문성을 활용하고 환자는 불필요하게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지 않게 만드는 구조다.
이런 시스템을 이끌고 있는 레 투안 린 하노이의대병원 영상의학센터장은 23일 아시아원격의료학회 웨비나에서 원격 영상 판독 시스템 운영 경험을 공유했다.
환자 대신 병원이 찾아간다
지방 병원은 숙련된 영상의학 전문의가 상주하기 어렵다. 특히 암이나 심혈관질환, 뇌질환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세부 분야에 특화된 전문의는 더 귀하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모두 일어나는 문제다.
이에 하노이의대병원을 ‘거점 허브’로 두는 거대한 협력 의료체계가 구성됐다. 이 병원 영상의학센터는 영상의학전문의 79명과 전문 방사선사 59명을 포함해 230여 명의 인력자원을 보유했다.
환자가 집 근처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면, 검사 영상은 수백 km 떨어진 하노이의대병원으로 전송된다. 영상의학센터 전문의가 이를 바탕으로 판독한 결과를 다시 전송하면 지역 의료진은 이를 바탕으로 진료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이 집앞까지 찾아오는 셈이다.
이같은 구조에서는 지역 병원이 상급 병원의 의료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고, 환자 역시 진단을 신뢰할 수 있는 동시에 거주지 근처에서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대학병원 입장에서도 다양한 의료기관에서 많은 환자들의 데이터를 쌓을 수 있어 장기적으로 치료 품질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린 센터장은 “현재 136개 의료기관과 협력 중이며, 매달 2500건 이상의 원격 영상 판독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구축 필요…법적 책임 등 제도 공백은 해결 과제
이같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탄탄한 기술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린 센터장은 “원격 판독이 현장 판독과 동일한 수준의 신뢰성을 제공하기 위해선 대용량의 영상 검사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검사 결과를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선 3D 시각화 도구와 렌더링 툴을 제공하는 컴퓨터 시설이 필요하며, 검사 영상을 확대하고 이동·회전하는 기능도 있어야 한다. 원격 영상 판독은 단순히 검사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넘어, 여러 기관의 전문가들이 토론과 피드백을 거쳐 공통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정보 관련 고민도 있다. 대부분의 병원 의무기록체계는 환자정보 보호를 위해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한다. 이를 극복해 영상 검사 결과를 주고받으려면 의료기관끼리 의무기록체계 시스템이 호환되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데이터 보호를 위한 엄격한 보안 수준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린 센터장은 “현재는 원격 판독 과정에 대해 법적인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수가 체계 역시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적절한 보상이 지불되지도 않는다. 이같은 구조에서는 장기적인 운영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만성 인력 부족+인건비 부실 등 한계 봉착
한국도 같은 한계점에 부딪힌 상황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취약지 응급 영상판독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24년 기준 37곳의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연간 판독 건수도 1만3000 건이 넘는다.
이 사업은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의 진료에 큰 도움을 주며, 응급 환자 최종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실질적으로 인력 확보나 영상판독 업체를 늘리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판독 담당 당직 전문의가 휴일과 야간에 12시간 동안 40건에 가까운 판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당은 동일하게 책정된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 과중한 근무 강도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린 센터장은 “공식 규정을 마련하고 수가와 보상체계를 점검하는 등 적절한 지불 모델과 규제 방안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 선순환 모델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원격의료학회는 심포지엄, 웨비나를 통해 아시아 각국 전문가들의 학술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가 초대 회장을 맡으며 학회 운영과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이끄는 상황이다.
학회 관계자는 “지역간 전문 의료 인력의 격차는 아시아 많은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며 “여러 학술교류를 통해 각국 전문가들이 지역 의료혁신과 국제 협력 방향성을 함께 모색하려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