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1일 (화)

뇌종양 환자가 가르쳐준, 입원을 책임지는 자리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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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그는 50대 중반, 건장한 남성이었다. 뇌 안에 교모세포종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아내가 곁에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뇌종양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받고 함암제 주사를 맞는 동안 그는 음식을 삼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었고, 걷는 일도 점점 버거워졌다. 재활 치료를 위해 첫 번째 입원을 하게 된 때였다.

서기 연습 단계에서 시작한 보행 훈련은 근력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짧은 거리를 걷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치료실에서 처음 걸음을 떼던 날, 그의 아내는 안도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는 재활 치료를 하면 기능이 곧 회복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듯했다.

음식을 삼키는 연하 훈련도 필요했다. 환자는 사레가 잦아 콧줄(비위관)로 액체 영양을 공급받고 있었다. 목과 혀를 움직여 삼킴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을 반복했고, 입으로 먹는 연습을 조금씩 늘려갔다. 삼키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고, 액체 음식에는 점도 증진제를 섞어 사레 없이 식사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콧줄을 빼던 날, 환자와 보호자는 다시 입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된 소식을 주변 보호자들과 나누며 기뻐했다.

교모세포종은 치료 목표는 대개 기능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재활 치료를 받고 나서 삼키지 못하던 음식을 다시 먹게 되고, 서지 못하던 두 다리로 다시 걷게 되자, 그는 물론 보호자 역시 조심스레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콧줄을 단 채, 휠체어에 앉아 두 번째 입원을 했다. 이번 재활의 초점은 걷거나 먹는 것이 아니었다. 팔다리 근력을 유지해 침대와 휠체어 사이를 안전하게 오가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무렵, 그는 점점 목소리를 잃어갔다.

발음이 어눌해지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글자로 의사를 표현했다. 재활 치료는 말 대신 표정과 몸짓을 읽으며 진행했다. 그래도 치료의 방향을 함께 공유하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입원에서는 상태가 급격히 변했다. 환자는 금세 지쳤고,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침을 삼키거나 끓어오르는 가래를 뱉어내는 일조차 힘들어했다. 가래 제거는 의료진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일반 병동에서 가래 관리가 어려워지고 수시로 고농도 산소치료가 필요해지면서, 그는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보호자는 인공호흡기 같은 생명 유지 장치를 포함해, 연명치료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남편의 힘든 치료 과정을 지켜봐 온 보호자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남편의 형제들에게 전화로 환자 상태를 설명하며 힘겹게 상의해야 했다. 적극적 연명치료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지 이틀 후, 환자는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보호자는 “그래도 덕분에 웃는 모습으로 갔다”며 울먹였다.

나는 재활의학 전문의다.

기능을 평가하고, 회복의 가능성을 가늠하며, 환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 왔다. 보행, 연하, 호흡 같은 기능은 나에게 늘 ‘지금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을 전제로 한 지표였다. 재활의학은 본질적으로 시간과 경과를 다루는 의학이다.

입원 진료 역시 그 연속선에 있었다. 입원은 재활 치료를 실행하는 과정의 일부였고, 외래는 그 다음 단계를 계획하는 구조였다. 나는 한때 외래와 병동을 병행하는 진료가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회복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뇌종양 환자는 내게 그 아픈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병실에 중환자가 있는 동안, 주치의 역시 사투를 벌이며 밤낮없이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환자의 상태는 예측할 수 없고, 언제든지 보호자와 상의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나는 재활의학과 외래 진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이 환자를 돌보며, 외래와 병동을 동시에 책임지는 구조가 얼마나 큰 한계를 지니는지 절실히 느꼈다. 시시각각 상태가 변하는 입원 환자를 두고, 진료실에서 외래 예약 환자를 보는 일은 단순한 업무 부담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시에 두 환자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이 환자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며, 나는 ‘누가 이 시간을 책임 지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처음으로 입원의학을 하나의 필수적인 진료 영역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입원의학은 치료를 많이 하는 학문이 아니라, 치료의 끝까지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 책임은 오직 입원 환자에게 전적으로 시간과 마음을 쏟을 때 가능하다.

그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병실에서 나는 시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입원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맡아 진료한다.

조계희 교수(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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