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열이 난다. 머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신다. 누가 봐도 감기나 몸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항문까지 욱신거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은 몸살감기처럼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항문 안쪽에 고름이 차는 직장항문농양과 치루로 이어진 환자들을 적지 않게 본다고 말한다. 항문이 아픈데도 “좀 지나면 낫겠지” 하고 버티다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항문의 맹장염’으로 불리는 치루는 흔히 치질과 헷갈리지만 전혀 다른 병이다. 쉽게 말하면 항문 안쪽과 바깥쪽 피부 사이에 비정상적인 고름길, 즉 통로가 생긴 상태다. 약을 먹으면 잠깐 가라앉는 듯 보여도 대부분 완전히 낫지 않아 결국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 원장은 치루를 특히 “숨길수록 더 복잡해지는 병”이라고 설명한다. 초기에 진단하면 비교적 단순하게 치료를 끝낼 수 있지만, 방치할수록 염증이 퍼지고 고름길이 복잡해져 수술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루는 왜 생기나.
“대부분은 항문샘 감염에서 시작합니다. 감염이 진행되면 항문농양, 즉 고름 주머니가 생기고, 고름이 빠져나가려 하면서 통로가 만들어집니다. 이 길이 반복적으로 열리고 막히면서 만성화하면 결국 치루가 됩니다.”
-초기 증상은 어떤가. 감기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처음에는 몸살 같다고 느끼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열이 나고 몸이 쑤시는데, 정작 항문 통증은 뒤늦게 뚜렷해지는 경우가 있어서죠.”
치루나 항문농양은 초기에 미열, 오한, 전신통, 피로감 같은 염증 반응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다 항문 안쪽이 따끔거리거나 항문 주변이 종기처럼 붓고, 점점 앉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다. 고름이 많이 차면 통증과 열이 심해지고, 고름이 터져 나오면 오히려 잠깐 편해진 듯 느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
-치루가 특별히 잘 생기는 사람이 있나.
“여성보다 남성에서 더 흔하게 발생합니다. 항문샘 구조와 괄약근 압력 차이 때문에 감염 위험이 더 높을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잦은 설사나 과음도 문제가 되고, 청결하지 않은 생활 습관이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크론병이나 장결핵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잘 생깁니다. 하지만 이런 요인은 위험을 높이는 요소일 뿐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입니다.”
-부위가 부위인 만큼 병원 가기를 꺼리는 환자들이 많은데 자연 치유를 기대해도 되는지….
“치루는 약물 치료도 쉽지 않아요. 자연적으로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건 더 어렵습니다. 약으로 염증이 잠깐 가라앉을 수는 있어도, 길 자체가 남아 있으면 다시 고름이 차고 재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치루를 오래 끌수록 오히려 수술 범위가 넓어질 수 있어요.”
-치루를 오래 방치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나.
“가장 흔한 문제는 농양이 반복되고 길이 더 복잡해지는 겁니다. 수술 시기가 늦어질수록 괄약근 기능을 지키는 것도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치루를 오래 방치하면 고름주머니가 반복적으로 생기고, 염증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다발성 치루나 복잡치루로 진행할 수 있다. 항문 주변 피부가 짓무르거나 분비물, 냄새, 불쾌감 때문에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해질 수도 있다. 오래된 만성 염증은 드물게 항문암 위험을 높일 수 있고, 염증이 괄약근 주위로 퍼지면 치료가 더 까다로워진다.
-약물 치료가 어렵다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수술 방법은 어떤 게 있나.
“수술은 치루가 어디를 지나가는지, 괄약근을 얼마나 침범했는지에 따라 수술법이 달라집니다. 수술의 목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재발을 막는 것과 항문 괄약근 기능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치루는 치루관을 열어 배농이 잘되게 하고 자연스럽게 아물도록 합니다. 하지만 치루가 괄약근을 깊게 지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괄약근을 무리하게 자르면 변실금 같은 합병증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언급되는 ‘세톤법(Seton technique)’ 치료는 뭔가.
“괄약근을 깊게 통과한 치루에서는 기능 보존이 중요합니다. 세톤법은 실을 걸어두고 염증과 통로를 천천히 정리해 나가는 방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세톤법’은 치루관에 실이나 고무줄 같은 재료를 걸어두는 수술법이다. 이를 괄약근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염증과 고름길을 단계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방법으로 이해하면 된다. 복잡하거나 재발성 치루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름은 낯설지만, 핵심은 괄약근을 함부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재발 위험을 낮추는 데 있다.
-생활 속에서 치루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변비와 설사를 반복하지 않게 관리하고, 변기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을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항문 질환을 자주 겪는 분은 항문 위생도 잘 챙겨야 합니다.”
섬유질 섭취를 늘려 심한 변비를 피하고, 변기에 오래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신문을 읽는 습관을 줄이며, 필요하면 좌욕 등으로 항문 주위를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만 이미 치루가 생긴 뒤에는 생활습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방은 예방이고, 증상이 생기면 진단과 치료가 우선이다.
-독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치루의 경고 신호는.
“‘항문 옆이 붓고 아프다’, ‘고름이나 피가 반복해서 묻어난다’, ‘종기처럼 생겼다 터지기를 반복한다’ 이런 증상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병원을 찾아 진료를 보셔야 합니다.”
치루는 부끄럽다고 감출수록 병이 복잡해지고, 치료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동근 원장이 거듭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치루는 숨길수록 편해지는 병이 아니라, 빨리 볼수록 더 단순하게 끝낼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