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의한 평화를 가리키는 ‘팍스 아메리카나’와 가장 가까운 ‘힘의 평화 시대’는 19세기 ‘팍스 브리타니카’일 겁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16세기 엘리자베스1세가 그 씨앗을 뿌렸다고 설명합니다.
1558년 오늘(11월 17일)은 엘리자베스1세가 영국 여왕에 즉위한 날입니다.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엘리자베스’에서도 볼 수 있듯, 엘리자베스1세는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그야말로 연극처럼 왕위에 오릅니다.
아버지 헨리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했지만, 캐서린이 메리를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자 파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헨리8세는 불린이 엘리자베스를 낳은 뒤 아들을 못 낳자 간통 혐의를 씌워서 처형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왕녀 지위와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합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와 새 엄마 사이에서 낳은 아들 에드워드 6세의 세례식에 보조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비지가 죽고 에드워드 6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15세에 병사하자 엘리자베스는 권력 전쟁에 휩싸입니다. 캐서린의 딸 메리 1세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했지만, 메리 1세에 의해 런던 탑에 갇혔다가 풀려나와 1년 가까이 귀족 집에서 서민처럼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메리 1세가 병사하자 왕좌에 오릅니다.
엘리자베스는 유능한 관료를 적극 활용해 선정을 베풀었고 정보 조직을 키워 반란을 초기에 진압합니다. 전임 메리 1세에 비해 종교에 대해 관용적 정책을 폅니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도 나오지만, 연극을 비롯한 인문학과 예술을 적극 지원합니다. 대외적으로도 네덜란드 무적 함대를 물리쳤고, 동인도회사를 설립해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터를 닦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어렸을 때 친구였던 로버트 더들리를 좋아했지만 결혼하진 못했습니다. 수많은 혼사가 오갔지만 처녀성을 지키다 나중에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언합니다.
국민은 적극적으로 ‘처녀 여왕’을 지지했습니다. 험프리 길버트는 북미에 식민지를 세우고 처녀 여왕에게 헌정한다는 뜻에서 ‘버지니아’로 이름 붙입니다. 현재 미국 동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오늘날 버지니아 주보다 훨씬 넓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왕의 딸로서 권력의 견제와 감시를 받으며 늘 살해 위험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인과 결혼한 귀족의 성적 학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버텼습니다. 그 힘은 지성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가정교사에게 교육받고 책을 읽는 특권을 최대한 즐겼습니다. 그녀는 영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했고 웨일스어, 스코틀랜드어, 아일랜드어 등 영국 권역의 여러 언어들도 말했습니다. 늘 책을 가까이 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키웠으며 유럽 최고의 지성을 갖춘 여성으로 꼽힐 정도였습니다.
그는 깊은 인문학 소양을 바탕으로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았고, 현명한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평생 ‘Video et taceo(보아서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지켰습니다. 많은 경영학 서적에서 ‘리더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둘은 일맥상통할 겁니다. 삼성가의 가훈인 ‘경청(傾聽)’과 목계(木鷄∙다른 닭이 싸움을 걸어도 꼼짝 않는 나무닭)’와도 뜻이 닿아 있지요?
오늘은 엘리자베스의 좌우명 ‘‘Video et taceo’와 함께 그의 명언들을 돌아보며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 순간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보는 모든 위험이 지나간 다음에 조심한다.
○믿음과 침묵에 대해 테스트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비밀을 이야기 하지 말라.
○돌은 종종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 온다.
○가장 신성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최악의 인물이다.

이번 주부터 추워진다고 하네요. 늦가을이라고 할 수도 있고, 겨울의 초입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준비했습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안네 소피 뮤터의 협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