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산업을 반도체에 이은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투자 확대와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기술수출에 집중된 국내 바이오산업의 투자 영역을 임상·허가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확대하고, 신기술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체계도 개선해야 한다 등의 제언이 나왔다.
국민경제자문회의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대한민국 넥스트 엔진: 바이오 대혁신, 국가미래성장을 잇다’를 주제로 공동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바이오산업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AI·데이터 활용, 규제 혁신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바이오산업은 차세대 국가 성장엔진으로 평가받는다. 세계 바이오 시장은 2025년 2조5000억달러(약 3350조원)에서 2035년 9조1000억달러(약 1경 2200조원)로 매년 14% 성장이 전망된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매년 50개씩 총 200개의 제약바이오 프론티어 기업을 선정해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이날 영상 축사에서 “정부는 투자와 데이터 활용, 규제 등 바이오 혁신을 가로막는 현장의 어려움을 풀어서 바이오 산업이 국가전략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바이오가 차세대 미래성장동력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원희목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은 “바이오는 반도체에 이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첨단기술 융합과 미래 신기술 창출을 촉진하고 그 성과를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경제·산업의 역량을 함께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우리 경제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라는 강력한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며 “이 기회를 살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또하나의 성장엔진인 바이오산업으로 과감히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수출만으로는 한계”…임상·허가 단계로 투자 확대해야
묵현상 뉴패스바이오 대표는 ‘바이오·제약,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확대’라는 주제 발표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핵심을 놓치고 있다”며 “우리는 기술수출로만 가치를 입증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바이오산업이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기술수출에 집중하기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임상과 허가·시장접근 분야로 투자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약은 후보물질 발굴과 비임상시험, 임상시험, 허가·시장접근, 생산, 판매·유통 등의 과정을 거쳐 상업화되며, 각 단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와 수익구조는 다르다. 묵 대표가 주목한 분야는 임상과 허가·시장접근 단계다. 국내 기업들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하는 데 그치면 후속 개발과 상업화 과정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술수출에 따른 실제 수익이 계약 총액에 크게 못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묵 대표에 따르면 기술수출 계약 총액에서 선급금(upfront)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 금액 대부분은 임상 개발과 품목허가, 상업화 등 단계별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마일스톤으로 구성돼 실제 수령 여부가 불확실하다.
계약 반환이나 개발 중단 위험도 존재한다. 묵 대표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5년 4월까지 분석 대상 계약의 38.5%가 반환·중단됐으며, 후속 임상과 연구개발이 장기화되거나 정체된 사례까지 포함하면 약 50%에 이른다. 기술수출에 성공하더라도 후속 개발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마일스톤 지급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고, 최종 상업화에 따른 로열티 수익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바이오 혁신 가로막는 규제·데이터 장벽 해소 강조
바이오 혁신을 막는 규제와 데이터 장벽 해소에 대한 의견도 이어졌다. 양성일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규제특위 위원장은 바이오 신기술의 개발과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규제체계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은 허용하고 금지는 법령으로 분명히 하는 ‘포괄적 네거티브’와 연구 초기부터 허가·평가 절차를 함께 설계하는 ‘사전 규제설계제’ 도입, 신약의 전 과정(R&D–임상-심사–급여-생산)을 잇고 속도를 높이는 ‘제약·바이오 전주기 혁신’, 복잡한 의료기기 선진입 절차의 통합·정비 등을 제안했다.
양 위원장은 연구개발 투자 활성화를 위해 바이오벤처 지분투자나 펀드 출자금 자체를 연구개발비로 인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현재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과정에서 바이오벤처 지분투자나 펀드 출자금 자체가 연구개발비로 인정되지 않는다. 양 위원장은 연구개발이 아닌 단순 재무적 투자와 구분할 수 있도록 최소 지분 보유기간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신약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우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외에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데이터를 기반으로 바이오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예산확대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AI가 활용할 수 있는 고품질 연구 데이터의 가공·축적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데이터 보호와 보안을 확보하면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데이터심의위원회(DRB) 통합 심의 등 절차 간소화를 통해 연구 현장의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성공 결과뿐 아니라 실패한 실험의 결과도 검증·축적해 연구자산으로 활용하고, 부처별·기관별로 분산된 데이터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